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하)] 세계적 거장의 조형물, 놀이터·벤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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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하)] 세계적 거장의 조형물, 놀이터·벤치가 되다
아이들 놀이기구·시민들의 쉼터로 변신한 베이앙의 ‘바르베르그 거인’
피카소·칼더 품은 현대미술관 야외 공원…자연과 하나된 ‘열린 갤러리’
市 소장품 10만 여점…예술위원회 수집위 통해 조각 등 작품 구입
2022년 11월 23일(수) 23:00
3m 높이의 여자 흉상.
파블로 피카소, 니키 드 생팔, 자비에 베이앙….

스톡홀름의 거리를 걷다 보면 굳이 미술관에 가지 않더라도 세계적인 거장의 명작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도심 속 공원이나 미술관의 야외공원은 시민들에게 미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공공장소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 쬐는 벤치에 앉아 예술의 향기를 만끽하는 모습은 또하나의 ‘작품’이다.

이처럼 스톡홀름은 도시 전체가 현대미술의 향연장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일찍이 1950년 대 부터 ‘문화복지’의 개념을 도입한 스웨덴 정부는 지하철(본보 2022년 11월21일자) 뿐만 아니라 공원, 광장, 항만, 미술관 야외 공간 등에 예술성이 뛰어난 조각상이나 조형물을 설치하는 데 주력했다.

스톡홀름의 근교에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인 자비에 베이앙이 제작한 초대형 조형물 ‘바르베르그 거인’(Varberges Giants)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한 시민이 잔디 위에 누워 있는 19m 길이의 남자 조형물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스톡홀름 예술위원회>
스톡홀름시가 내건 슬로건은 ‘문화가 있는 삶’. 인구 97만 여명이 누구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일상에서 문화향유를 제한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스톡홀름시는 1973년 부터 문화예술국 산하에 예술위원회(Stockholm Art Council)를 설치해 시예산의 일부를 공공미술작품 구입에 할애하는 ‘시 예술품 컬렉션’(City Art Collection)과 건축비용의 1%를 미술품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1% 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시 예술품 컬렉션’을 통해 시가 현재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은 약 10만 여 점. 규모도 규모이지만 회화, 조각, 미디어아트, 판화, 사진, 설치 작품 등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예술위원회는 이들 컬렉션을 수장고에 묵혀 두지 않고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전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100개 나라의 해외 공관에서 부터 공립병원, 지하철, 야외 조각공원, 도서관 등 공공장소라면 어디든 컬렉션을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시 예술품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미술관의 야외 공원이다. 스톡홀름시에 자리하고 있는 50여 개의 미술관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아티스트의 조각품에서부터 스웨덴 예술가들의 역동적인 설치조형물까지 각양각색의 공공미술작품이 설치돼 있다. 시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는 ‘스톡홀름 현대미술관’(Moderna Museet, 이하 현대미술관)의 야외조각 공원은 대표적인 예다.

현대미술관은 셉스홀멘(Skeppsholmen)섬의 17세기 해군병기창 건물 뒷편에 자리한 글로벌 미술관이다. ‘북유럽의 오르세미술관’으로 불릴 정도로 세계 미술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로버트 라우센버그, 앤디 워홀, 도날드 주드 등 19~20세기 근현대미술 작품 13만 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원래 이 지역은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인 감라스탄(Gamla Stan)의 동쪽에 있는 곳으로, 1958년 스웨덴 정부는 옛 해군 병기창 건물 인근의 체육관을 리모델링한 후 1998년 인근에 현대미술관을 건립했다. 하지만 체육관을 개조한 탓인지 개관 초기 부터 미술관 건물에 하자가 발생하자 2002년 보수작업을 거쳐 2004년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에게 설계를 의뢰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개관했다.

하지만 거장의 ‘명성’이 무색하게 미술관 외관은 지극히 소박하다. 총 부지면적은 약 1만 8000㎡. 입구와 전시실을 1층에 배치하고 나머지 시설은 모두 지하로 설계해 화려한 건축미는 기대할 수 없지만 소장품 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스웨덴 정부의 각별한 지원에서 엿볼 수 있듯 현대미술관은 스톡홀름을 상징하는 핵심 문화 인프라다. 섬에 자리하고 있지만 번화가인 감라스탄과 멀지 않고 다리로 연결돼 교통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둘러 볼 수 있어 연중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미술관 입구에 조성된 야외조각공원은 현대미술관의 ‘꽃’이다. 예술위원회의 컬렉션으로 조성된 이 곳에는 파블로 피카소, 니키드 생팔, 알렉산더 칼더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 14점을 만날 수 있다. 비록 미술관 건물은 화물창고처럼 투박하지만 조각공원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도심 속 오아시스 같다.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입구에 자리한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 ‘4개의 요소’(The Four Elements).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미술관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의 모빌 작품 ‘4개의 요소’(The Four Elements, 1961년 작)이다. 특유의 원색과 기하학적인 문양의 구조물이 푸른 하늘과 함께 어우러져 미술관 관람객들과 인근을 지나는 시민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과 팅글리(Jean Tinguely)의 콜라보인 ‘환상적인 천국’(The Fantastic Paradise·1966)은 화려한 옷을 걸쳐 입은 허수아비 모습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이밖에 인상파 화가 에두와르 마네의 동명 타이틀인 피카소의 ‘풀밭위의 점심’은 나체 차림의 여성이 등장하는 마네의 작품과 달리 모든 이들이 옷을 입지 않고 있어 흥미롭다.

스톡홀름에는 단순히 감상용이 아닌, 시민들과 소통하는 체험형 조형물도 많다. 시내 중심가에서 트램을 타고 4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바르베르그 (Varbergs)공원에 살고 있는 ‘거인’이 그 주인공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조형물은 프랑스 출신의 설치작가 자비에 베이앙의 작품으로,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19m 길이의 남자 전신상과 잔디위에 팔을 괴고 있는 3m 높이의 여자 흉상이다. . 드넓은 공원 위에 설치된 블루톤의 두 거인상은 자연과 예술, 예술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자이다.

‘바르베르그 거인’은 스톡홀름 예술위원회가 2년에 걸쳐 진행한 국제설계 공모를 통해 성사된 프로젝트이다.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예술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기획한 예술위원회는 압도적인 스케일은 물론 시민들이 직접 조형물의 일부가 되어 체험할 수 있는 자비에 베이앙의 설계안을 최종작으로 선정했다

인상파 화가 에두와르 마네의 대표작 ‘풀밭위의 점심’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일부).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들 거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이다. 유치원에서 단체 견학을 온 어린이들은 거인의 배 위에서 뛰어다니고, 젊은 연인들은 여자 흉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책을 읽거나 기타를 연주하며 오븟한 시간을 보낸다. 세계적인 거장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지만 이들에게는 동네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놀이터나 벤치다.

스톡홀름 예술위원회는 “현재 스톡홀름 시내 전역에는 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왕궁과 조각공원 등 7곳에 시가 소장하고 있는 공공미술작품들이 상설 전시돼 있다”면서 “미술관의 조각공원이나 도심의 조형물이 시민들에게 미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바르베르그 거인’ 프로젝트는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되돌아 보게 하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스톡홀름=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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