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이런 산불 처음”…긴급대피 주민들 ‘공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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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이런 산불 처음”…긴급대피 주민들 ‘공포의 밤’
대응 3단계 함평 산불 현장 르포
“우리 집 마당까지 불티 날아와”
새까맣게 탄 고사리밭 보며 한숨
공장·축사·비닐하우스 등 전소
바람 강해 꺼진 불 다시 피어올라
산림청·소방당국 밤새 산불과 사투
2023년 04월 04일(화) 19:30
함평군 신광면의 복분자주 공장이 4일 산불로 인해 완전히 불타 잿더미로 변해 있다. /함평=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내 나이 80 평생 이런 산불은 처음이랑께. 산등성이서 불기둥이 막 솟구치고 불티가 우리 집 마당까지 날아오고 난리도 아녔어.”

핑크빛 벚꽃이 한창 무르익은 4일 오전 함평군 일대는 그와 대비되는 새까만 잿가루가 산비탈, 도롯가, 집 마당 등 사방에 내려앉아 있었다.

이곳에선 산불로 발생한 매캐한 연기가 사방에 내려앉은데다 탄 냄새가 진동했다. 산등성이에서는 끊임없이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고, 곳곳의 나무 사이로 불길이 타오르는 것도 보였다. 불씨가 튀었는지 푸른 밭 한가운데 동그랗게 불탄 흔적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전남·경남소방과 군, 산림청 등의 헬기 11대가 쉴새없이 저수지와 산을 오가며 물을 퍼나르고, 소방차 수십대가 산 주위를 돌며 잔불 때문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찾아다녔다. 바람이 강한 탓에 꺼진 불도 다시 피어오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소방당국 설명이 뒤따랐다.

함평군 주민들은 마을회관, 면사무소 등지에 모여 하염없이 산자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언제 불길이 마을을 덮칠지 모른다는 ‘공포의 밤’을 보낸 뒤, 4일 낮부터 타 버린 밭과 선산 등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산불을 피해 함평군 신광면 덕천마을 마을회관으로 대피한 이영자(80)·김맹녀(86)·김옥자(77)·이양순(94) 할머니는 4일 오후까지 충격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김옥자 할머니는 “연기가 확 피어오르면서 하늘이 온통 새까맣게 뒤덮인데다 불씨가 집이고 사람이고 구분 않고 사방으로 날리는 통에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 했다”고 말했다.

정동선(62) 덕천마을 이장도 “산등성이에서 족히 10여m는 넘을 듯한 불기둥이 연신 솟아오르는 게 보이는데 공포 그 자체였다”며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밤새 소방관들, 공무원들, 마을 주민들과 함께 호스로 물을 뿌려 가며 불길을 막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1년여 전 덕천마을 산비탈에 집을 짓고 귀농한 신용철(66)씨는 자기 집 뒷마당까지 불길이 덮치는 아찔한 상황에 놓였다. 신씨는 “대피령이 내려지고 2시간쯤 지났을까, 오후 5시쯤 집이 걱정돼 가 보니 뒷마당 텃밭까지 불이 붙어 있었다”며 “어떻게든 집까지 불이 번지지 않게 하려고 온 가족이 호스를 들고 물을 뿌려대 겨우 막아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윤영순(여·71)씨는 불길이 사그라들자 산비탈에 있는 23여㎡(7평) 고사리 밭을 살피러 갔으나, 새까맣게 타 버려 재만 남은 것을 보고 맥이 풀렸다.

윤씨는 “날이 따뜻해져서 슬슬 고사리를 수확할 시기인데, 하나도 남김없이 불타버렸다”며 “그래도 산 근처에 있는 집에는 불이 옮겨붙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집까지 불이 옮겨붙을 걱정은 없다고 하길래 잠을 청했는데, 언제 불길이 집을 덮칠지 몰라 자꾸 창 밖을 내다보게 돼 잠을 설쳤다”고 덧붙였다.

김송규 신광축산 대표는 병원 입원 중에 자신이 운영하는 돼지 축사가 불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축사 인근 짚단을 쌓아놓은 곳에 불씨가 튀어 축사까지 불이 번지는 상황이었는데, 지인인 나승구(57) 푸르메한솔영농법인 대표의 도움으로 큰 화를 면했다.

나 대표는 “산불 소식을 듣고 김 대표 축사가 걱정돼 찾아가보니, 마침 축사에 불이 옮겨붙으려는 상황이었다”며 “주변에 물을 끌어올 데가 없어 축사 인근에 있던 포크레인으로 흙을 뿌리고 덮었다. 자칫하면 축사 19개 동 전체로 불이 번져 큰 피해를 입을 뻔 했는데 천만다행이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함평=유연재·한수영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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