식물에 대한 인식을 통해 본 조상들의 역사적 상상력, 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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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대한 인식을 통해 본 조상들의 역사적 상상력, 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안진흥 지음
2023년 06월 15일(목) 18:40
사람을 만났을 때 첫 인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이성 간 호감을 느끼는데도 첫인상은 상당부분 좌우한다.

역사에는 버드나무가 남녀의 호감을 견인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왕건이 버드나무 잎을 띄워 물을 건넨 여인에게 반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왕건과 오씨(장화왕후)의 사랑은 버드나무가 연결해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드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도 나온다. 신라 경덕왕 때 갑자기 다섯 살 아이가 눈이 멀었다. 분황사 천수대비 관세음보살 벽화 앞에서 향가로 빌었더니 눈을 뜨게 된다. 일연은 보살의 자비가 없었다면 ‘버들 꽃피는 봄을 몇 번이나 헛되어 보냈을까’하고 헌시를 썼다.

이 같은 내용은 버드나무가 보통의 나무와는 다른 상징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세음보살이 현신할 때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쥐고 있어, 불교에서 버들가지는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를 상징한다고 전해온다.

삼국유사에는 다양한 식물이 등장한다. 이 식물은 실제 상황을 드러내는 팩트적인 요인과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가공을 했을 수도 있다. 책에 기술된 식물은 당대의 역사를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렌즈이기도 하다.

천마총의 모란. 선덕여왕이 즉위 전 공주시절 당태종이 세 종류의 모란 씨앗을 보냈다고 한다. <지오북 제공>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식물을 모티브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식물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발간됐다. 대한민국학술원 및 한국과학기수한림원 회원인 안진흥 박사가 펴낸 ‘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는 의식주의 주요 재료 외에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목, 미래 예견 선지자 등 식물의 다양한 역할을 조명한다.

저자는 벼 유전체 분석의 세계 권위자로 삼국유사에 수록된 60여 종의 식물 가운데 45종을 추려 식물에 대한 인식과 이용 등을 풀어냈다.

당초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호국성을 강조하는 사관을 반영하기 위해 집필했다. 책에 나오는 식물이 왕 탄생을 예견하기도 하며 인간의 과오를 경계하는 심판자로도 묘사된 것은 그런 차원과도 연관이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로 찌든 피로를 풀기 위해 숲을 찾는다.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털어버리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문왕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이 대나무숲에 들어가 임금의 비밀을 외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저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다는 것을 힐링을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본다. 많고 많은 나무 중에 왜 대나무숲으로 갔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대나무가 지닌 피톤치드 효과를 꼽는다. 항염을 비롯해 항균, 스트레스 조절 등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옛사람들도 복잡한 일이 있을 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대나무숲에 들어갔을 거라는 얘기다.

삼국시대에는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통해 서역 국가와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삼국유사에는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가락국 수로왕의 결합이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수로왕은 허황옥이 바다를 건너 가야로 올 때 목련으로 만든 키와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갖춘 배를 보내 맞이했다.

고조선 신화에 등장하는 신단수는 어떤 나무일까. 2020년 말 전국 보호수는 1만3864그루. 그 중 절반 이상인 7293그루가 느티나무다. 이는 옛 사람들이 느티나무를 가장 좋은 목재 가운데 하나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저자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건축한 김대성의 삶을 찬양하는 시에 적혀 있는 ‘槐’를 느티나무로 해석한다.

느티나무는 오래 살고 굵고 치밀해 큰 건물 기둥이나 불상 등을 제작하는데 쓰였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천마총이나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관이 느티나무라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책에 수록된 다채로운 식물, 나무 이야기는 재미는 물론 역사적 상상력, 인문적 안목을 확장하게 해준다.

<지오북·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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