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문화송년회로 아듀 2025!
차분하고 따뜻하게, 문화 향유하며 한해 마무리
![]() 지난 9월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기념전 <장미 토끼 소금: 살아 있는 제의> 관람후 기념촬영하고 있는 광주미술관회 회원들. /광주미술관회 제공 |
연말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시끌벅적한 술자리 대신 전시회와 공연장, 서점과 미술관을 찾아 취향과 감성을 나누고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문화송년회’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한 해 동안 바쁘게 흘려보낸 감정과 시간을 예술 속에서 차분히 되짚어보려는 흐름이다.
문화송년회의 매력은 분명하다. 미술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춰 서면 마음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공연장의 무대 위에서 흐르는 음악은 잊고 있던 감정을 불러낸다. 어떤 이들에게 문화는 한 해를 정리하는 방식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조용한 선물이다.
전국적으로도 연말 문화행사는 활기를 띤다. 송년 갈라 콘서트와 발레 공연 ‘호두까기 인형’, 미술관의 연말 특별전과 아티스트 토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광주에서도 문화로 한 해를 맺으려는 움직임이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사단법인 광주미술관회의 ‘미술인의 밤’과 작은 문화모임으로 첫발을 내딛은 ’라이트하우스‘도 그 중 하나다.
◇사단법인 광주미술관회 ‘미술인의 밤’ 기획
광주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후원조직, 사단법인 광주미술관회는 올해 연말을 ‘미술인의 밤’으로 마무리한다.
김영희 광주미술관회 이사장은 “이름이 송년회가 아니어도 결국 예술로 한 해를 맺는 자리이니만큼 더 뜻깊은 송년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사단법인 광주미술관회는 지난 2004년, 당시 시립미술관의 토대가 아직 단단하지 않던 시절 “미술관을 시민의 힘으로 더 단단하게 지켜보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초대 회장인 김응서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 후원조직을 벤치마킹해 만든 이 모임은 한때 지역 미술강좌와 기행, 작가 지원 등을 펼치며 활발했지만 관장 교체 등 여러 상황으로 활동이 뜸해지기도 했다.
전환점은 2023년이었다. 당시 새로 선임된 시립미술관장이 “미술관을 서포트하는 사단법인이 있으면 미술관이 훨씬 활성화된다”는 문제의식을 던졌고 결국 김영희 이사장이 조직을 맡아 재정립에 나섰다.
김 이사장은 광주시립미술관만을 오롯이 지원하는 공익법인 전환을 추진했고 기획재정부 승인을 통해 전국에서도 드문 ‘미술관 공익법인’으로 새 간판을 달았다. 공익법인이 된 뒤 미술관회의 활동은 ‘후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광주학생미술대전’이었다.
뒤이어 깊이 있는 전시 관람 프로그램 ‘문화마실’을 만들었다. 학예사의 해설과 함께 10~15명 규모로 전시를 ‘시크릿하게’ 읽어보는 이 활동은 시립미술관뿐 아니라 ACC 구본창 전시, G.MAP 백남준 전시 등 지역의 중요한 전시 현장으로 확장됐다. 올해는 명사 초청 강의도 시립미술관과의 협약을 통해 무료로 진행했고 하정웅 청년작가전의 ‘청년작가상’과 상금 2000만 원 지원도 맡았다.
이런 한 해의 흐름이 모이는 자리가 오는 29일 광주시립미술관 로비에서 열릴 ‘미술인의 밤’이다. 이번 행사는 사단법인 광주미술관회가 시립미술관에 약정한 연간 후원금 가운데 일부를 ‘연말 문화행사’ 항목으로 편성해 마련된다.
시립미술관 서포터즈와 도슨트,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원로 미술인, 레지던시 작가, 미술관회 회원 등 200여 명이 초청된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며 작은 선물 교환과 추첨 같은 ‘아나바다식 소소한 재미’도 곁들일 예정이다.
“미술인 중에서 악기나 노래를 하는 분들이 계세요. 테이블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노래도 듣고, 서로 친해지는 따뜻한 분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 이사장은 이 자리가 미술인을 위한 노고 치하의 시간이자 후원자들에게도 자신의 기부가 어떤 온도로 돌아오는지 체감하는 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문화송년회가 거창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미술 앞에서 한 해를 조용히 덮어두고 소란보다 예술의 숨결로 새해를 맞이해보자는 마음이 모이는 거죠. 이런 자리가 계속된다면 지역문화도 더 단단해지고 우리 마음도 더 따뜻해질 것 같아요. ‘미술인의 밤’이 그런 연말의 풍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수다떠는 모임 대신 문화산책으로 풍요로운 연말
문화나들이 모임 ‘라이트 하우스’. 모임명에는 “삶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동안 서로의 길을 비춰주는 작은 빛이 되자”는 의미를 담았다. 아이를 키우며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모여 만들어진 모임이지만 그 안에는 세대와 시간을 넘어선 정서적인 연대가 자리한다. 13년을 함께한 이도 있고, 6개월 전 새롭게 합류한 이도 있다.
그동안은 가끔 만나 자녀 이야기와 살아가는 고민을 나누며 일상의 숨구멍을 만들었다면 정식 모임으로 자리를 잡은 건 불과 석 달 전이다. “수다만 떨어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뭔가 더 좋은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이 나오면서였다. 이상은씨의 아이디어로 ‘전시·공연이 있는 문화나들이’를 시작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지난 11월, 주말을 이용해 떠난 첫 미술관 나들이는 기대 이상이었다.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서로의 감성을 다시 깨우는 시간이었다.
서성복씨는 “사람사는 이야기만 나눠도 충분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작품 앞에 서보니 마음에 훅 들어오는 게 있더라”며 “숨겨져 있던 감성이 깨어나는 느낌이랄까. 이 시간이 이렇게 크게 와닿을 줄 몰랐다”고 전했다.
김윤희씨는 “아이 셋 키우고 살림하느라 너무 바빴는데,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숨 고르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됐다”며 “다음에는 클래식 공연을 함께 들어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막내 멤버 하연화씨는 모임 이전부터 가족들과 종종 미술관을 찾았다. “자주는 못 가지만, 갈 때마다 참 좋아요. 지난 10월에는 친정 엄마와 아이들, 오빠 가족까지 3대가 함께 아트페어에 다녀왔어요. 작품 한 점을 선물 받았는데, 너무 특별하더라고요.” 연말에도 가족과 함께 다시 미술관을 찾고 싶다는 그의 말은 소박하지만 따뜻한 바람처럼 들렸다.
이날 관람에서는 작품을 보며 오래된 집의 정취,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도 있었다. 이영아씨는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하느라 잊고 지냈던 감수성이 스스로 놀랄 만큼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며 “아득한 옛날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문득 떠오르고, 참 오랜만에 나를 만난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작품을 감상하던 조남숙씨는 “그림을 집에 걸어놓고 가족들과 매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물론 매번 살 수는 없으니 미술관을 많이 다니면서 보는 걸로 만족하겠다”고 웃었다.
두 번째 문화나들이는 12월로 예정돼 있다. 양림동의 작은 갤러리와 미술관을 잇는 거리 산책, 마을에서 진행하는 공연을 함께 보며 ‘문화송년회’를 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조남숙씨는 “다음 문화나들이는 어디로 갈까요? 송년회도 이렇게 하는 거죠? 벌써부터 기대돼요”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모임장을 맡고 있는 서성복씨는 문화나들이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엄마로, 아내로, 또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나를 위한 시간은 늘 뒤로 미뤄지잖아요. 이 모임이 잠시라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서로를 비춰주는 작은 등대처럼요.”
‘라이트 하우스’는 아직 시작 단계지만 구성원들이 느끼는 감정만큼은 오래된 모임처럼 단단하다.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예술 앞에서 숨을 고르고, 함께 걷고 감탄하며 작은 행복을 나누는 시간들. 그들이 준비하는 연말 문화송년회는 북적임보다 차분한 감성으로 마음을 정리하려는 이들의 방식이다. 모임의 이름처럼 서로의 일상을 비추는 작은 빛이 모여 연말의 풍경을 완성해 갈 ‘라이트 하우스’의 문화송년회가 기대된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문화송년회의 매력은 분명하다. 미술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춰 서면 마음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공연장의 무대 위에서 흐르는 음악은 잊고 있던 감정을 불러낸다. 어떤 이들에게 문화는 한 해를 정리하는 방식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조용한 선물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후원조직, 사단법인 광주미술관회는 올해 연말을 ‘미술인의 밤’으로 마무리한다.
김영희 광주미술관회 이사장은 “이름이 송년회가 아니어도 결국 예술로 한 해를 맺는 자리이니만큼 더 뜻깊은 송년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사단법인 광주미술관회는 지난 2004년, 당시 시립미술관의 토대가 아직 단단하지 않던 시절 “미술관을 시민의 힘으로 더 단단하게 지켜보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초대 회장인 김응서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 후원조직을 벤치마킹해 만든 이 모임은 한때 지역 미술강좌와 기행, 작가 지원 등을 펼치며 활발했지만 관장 교체 등 여러 상황으로 활동이 뜸해지기도 했다.
전환점은 2023년이었다. 당시 새로 선임된 시립미술관장이 “미술관을 서포트하는 사단법인이 있으면 미술관이 훨씬 활성화된다”는 문제의식을 던졌고 결국 김영희 이사장이 조직을 맡아 재정립에 나섰다.
김 이사장은 광주시립미술관만을 오롯이 지원하는 공익법인 전환을 추진했고 기획재정부 승인을 통해 전국에서도 드문 ‘미술관 공익법인’으로 새 간판을 달았다. 공익법인이 된 뒤 미술관회의 활동은 ‘후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광주학생미술대전’이었다.
뒤이어 깊이 있는 전시 관람 프로그램 ‘문화마실’을 만들었다. 학예사의 해설과 함께 10~15명 규모로 전시를 ‘시크릿하게’ 읽어보는 이 활동은 시립미술관뿐 아니라 ACC 구본창 전시, G.MAP 백남준 전시 등 지역의 중요한 전시 현장으로 확장됐다. 올해는 명사 초청 강의도 시립미술관과의 협약을 통해 무료로 진행했고 하정웅 청년작가전의 ‘청년작가상’과 상금 2000만 원 지원도 맡았다.
![]() 광주미술관회 회원들이 지난 3월 <ACC FOCUS 구본창: 사물의 초상>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광주미술관회 제공 |
시립미술관 서포터즈와 도슨트,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원로 미술인, 레지던시 작가, 미술관회 회원 등 200여 명이 초청된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며 작은 선물 교환과 추첨 같은 ‘아나바다식 소소한 재미’도 곁들일 예정이다.
“미술인 중에서 악기나 노래를 하는 분들이 계세요. 테이블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노래도 듣고, 서로 친해지는 따뜻한 분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 이사장은 이 자리가 미술인을 위한 노고 치하의 시간이자 후원자들에게도 자신의 기부가 어떤 온도로 돌아오는지 체감하는 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문화송년회가 거창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미술 앞에서 한 해를 조용히 덮어두고 소란보다 예술의 숨결로 새해를 맞이해보자는 마음이 모이는 거죠. 이런 자리가 계속된다면 지역문화도 더 단단해지고 우리 마음도 더 따뜻해질 것 같아요. ‘미술인의 밤’이 그런 연말의 풍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 문화나들이 모임 ‘라이트 하우스’ 회원들의 미술관 관람 모습. 12월에는 ‘문화송년회’를 계획하고 있다. |
문화나들이 모임 ‘라이트 하우스’. 모임명에는 “삶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동안 서로의 길을 비춰주는 작은 빛이 되자”는 의미를 담았다. 아이를 키우며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모여 만들어진 모임이지만 그 안에는 세대와 시간을 넘어선 정서적인 연대가 자리한다. 13년을 함께한 이도 있고, 6개월 전 새롭게 합류한 이도 있다.
그동안은 가끔 만나 자녀 이야기와 살아가는 고민을 나누며 일상의 숨구멍을 만들었다면 정식 모임으로 자리를 잡은 건 불과 석 달 전이다. “수다만 떨어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뭔가 더 좋은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이 나오면서였다. 이상은씨의 아이디어로 ‘전시·공연이 있는 문화나들이’를 시작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지난 11월, 주말을 이용해 떠난 첫 미술관 나들이는 기대 이상이었다.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서로의 감성을 다시 깨우는 시간이었다.
서성복씨는 “사람사는 이야기만 나눠도 충분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작품 앞에 서보니 마음에 훅 들어오는 게 있더라”며 “숨겨져 있던 감성이 깨어나는 느낌이랄까. 이 시간이 이렇게 크게 와닿을 줄 몰랐다”고 전했다.
김윤희씨는 “아이 셋 키우고 살림하느라 너무 바빴는데,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숨 고르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됐다”며 “다음에는 클래식 공연을 함께 들어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하연화(왼쪽 두 번째)씨가 지난 10월 가족들과 아트페어 방문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연화씨 제공> |
이날 관람에서는 작품을 보며 오래된 집의 정취,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도 있었다. 이영아씨는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하느라 잊고 지냈던 감수성이 스스로 놀랄 만큼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며 “아득한 옛날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문득 떠오르고, 참 오랜만에 나를 만난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작품을 감상하던 조남숙씨는 “그림을 집에 걸어놓고 가족들과 매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물론 매번 살 수는 없으니 미술관을 많이 다니면서 보는 걸로 만족하겠다”고 웃었다.
두 번째 문화나들이는 12월로 예정돼 있다. 양림동의 작은 갤러리와 미술관을 잇는 거리 산책, 마을에서 진행하는 공연을 함께 보며 ‘문화송년회’를 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조남숙씨는 “다음 문화나들이는 어디로 갈까요? 송년회도 이렇게 하는 거죠? 벌써부터 기대돼요”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모임장을 맡고 있는 서성복씨는 문화나들이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엄마로, 아내로, 또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나를 위한 시간은 늘 뒤로 미뤄지잖아요. 이 모임이 잠시라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서로를 비춰주는 작은 등대처럼요.”
‘라이트 하우스’는 아직 시작 단계지만 구성원들이 느끼는 감정만큼은 오래된 모임처럼 단단하다.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예술 앞에서 숨을 고르고, 함께 걷고 감탄하며 작은 행복을 나누는 시간들. 그들이 준비하는 연말 문화송년회는 북적임보다 차분한 감성으로 마음을 정리하려는 이들의 방식이다. 모임의 이름처럼 서로의 일상을 비추는 작은 빛이 모여 연말의 풍경을 완성해 갈 ‘라이트 하우스’의 문화송년회가 기대된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