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공간, 시대를 기억하다 - 김명식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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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공간, 시대를 기억하다 - 김명식 지음
‘마래터널’·‘오월걸상’…
시대의 아픔 간직한 ‘기억공간’을 찾아
2022년 12월 08일(목) 19:35
여수 마래 제2터널은 지난 2004년 등록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됐다. 여수엑스포역이 위치한 덕충동에서 만성리 검은모래해변으로 가는 길에 있다. 터널 안은 거친 돌의 질감이 인상적이어서 자동차 광고에도 나온 적이 있다.

이 터널은 역사의 상흔이 깃든 곳이다. 마래 제2터널로 불리는 듯에서 보듯, 마래 1터널이 있다. 이들 마래 터널은 일제 침략의 역사와 관련돼 있다. 1926년 일제는 군량미를 비축하기 위해 창고용으로 마래 제1터널을 뚫었다. 바로 옆에 군사용 터널을 함께 뚫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래 제2터널이다.

마래 제2터널은 일제가 군수물자를 운송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여수 시민이 강제 동원됐다. 피와 땀이 서린 비극의 역사 현장이다. “이 터널은 망치와 정으로 하나하나 두들겨 깨부수고 깎아낸, 재료가 그대로 드러난 거친 면의 공간을 보여줍니다. 벽면을 쓰다듬어봅니다. 거칠고 차갑게 느껴지는 날카로운 벽면의 질감과 한기는 손끝에서 가슴, 머리로 전해집니다.”

우리 주변에는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공간이 있다.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러한 공간은 문득문득 비극으로부터 공동체적 가치와 의미를 일깨운다.

기억의 공간 ‘다크 투어리즘’을 조명한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의 저자 김명식이 펴낸 ‘공간, 시대를 기억하다’는 공간에서 의미를 찾고 나아가 공감과 연민, 회복을 얽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특정 공간이 일상의 배경과 무대가 되기도 하지만 거룩한 성소로 투영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식민지 시기 일제가 군수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여수시민들을 강제동원해 건설한 ‘마래 제2터널’
흔히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말은 ‘흑역사 탐방’으로 불린다. 저자는 아픈 기억을 품고 있는 부정성(不淨性)의 공간에서 교훈과 희망을 찾고자 했던 시도가 이제는 일상의 공간을 찾아가는 데까지 확장됐다고 본다.

저자는 모두 3개의 분야로 나눠 기억의 공간을 산책한다. 첫 번째 공간은 근현대의 비극적 기억이 스며있는 곳으로 역사화된 기억 공간이 주요 테마다. 폭압적이고 야만적인 권력에 의해 무고한 이들이 희생된 장소들이다.

80년 5월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무고한 시민들이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고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 ‘오월걸상’은 이들을 추모하고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작됐다. ‘오월정신의 전국화, 현재화’를 기치로 활동하는 오월걸상위원회가 “5·18정신이 항쟁의 중심 도시였던 광주광역시에만 국한되어선” 안 된다는 기치로 추진했다.

기존과 달리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의자형태의 기념물을 상정했다. 목포역 광장을 비롯해 서울 명동성당 앞, 부산 서면, 서울기독교회관 앞 등지에 세워졌다. 첫 오월 걸상은 부산 서면의 쌈지공원에 2018년 1월 15일 설치됐다. 1987년 광주학살 책임 규명과 호헌철폐를 주창했던 황보영국 열사를 기리기 위한 의미였다.

저자는 일상의 기억 공간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과거 ‘양재시민의숲’으로 불렸던 서울 양재동 ‘매헌시민의숲’에는 여러 추모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유격백마부대 충혼탑을 비롯해 대한항공 858기 희생자위령탑, 삼풍백화점 참사 희생자 위령탑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들어선 ‘일상의 추념’은 지난 2011년 우면산 일대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숨져간 이들의 넋을 달래는 ‘21세기형’ 기념비도 있다.

책에는 해외의 기억 공간들도 조명하고 있다. 전범국가 독일의 반성이 깃든 추모공간들은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나치에 핍박받고 학살된 동성애자를 추모하는 ‘박해받은 동성애자 추모비’와 유대인들의 저서를 붙태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분서기념도서관’ 등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이 기억의 공간을 통해 기억의 조형력이 어떻게 공간을 만드는지, 그 공간은 어떻게 우리를 기억 속으로 이끄는지 함께 살피고자 합니다”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뜨인돌·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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