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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향] 한 해를 보내며 치유의 시간을…“수고했어 올해도!”
밴드 소란 ‘괜찮아’·옥상달빛 ‘수고했어 오늘도’ 등 음악 위로
대상 마주하는 ‘사진’…현대인 다독이는 루이스 웨인 고양이 그림
온정 가장 절실한 겨울, 연탄기부 등 이웃에 따뜻한 나눔 필요
2022년 12월 26일(월) 18:30
영국화가 루이스 웨인 작 ‘노래하는 세 마리 고양이’ <Wilimedia Commons>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해가 저문다. ‘코로나 19’와 함께 한 지 3년째인 올해 임인년은 고물가와 경제난, 이태원 참사까지 더해져 유독 힘겨웠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누구나 ‘치유’와 ‘위로’, ‘쉼’이 절실하다. 내 자신에게 스스로 말해보자. “수고했어! 올해도!!”

◇고단한 어깨 토닥이는 ‘청춘 응원가’

“괜찮아 실수하고 틀려도 좋아/ 왜냐면 정답은 없을 테니까 이제/ 괜찮아 몇 번을 물어봐도 좋아/ 나에게 사랑은 전부 너니까….”

밴드 ‘소란’(SORAN)이 지난 10월 발표한 신곡 ‘괜찮아(Fine)’의 노랫말이다. ‘나’는 ‘너’에게 “너의 세상들이 멀어지거나 모두 어딘가로 가버린 것 같아질 때도 천천히 와”라고 말한다. 이어 “(너는) 지금 이대로 아름다우니까, 여기서 다들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덧붙인다. 실수하고, 실패하며 힘겨워하는 청춘들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응원가이다.

밴드 ‘소란’(SORAN)이 지난 10월 발표한 신곡 ‘괜찮아(Fine)의 뮤직 비디오.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든 보컬 고영배는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 출연해 “둘째 딸을 생각하며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가사를) 쓰면서 세상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무한도전’에서 하하 형이 군대 갔다 왔을 때 노홍철 님이 ‘우리 다들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한 데서 힌트를 얻었다”고 밝혔다.

앞서 발표된 이한철의 ‘슈퍼스타’(2005년)와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2011년) 또한 팍팍하고 고단한 세상살이를 하는 청춘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응원한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오며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노래와 음악의 힘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임인년이 저문다. ‘코로나 19’와 함께 한지 3년째인 올해는 고물가와 경제난이 더해졌다. 지난 10월말 158명의 소중한 젊은 생명이 압사한 ‘이태원 참사’는 시민 모두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을 남겼다. 그래서 숨 가쁘게 한 해를 관통해오는 동안 가중된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누구나 ‘치유’와 ‘위로’, ‘쉼’을 필요로 한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 답답한 일상 속에서 그나마 노래 한곡, 시 한편과 같은 ‘문화예술’, 애완동물과 녹색 숲 등 ‘자연’이 숨구멍 역할을 한다. 슬픔을 이겨내는 힘이 자연과 예술에 깃들여 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며 올해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치유’와 ‘행복’, ‘느림의 삶’을 생각해본다.

◇의인화한 고양이 그림 그리며 위안 찾은 화가

어느 시대나 세상살이의 기쁨과 노여움, 슬픔, 즐거움(喜怒哀樂)이 함께 해왔다. 100여 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지난 4월 상영됐던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감독 윌 샤프)는 시대를 앞서 살았던 한 영국 화가의 존재를 드러냈다. 미국 월트 디즈니의 ‘미키마우스’나 ‘톰과 제리’보다 한 세대 이상 빠른 시기에 의인화한 고양이 그림을 그렸던 그의 이름은 루이스 웨인(1860~1939). 그는 고양이 그림을 그리며 사별의 아픔을 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루이스 웨인은 23살이던 1884년에 누이동생들의 가정교사인 10살 연상의 에밀리 리처드슨과 결혼했다. 그런데 에밀리는 유방암으로 투병하며 침대에 갇혀 살다시피 해야 했다. 이때 그녀의 소일거리는 ‘피터’로 이름붙인 새끼고양이였다. 그는 에밀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 ‘피터’를 스케치 했다. 1886년 11일간에 걸쳐 그린 고양이 신문 삽화가 대중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 에밀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는 고양이를 의인화한 그림을 평생 그려나갔다.

그의 고양이 그림은 사후 30여년이 지난 1970년대 들어서 재조명됐지만, 100여년이라는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현대인들의 마음을 감싸고 다독인다. 이영문 정신과 전문의(전 아주대 의대교수)는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정신병을 포함한 지독한 불운 속에서 루이스 웨인은 고양이만이 위안이 되는 삶을 살았다. 언제나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구원한다. 루이스 웨인에게 고양이는 구원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었다.”(크리스 비틀스 지음 ‘루이스 웨인의 웃기고 슬프고 이상한 고양이들’ 저공비행 刊·2012년)

◇카메라 들고 자신 안의 어두운 감정과 ‘대면’

사진도 치유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한겨레신문 사진기자 출신인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는 사진이 지닌 치유와 회복의 힘을 믿는다. 사진이 치유의 도구로 쓰일 수 있는 이유는 대상을 마주하지 않고는 찍을 수 없는, ‘대면’이라는 특성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2020년 펴낸 에세이집 ‘당신 곁에 있습니다’(소동 刊)에서 ‘사진행위와 치유의 힘’에 대한 신념을 밝힌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내면에 쌓인 어두운 감정과 당당히 맞대응하면서 시린 기억의 무게를 덜어내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게 하는 것이 사진의 치유적 힘이다. 렌즈는 ‘바깥’을 향해 있더라도 사진은 자신의 ‘안’에서 생성되는 시선의 매개체다. 카메라를 들면 외부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의 기운으로 대상과 마주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드리운 어떤 형태의 감정을 살필 수 있는, 즉 자기를 돌보는 자위적 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이는 사진의 또 다른 쓰임새다.”

임 대표는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고문 피해자와 1970~80년대 간첩조작 피해자 등 국가폭력에 상처를 입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손쉬운 치유는 자연을 접하는 것이다. 식물을 손수 기르거나, 가까운 나무숲이나 산을 찾아 가는 방법이다. 이름난 산이나 숲이 아니더라도 집이나 사무실 가까이 있는 가로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다가오는 계절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울긋불긋 물들었다가 바람결에 낙엽 지는 나무의 생태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람 역시 풀과 나무처럼 바람, 비, 햇빛이 필요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느림의 삶’

사계절 가운데 겨울은 어느 때보다 온정이 절실하다. 올해는 고물가와 고유가, 경제난이 겹쳐 연탄기부 등 온정 나눔이 저조하다고 한다. 연탄을 때는 취약계층이 혹독한 겨울을 나려면 지역사회 공동체의 나눔 정신과 온정의 손길이 필요하다. 옛 사람들은 겨울철에 굶주린 날것들을 위하여 까치밥을 남겨두었다. 십시일반(十匙一飯)해 불우한 이웃들을 돕겠다는 공동체 정신이 뒤따라야한다.

한국사회는 1960년대 산업화 추진과정에서 ‘빨리빨리 문화’를 신봉했다. 하지만 지난 1월 신축 중이던 광주시 서구 화정동 39층 아파트 외벽이 붕괴되는 등 그에 따른 부작용은 지금도 빈발하고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을 3년 겪으며 우리는 인간관계와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한해를 마무리 하며 이제 일상에서 자연의 속도를 되찾아야 한다. 숨 가쁘게 앞만 보고 질주하는게 아니라 싸목싸목 걸으며 주위 풀과 나무, 사물을 둘러봐야한다. 먹거리 역시 ‘패스트푸드’가 아닌 ‘슬로 푸드’를 먹어야 한다. 달팽이를 상징물로 하는 ‘슬로 시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내 욕심만 채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워야 한다. ‘느림’과 ‘비움’의 미학이다.

문태준 시인은 지난 2009년에 처음으로 출간한 산문집 ‘느림보 마음’(마음의 숲 刊)에 실린 ‘걸음의 속도’에서 독자들에게 자연의 보폭으로 걸어가자고 권유한다.

“내 걸음의 속도를 자연의 속도에 맞춰 걸어갔습니다. 아주 완행으로 갔습니다. 내가 걸음의 속도를 늦추자 주변도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내리막길은 내리막길의 속도로, 오르막길은 오르막길의 속도로 걸어갔습니다. 길이 원하는 대로, 나의 몸이 견딜 만 하게. 맞춘 속도로. 내가 자연과 나란히 걸어가되 두 심장의 호흡이 너무 가쁘지는 않게. (중략) …이제 강을 만나면 강의 속도로 걸어갈 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새를 만나면 새를 먼저 보낼 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 뒤따라오며 나의 이름을 부르면 서서 기다릴 줄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곡성군 입면 서봉마을에 사는 평범한 윤금순 ‘할매 시인’의 ‘눈’ 작품은 여운을 남긴다.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