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스 감동 배구 업그레이드하려면-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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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AI페퍼스 여자 프로배구단 김형실(71) 전 감독이 전화를 걸어왔다. 기자가 최근 연락한 지 하루 지나서다. 배구 코트에서 삶의 전부를 보내다시피한 그는 ‘이젠 자유인이라 종종 전화를 집에 놔두고 다닌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김 감독은 지난해 11월 돌연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시즌 개막 후 10연패.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옥쇄를 택했다. “연패는 각오한 일 아니냐”고 묻자 “원로 소리 듣는 사람이 어른 노릇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말끝을 흐렸다.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노장의 마지막 결의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에서 반전의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페퍼스는 이경수 감독대행 체제에서도 7패를 더 보태 17연패까지 갔다. 인삼공사의 한 시즌 최다 연패(20연패)를 목전에 둘 정도로 추락했다.
페퍼스 주장 이한비는 지난 31일 도로공사를 꺾고 연패에서 탈출하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음 경기에서 현대건설에 0-3, 셧아웃 패배를 당한 후 2패를 추가해 현재 3연패 중이다. 팬들은 고개를 젓겠지만 어쩌면 이한비의 눈물을 올 시즌에 더는 못 볼 수 있다. 현재 전력상 패배를 늘리긴 쉬워도 승수를 늘리기 어렵다는 게 배구계 중론이다. 김 전 감독의 말처럼 ‘프로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올 시즌에 영입한 세터 이고은과 리베로 오지영을 제외하고 타 팀으로 옮기면 정규 멤버로 뛸 선수는 없다. 창단 2년째인 페퍼스에서 뛴 것이 사실상 프로 생활의 전부인 이들에게 승리를 바라는 것은 고통을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열정·패기만으로는 한계
페퍼스는 코트에서 눈물겹도록 싸운다. 지름 20㎝, 무게 270g짜리 공을 걷어 올리기 위해 부서져라 몸을 던진다. 평균 시속 70~80㎞로 꽂히는 강서브도 견뎌 낸다. 코트에 쏟아낸 땀과 열정은 페퍼스가 단연 1위다. 왜 이기지 못할까. 선수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의 최대치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1승 20패다. 모든 스포츠가 ‘흐름’을 타지만 배구는 유독 더 하다. 페퍼스는 좋은 흐름에도 안절부절이다. 기량은 물론 경기 운영 노하우와 노련미가 부족해서다. 진검승부를 벌여야 할 20점에 선착하고도 막판 5점을 남겨두고 번번이 밀리고 진다. 기선을 잡고도 허둥대다 추월당한다. 10점대 점수에 그쳐 허망하게 세트를 내주곤 한다. 엎치락 뒤치락 혼전 상황에서 물줄기를 돌릴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하지만 김연경 같은 게임 체인저는 없다.
페퍼스는 창단 당시 젊은 선수들을 주축 삼아 3개년 계획으로 팀을 만들겠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실제 아웃사이드 히터(Outside hitter: 레프트) 이한비와 박은서, 박경현의 성장은 눈부시다. 타 구단 감독들도 인정한다. 하지만 현재가 아니라 미래 전력이라는 게 한계다. 가장 큰 문제는 페퍼스의 연패가 쌓이는 만큼 팬들의 사랑도 식어간다는 것이다. 팬들에게 마냥 승패를 떠나 배구 자체를 즐기라고 권하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다. 이제 플랜 B를 가동할 시점이 됐다. 미래 자원을 키우고 현재 전력을 보강하는 투 트랙 전략이다.
최고의 팬 서비스는 승리
페퍼스는 시즌 중반을 넘긴 상황에서 감독을 서둘러 뽑지 않고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하다. 동의한다. 당장 감독을 뽑는다고 전력에 큰 변화가 올 리 없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봄 배구가 끝나면 사실상 트레이드 시장이 열린다. 기약 없이 감독 선임을 미뤄서는 안되는 이유다. 다행히 올 시즌을 끝으로 김연경을 비롯해 20여 명이 자유 계약 선수(FA) 자격을 얻는다.
페퍼스가 보강해야 할 전력은 배구 팬들이 더 잘 안다. 취약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히터, 미들 블로커(Middle Blocker: 센터)다. 아웃사이드 히터 김연경을 잡으면 금상첨화다. 전력을 극대화하면서 젊은 선수들을 코트에서 독려하고 기량과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리더다. 스타 선수 부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팬덤을 이끌 수 있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FA 시장에서 대어를 잡는다면 중위권 성적 이상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페퍼스를 창단한 페퍼저축은행은 광주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유소년 배구 교실을 꾸준히 지원하고 지역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역 고교 선수를 입단시키는 등 선수 연계 육성 생태계도 구축했다. 지역 연고 구단으로서 가장 모범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이제 ‘최고의 팬 서비스는 승리’라는 프로 스포츠의 본질에 다가설 때가 됐다. 팬들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며 선수들을 위로하는 게 일상이 되면 곤란하다. 이제 페퍼스가 팬들에게 희망과 힐링을 안겨 줘야 하지 않을까.
/penfoot@kwangju.co.kr
페퍼스는 코트에서 눈물겹도록 싸운다. 지름 20㎝, 무게 270g짜리 공을 걷어 올리기 위해 부서져라 몸을 던진다. 평균 시속 70~80㎞로 꽂히는 강서브도 견뎌 낸다. 코트에 쏟아낸 땀과 열정은 페퍼스가 단연 1위다. 왜 이기지 못할까. 선수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의 최대치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1승 20패다. 모든 스포츠가 ‘흐름’을 타지만 배구는 유독 더 하다. 페퍼스는 좋은 흐름에도 안절부절이다. 기량은 물론 경기 운영 노하우와 노련미가 부족해서다. 진검승부를 벌여야 할 20점에 선착하고도 막판 5점을 남겨두고 번번이 밀리고 진다. 기선을 잡고도 허둥대다 추월당한다. 10점대 점수에 그쳐 허망하게 세트를 내주곤 한다. 엎치락 뒤치락 혼전 상황에서 물줄기를 돌릴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하지만 김연경 같은 게임 체인저는 없다.
페퍼스는 창단 당시 젊은 선수들을 주축 삼아 3개년 계획으로 팀을 만들겠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실제 아웃사이드 히터(Outside hitter: 레프트) 이한비와 박은서, 박경현의 성장은 눈부시다. 타 구단 감독들도 인정한다. 하지만 현재가 아니라 미래 전력이라는 게 한계다. 가장 큰 문제는 페퍼스의 연패가 쌓이는 만큼 팬들의 사랑도 식어간다는 것이다. 팬들에게 마냥 승패를 떠나 배구 자체를 즐기라고 권하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다. 이제 플랜 B를 가동할 시점이 됐다. 미래 자원을 키우고 현재 전력을 보강하는 투 트랙 전략이다.
최고의 팬 서비스는 승리
페퍼스는 시즌 중반을 넘긴 상황에서 감독을 서둘러 뽑지 않고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하다. 동의한다. 당장 감독을 뽑는다고 전력에 큰 변화가 올 리 없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봄 배구가 끝나면 사실상 트레이드 시장이 열린다. 기약 없이 감독 선임을 미뤄서는 안되는 이유다. 다행히 올 시즌을 끝으로 김연경을 비롯해 20여 명이 자유 계약 선수(FA) 자격을 얻는다.
페퍼스가 보강해야 할 전력은 배구 팬들이 더 잘 안다. 취약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히터, 미들 블로커(Middle Blocker: 센터)다. 아웃사이드 히터 김연경을 잡으면 금상첨화다. 전력을 극대화하면서 젊은 선수들을 코트에서 독려하고 기량과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리더다. 스타 선수 부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팬덤을 이끌 수 있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FA 시장에서 대어를 잡는다면 중위권 성적 이상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페퍼스를 창단한 페퍼저축은행은 광주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유소년 배구 교실을 꾸준히 지원하고 지역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역 고교 선수를 입단시키는 등 선수 연계 육성 생태계도 구축했다. 지역 연고 구단으로서 가장 모범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이제 ‘최고의 팬 서비스는 승리’라는 프로 스포츠의 본질에 다가설 때가 됐다. 팬들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며 선수들을 위로하는 게 일상이 되면 곤란하다. 이제 페퍼스가 팬들에게 희망과 힐링을 안겨 줘야 하지 않을까.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