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로 되돌아 본 광주·전남 2022] 시험문제 해킹·베끼기 출제…내신불신에 학생들만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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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로 되돌아 본 광주·전남 2022] 시험문제 해킹·베끼기 출제…내신불신에 학생들만 피해
<5> 부실한 시험관리
매년 반복되는 시험지 유출
교육당국 뚜렷한 대책 못 내놔
시험관리 시스템 재점검 나서야
2022년 12월 27일(화) 21:35
/클립아트코리아
올해 광주교육계는 고교의 부실한 시험관리로 교권이 실추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학생이 교무실에 몰래 침입해 노트북을 해킹하고, 교사들은 시험문제를 사설문제은행이나 EBS교재에서 그대로 베껴서 출제하는 등 세 곳의 고교에서 부실한 시험관리가 드러났다.

매년 반복되는 문제에 교육당국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시험관리 부실로 인해 광주지역 고교 내신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열심히 공부한 선량한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3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광주시 서구 매월동의 A고등학교에서는 학생 2명이 새벽에 교무실에 몰래 침입해 교사 10~15명의 노트북을 해킹한 사건이 발생했다.

교사들 컴퓨터에 악성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갈무리한 내용을 며칠 뒤 회수하는 방법으로 시험 문제와 답안을 빼돌린 이들의 대범한 범행 행각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대범한 범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학교의 부실한 시험문제 관리 탓이었다. 이들은 교사들이 퇴근한 심야에 잠금 장치가 해제된 창문을 통해 교무실에 침입했다.

창문도 잠기지 않은 교무실에는 시험 출제에 쓰인 교사들의 노트북이 방치된 상태였고 내부에 CCTV도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트북에는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었지만, 인터넷에 널리 알려진 방법으로 간단히 풀렸다.

A고교는 4년 전에도 시험지 유출로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가 구속되는 등 홍역을 치렀음에도 가장 기초적인 교무실 문 단속도 하지 않았다. 성적 욕심에 의한 학생들의 일탈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학교와 교사의 부실한 시험관리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뿐만 아니다. 교사가 시험문제를 베껴서 출제해 재시험을 치르는 사태도 이어졌다.

지난 9월 광주시 북구 일곡동 B고등학교의 국어교사는 중간고사 독서과목 시험문제를 인터넷 사설 문제은행 사이트에서 통째로 베껴 출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26개 문항 중 절반인 13개 문항을 베낀 것이다.

교사는 출제 마감을 하루 앞두고 사설 사이트에 유료로 회원가입하고 시험문제를 내려 받아 그대로 출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교육청은 감사를 통해 “해당 교사가 학교 업무에 쫓겨 문제를 출제하다 이 같은 일이 빚어졌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 인근 15개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시험지와 동일한 문제를 배포했으며, 응시 학생 236명 중 43명이 문제를 미리 풀어봤던 것으로 파악됐다.

불과 3개월 후 광주시 북구 C고등학교에서는 2학년 물리 중간·기말고사 문제 대부분이 ‘EBS 수능특강 물리학’ 교재에 실린 문제와 똑같이 출제된 사실이 확인됐다.

학교 측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학부모들이 학교와 시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2학년 2학기 물리 중간고사 20문항 중 객관식 10문항과 서술형 5문항을 ‘2023학년도 고3 EBS 수능특강 물리학1’ 교재에서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기말고사 25문항 중 14문항도 같은 교재에서, 나머지 11문항은 ‘2022학년도 고3 EBS 수능특강 물리학1’에서 가져와 그대로 출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학생 지도는 물론 각종 행정 업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데 고충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사안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광주 공교육 전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결국 모든 피해는 대입을 앞둔 수험생들이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활동가는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 등 내신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 시험문제에 예민한 상황이다”며 “전반적인 교육 시스템 개선과 함께 평가업무에 대해 교사들 스스로 책임감을 갖는 것이 신뢰 회복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최근 A고교에서 답안지 유출을 한 학생에 대해 진행된 결심 공판에서 장기 2년에 단기 1년의 징역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끝>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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