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불여 장성’과 호남 유학- 강대석 장성군 정책자문위원장·시인
  전체메뉴
‘문불여 장성’과 호남 유학- 강대석 장성군 정책자문위원장·시인
2022년 12월 07일(수) 00:45
장성역 앞을 지나다 보면 커다란 표지석에 쓰인 ‘문불여 장성’(文不如 長城)이란 문구를 볼 수 있다. “학문은 장성만한 곳이 없다”란 뜻으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전국을 돌아보고 장성에 대해 평한 말이다.

흥선대원군이 집정할 당시 장성에 거주하는 노사 기정진(1798~1879)은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지성으로 명성이 높았다. 유학자지만 경세에도 밝아 국난이 있을 때마다 나라를 걱정하며 상소를 올려 간언을 서슴지 않은 애국자였다. 65세 때 올린 임술의책은 삼정의 폐단에 따른 개혁을 주장했고, 69세 때 올린 병인소는 전쟁에 대비한 군비 강화책과 제대로 된 정치를 강조하며 외세와 외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주장으로 세상을 깨우쳤다. 그의 주장은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책에 반영되었고 후에 위정척사 사상의 이론적 기초가 되어 그의 제자들이 호남 의병을 이끄는 주축이 되었다. 그의 학문을 계승한 노사학파의 문도(門徒)는 모두 8000여 명에 달해 조선 후기 최대의 학단(學團)을 이루었다.

조선조 호남 유학의 유종(儒宗)은 당연 하서 김인후(1510~1560)다. 장성 맥동에서 태어난 그는 영남의 퇴계 이황과 함께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우리나라 18현에 배향되었다. 정조는 하서 선생에 대해 “학문과 절의와 문장에 있어서 이를 다 갖춘 사람은 김인후 한 사람뿐이다”라고 극찬했고, 우암 송시열도 “우리나라의 많은 인물 중에서 도학과 절의와 문장을 겸비한 탁월한 이는 거의 없는데 하늘이 우리를 도와 하서 선생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여 이 세 가지를 다 갖추게 하였다”라고 했다. 선생의 학덕을 그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서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필암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유서 깊은 서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그의 명성을 더하고 있다.

이밖에도 장성 출신 학자로는. 고려 문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서능, 조선의 최고 청백리이자 백비(白碑)로 유명한 박수량, 화차를 발명하여 임란 극복에 앞장선 변이중, 청백리로 삼마태수란 별명을 얻은 송흠 등 미처 열거하기 힘들다.

장성은 과거급제자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포초장추(浦初長推)라 하여 “과거 첫 시험에는 포천 출신이 많고 마지막 시험인 종장에는 장성 출신이 많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아마 흥선대원군이 장성을 가리켜 ‘문불여 장성’이라 평을 한 것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요즘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전북과 광주·전남이 한국학 호남진흥원(이하 전라유학연구원 포함) 합병 이전을 두고 갈등이 있는 느낌이다, 전북은 독자적으로 전라유학연구원을 부안에 세우려 하고, 광주·전남은 기존에 광주에 있는 한국학 호남진흥원과 합병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 보도에는 사실 여부를 떠나 전북 부안으로 합병 이전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국학 호남진흥원에 자료와 유물을 기증했던 분들이 이를 취소하겠다며 이전을 반대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원론적으로 호남학 연구는 전북과 광주·전남을 아울러 하나로 모았을 때 연구 인력, 자료 수집, 연구비 확보 등 모든 면에서 효율적일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수도권과 영남권에 밀려 낙후된 호남이 호남학 연구까지 분리되어 추진한다는 것은 보기에 딱한 일이다.

영남을 보자. 부산·대구·울산 등 광역시 다 제치고 안동에 한국 국학진흥원이 있다. 그것은 안동이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 서애 류성룡의 병산서원과 하회마을 등이 있는 영남 유학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한국학 호남진흥원도 합병 이전을 고려한다면 호남 유학의 중심지를 찾아 입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장성은 전북과 광주·전남의 경계에 있어 전주와 부안과도 가까운 호남 유학의 중심지이다. 입지 선정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