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 표적이 되다- 명혜영 광주시민인문학 대표·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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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 표적이 되다- 명혜영 광주시민인문학 대표·문학박사
2023년 05월 22일(월) 22:00
낳는 몸으로 태어난 여성은 생래적으로 몸이 굴레다. 달에 한 번 월경을 하며 시시때때로 움직임에 제약을 받고, 쾌락을 채 알기도 전에 도구로, 대상으로 내몰리며 성은 방어의 대상쯤으로 자리매김되기 일쑤다. 게다가 출생률을 문제시하는 사회에서 낳지 않는 여성의 몸은 비난의 표적이 된다. 그래서일까? 최근 한일 여성작가들의 소설에는 여성의 몸을 조명한 글쓰기가 부쩍 눈에 띈다.

몸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이성의 언어가 아닌 여성의 몸을 모티프로 육식으로 심볼라이즈된 남성 중심주의 질서의 전복을 꾀한다. 주인공 영혜는 아이를 생산하지 않은 전업주부로, 그녀의 일터는 부엌과 그 주변이다. 특히 부엌은 조리 공간으로서 생명체의 지속이라는 막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며, 두 가지의 특성을 띤다. 하나는 식재료를 다량으로 장시간 보관한다는 일반적 기능이며, 그 두 번째는 식재료가 오로지 남편의 식성을 고려한 육식 재료 중심으로 채워지고 운영된다는 특수한 기능이다. 따라서 자연스레 영혜의 몸도 육식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런 영혜가 급기야 육식을 채식으로 바꾸는 반역을 저지르게 된다. 그녀의 의지는 집요하고 행동은 치밀하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몸에서는 인간의 피가 제거되고 식물로 환생한다. 그 후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그녀는 단죄되고 그 최후는 참혹하다.

기실 육식의 이면에는 인간 중심주의 철학에 자리 잡고 있는 퇴행적 나르시시즘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 동물의 학살에는 철학적인 정당화가 자리하고 있다. 서구 철학은 타자로서의 여성, 야만인, 노예들을 동물로 등치해 왔다. ‘날 것의 생’만을 영위하는 이런 타자들은 정치 공동체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왔다. 정치 공동체로 들어올 수 없는 생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상징적으로는 죽어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동물의 생으로 타자화된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신의 속성인 이성이 없다는 것이다. 동물에게는 불멸의 영혼, 의식, 언어, 반성적인 사고가 없으므로 동물의 죽음은 정당하다는 오류를 범한다.

한편 일본의 여성작가 가와카미 미에코는 ‘여름의 문’(2022)에서 보다 구체적인 주제로 여성의 ‘낳는 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소설에는 모자가정의 10대 소녀, 미혼모인 40대 엄마, 비혼주의자 30대 이모 등 세 명의 여성으로 이뤄진 모계 가족이 등장한다. 어느 여름날 마키코는 호스티스로서의 자신의 몸의 상품성 회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유방 확대 수술을 고려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유방 변형의 원인으로, 아이를 낳은 점과 모유 수유를 든다. 아쉽게도 생명체를 얻었을 때의 희열이나 모유 수유를 통해 얻게 되는 일체감 등 경험에 의해 축적되었을 감각을 가시화시키지는 못한다.

‘여름의 문’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란(卵) 퍼포먼스다. 사춘기 딸의 필담 노트에는 소녀의 2차 성징이 나타나는 몸, 특히 초경이나 생리, 난자 등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소녀는 “만약 나도 생리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끝날 때까지 몇 십 년이나 매달 가랑이에서 피가 나오게 된다면, 정말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가 책에서는 생리를 너무 좋게만 써 놓았다.

요전에도 학교에서 이동할 때 누군가가,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언젠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식의 말을 했다. 단순히 거기에서 출혈을 했으니 여자가 되었다는 것이 되고, 그리고 여자로서 생명을 낳아야 한다느니 하는 그런 거창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하고 의문을 표하며,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생명을 낳아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스스로를 몸속에 가두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한다. 문제의 논점이 여성 몸의 특수성이라 여겨졌던 ‘낳는 몸’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어, 독자에게 뜨거운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이러한 소녀의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져 “양손에 계란을 들고 그걸 동시에 힘껏 내리쳤다. 껍데기가 주위에 흩어졌다. 미도리코는 티셔츠 목둘레선, 안면에 흰자가 걸쳐지고 샛노란 덩어리가 무늬가 되어 곳곳에 묻은 채 서서, 지금까지 내가 들은 목소리 중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엄마와 딸이 격하게 계란을 깨는 이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여름날의 불꽃놀이는 무기한 연기되고, 결국 낳는 문제는 자신의 의지로 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처럼 한일 여성작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성의 몸이 표적이 되어 온 작금의 현실을 문제시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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