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한국학호남진흥원 공동기획 호남 누정-광주 <1>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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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한국학호남진흥원 공동기획 호남 누정-광주 <1>프롤로그
유순하고 넉넉한 산야 찾아 우리 ‘누정’을 알현하다
휴식·사색·교육공간 역할 호남 누정 답사
광주 누정안에 깃든 역사·건축·학술 등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 다채롭게 조명
2023년 04월 02일(일) 20:25
호남의 누정은 역사와 건축, 학술 등 다채로운 의미가 투영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사진은 광주의 대표 누정 풍영정.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흔히 듣는 말이다. 옛것이라 하여 가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뜻일 게다. 앞선 이들의 지혜와 사유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옛것은, 지나간 것은, 진부한 것으로 규정되곤 한다. 사실 화살처럼 흐르는 시간은 모든 것을 무화시킨다. 우리의 오늘 또한 머잖아 과거의 한때로 치부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현재는 과거가 쌓아올린 주춧돌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내일은 지금이라는 시간이 떠받치는 명징한 현현일 게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만 새로운 발견은 있다. 새로운 시각, 새로운 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문학을 비롯해 예술과 문화, 아니 우리 삶의 모든 이면과 결부될 수 있는 말이다. 그다지 새로울 게 없지만, 접근을 달리해보면 전혀 다른 가치와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진리인가.

봄이다. 어느 샌가 그렇게 봄은 우리들 곁에 와 있다. 그러나 언제 떠날지 모르는 게 봄의 속성이다. 아니 봄의 매력일 수도 있겠다. 이편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놓고 돌연히 줄달음쳐 가버리는 게 비단 봄뿐이겠는가.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길을 떠나려 행장을 꾸리고 있다. 조금 지체하다간 어느새 정류장을 떠나버리는 버스처럼 이 계절도 무람없이 지나가버릴 것만 같아서다.

남도 산하를 누비며 자연 속을 유람할 것이다. 유순하고 넉넉한 산야를 찾아 우리의 누정을 알현하는 장도에 오를 참이다. 남도의 언덕과 들녘, 혹은 산자락에 맞춤하니 앉은 누정(樓亭)을 만나러 가는 길은 오래된 미래와 접속하는 시간이다. 옛것의 자취와 흔적을 오늘에 소환해 그것의 의미를 벅벅이 새기는 일은 세상의 수다한 일에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선 옛 사람의 정신을 대면하는 것이리라.

한국학호남진흥원 조일형 박사에 따르면 누정은 대개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로 나뉜다. 전자는 다락의 구조로 높게 지어진 건물을 말하고, 후자는 방이나 문 없이 탁 트이게 지어지고 경관이 좋은 건물을 이름한다. 누정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누樓), 정(亭), 각(閣) 대(臺), 헌(軒), 당(堂), 재(齋), 관(管), 사(舍), 실(室), 암(巖), 모정(茅亭) 등에 이를 만큼 다양하다.

광주에서 향약이 처음 시행된 남구 칠석동의 부용정.
누정에 대한 기록은 우리의 역사서에 많이 등장한다. 삼국유사에는 636년(백제 무왕 37년) “신하들과 망해루에서 잔치를 치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누(樓)ㆍ정(亭)ㆍ사(寺)ㆍ사(社)ㆍ역(驛)ㆍ원(院)ㆍ교량(橋梁), 명현의 사적과 문인의 제영(題詠)의 섬세하고 은미한 것까지도 두루 기록해서 비록 시대가 오래된 것이나 사경(四境)의 먼 것이라도 한번 책을 펼치면 환히 손바닥에 놓고 가리키는 것과 같으니…”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밖에 다른 역사서에도 누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를 비롯해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지, 동국여지도 등의 기록이 이를 방증한다.

무엇보다 누정은 휴식과 사색의 공간을 대변한다. 풍광이 뛰어난 곳에 자리한 터라 선비들은 이곳에서 시문을 짓거나 벗들과 교유했다. 영산강 변에 자리한 풍영정(광산구 신가동)이 대표적이다. 구름과 바람이 사시사철 강물과 연하여 흘러가는 장면을 보노라면 절로 시심이 동할 정도다.

서구 세하동에 자리한 야은당.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공간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서구 세하동에 있는 만귀정에는 ‘만귀정 원운’이라는 시문이 내걸려 있다. ‘자식 교육과 집안 다스리는 게 내 뜻이라네’라는 구절이 시사하는 것은 배움과 익힘의 중요성이다.

선조를 추모하고 추념하는 기능도 누정 존립의 근거였다. 유교가 국시였던 조선시대에 충과 효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덕목이었으니 누정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당연지사다.

이번 ‘호남 누정’ 시리즈는 한국학호남진흥원(호남진흥원)과 광주일보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누구나 누정을 찾아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누정문화를 향유하도록 하자는 취지가 반영됐다. 궁극적으로 원천소스 가운데 하나인 누정문화를 확장해 K컬쳐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자는 일말의 목적도 담겨 있다.

이에 앞서 호남진흥원은 호남 누정원림 조사 연구사업을 10년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호남지역 누정 조사를 매개로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고 콘텐츠 활용을 위한 밑그림을 차분히 그리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호남진흥원이 파악한 호남의 누정은 현존(1025), 비현존(1372)을 합쳐 2397개이다. 이 가운데 현존하는 광주와 전남은 747개, 전북은 278개이다. 호남진흥원은 이 가운데 70개소 누정 의 영상과 사진, 해제 등의 기초자료를 지난 1년간의 작업을 통해 구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물론 이보다 앞서 호남한문고전연구실(현 호남지방문헌연구소)이 광주와 전남에 소재한 누정과 사찰 1450여점 DB 구축하고 ‘호남누정 기초목록’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번 시리즈는 광주의 누정을 답사해 그 안에 깃든 역사와 건축, 학술 등을 모티브로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다채롭게 조명하는 데 있다. 더러는 유가의 이상적 낙원으로, 더러는 주류정치에서 벗어난 격절의 공간으로, 사유와 교육 그리고 추모의 공간으로 이어져온 누정을 다시 보는 것은 앞선 이들의 지혜와 문화를 오늘의 시각으로 벅차게 만나는 일일 것이다.

그 항해의 첫 발을 내딛는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질정을 부탁드린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사진=한국학호남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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