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강원도 고성] 군사도시에서 문화도시로…도시 색깔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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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강원도 고성] 군사도시에서 문화도시로…도시 색깔을 바꾸다
해발 205m 옥녀봉 정상 10m 조각상 ‘그리팅맨’
북녘 땅 향해 인사…배려·존중·평화 의미 담아
평화누리길 12코스 포함…관광지·랜드마크로
통일전망대 가는 길 ‘DMZ 박물관’ 6·15남북선언 기념 이철희 작 ‘하나되어’ 눈길
강원도 고성 16m 높이 ‘진격의 농부’ 위압감…주변과 부조화 완공과 동시에 폐쇄
2022년 10월 23일(일) 23:00
DMZ박물관의 상징 조형물인 ‘평화의 날개’
경기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군은 4000여 점의 선사시대 유물이 발굴된 유적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전국 최대 규모의 ‘전곡리 선사박물관’을 건립해 화제를 모았다. 단지 박물관 하나를 지었을 뿐인데 연천군은 군사 도시에서 문화도시로 옷을 갈아 입었다.

지난 2016년 연천군은 또 한번 도시의 색깔을 바꾸는 빅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해발 205m 옥녀봉 정상에 설치된 10m높이의 조각상 ‘그리팅맨’(Greeting Man, 인사하는 사람)이다. 조각가 유영호 작가가 제작한 이 공공조형물은 북녘 땅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형상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그리고 평화의 의미를 담았다. 옥녀봉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 보며 15도 각도로 인사하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경기도 연천의 랜드마크로 부상한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맨’
지난달 중순, 취재차 옥녀봉 정상에서 만난 그리팅맨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떠올리게 했다. 북녘이 한눈에 들어 오는 봉우리에 설치된 탓인지 10m라는 실제 크기 보다 더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치 않은 하늘색의 조각상은 빼어난 조형미를 과시했다. 유 작가는 서울 상암동의 MBC 입구에 건립된 ‘미러맨’(Mirror Man, 두 사람이 손가락을 터치하면서 마주보고 있는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연천 뿐만 아니라 서울, 강원도 양구 등 국내는 물론 우루과이, 파나마, 브라질, 멕시코 등 세계 곳곳에 ‘분신’들을 거느리고 있다.

평소 석양이 아름다운 일몰명소인 옥녀봉은 그리팅맨이 자리를 잡으면서 연천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었지만 이 조형물이 연천군의 평화누리길 12코스에 포함되면서 지역을 상징하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취재차 방문했던 날, 인근의 군부대에서 사격훈련을 실시해 2시간 옥녀봉 진입이 통제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연천군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임진강의 옛 이름을 딴 연강나룻길(군남댐~옥녀봉~중면사무소) 등의 트레킹코스에 그리팅맨을 넣어 여행객들의 발길을 끌어 들였다. 특히 지역명소인 옥녀봉과 조각상의 콜라보는 색다른 볼거리를 찾는 MZ세대들을 공략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리팅맨이 옥녀봉에 둥지를 틀 게 된 건 2015년 대북전단살포로 일어났던 남북간의 총격전이 계기가 됐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위험지역’으로 부각되자 연천군은 수도권에 속하면서 전혀 수도권 답지 않는 지역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평화의 의미를 담은 초대형 조형물을 세우기로 한것이다.

그로 부터 6년이 흐른 지금, 그링팅맨은 연천군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통하고 있다. 종전까지 전곡리 선사박물관이 고군분투했다면 그리팅맨과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지역의 이미지를 ‘문화적으로’ 가꾼데 성공한 것이다.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되새긴 이철희 작 ‘하나되어’
우리나라 최북단에 자리한 강원도 고성군도 연천군과 비슷하다. 분단의 현장인 DMZ(군사분계선)를 품고 있는 고성은 2009년 9월 통일전망대로 가는 길목인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현내면 송현리)에 국내 유일의 ‘DMZ박물관’을 개관했다.

사업비 445억 원을 들여 14만5396㎡ 부지에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진 이 곳에는 한국전쟁부터 냉전기, DMZ의 살아 있는 자연, 평화의 미래 등 전시장이 4개 구역으로 나눠 꾸며져 있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이 테마인 1구역 전시실에는 한국전쟁 당시 자료 영상을 비롯해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으로 탄생하게 된 DMZ의 역사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마치 6·25전쟁 당시로 되돌아 간듯한 착각에 빠진다. 철조망을 재현해 높은 DMZ에는 전쟁의 참혹함을 엿볼 수 있는 무명군인의 녹슨 철모에서 부터 전투화 등의 유품이 전시돼 관람객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이어 냉전의 역사를 재현한 2구역은 ‘냉전의 유산은 이어지다’라는 주제에 맞게 1953년 이후 2000년까지 빚어진 남북 갈등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땅인 DMZ는 문명의 손때가 묻지 않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를 반영해 3구역은 ‘그러나 DMZ는 살아있다’라는 주제로 비무장지대에서 살아 숨쉬는 자연 생태계를 재현해 공존과 희망을 꿈꾸게 한다. 또한 4구역인 ‘다시 꿈꾸는 DMZ’에는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넘어 납북공동선언문과 남북 철도연결사업 등 수십 여년 간 남북이 함께 고민해온 노력의 흔적들을 담은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DMZ 박물관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다양한 형상의 조형물들로 꾸며진 야외 공원이다. 3층 전시실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거대한 야외 미술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독특한 형태의 조각상과 조형물이 가득하다.

공공조형물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16M 높이의 옛 ‘무등도원권역활성화센터’
이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지난 2021년 설치된 이철희 한국건축조형미술연구소장의 ‘하나되어’(2080x2960x2440mm, 알루미늄파이프소재)다. 2000년 6월15일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한 6·15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두손을 합장하여 평화통일을 소망하는 의미를 담았다. 또한 야외 공원 곳곳에는 다양한 색상과 재질로 제작한 수십 여 점의 조형물이 설치돼 작품을 둘러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예술 산책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고성에는 전국적으로 공공조형물의 실패작으로 꼽히는 흉물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국비와 지방비 14억5000만 원을 투입해 고성군 토성면 도학 초등학교 부근에 설치한 16m 높이의 옛 ‘무등도원권역활성화센터’다. 일명 ‘진격의 농부’로 불리는 이 건축물은 과거 이곳에서 장독을 팔던 주민의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이기도 하다. 당초 회의실이나 카페, 영화관으로 활용하려고 건립했지만 2012년 완공과 동시에 사실상 폐쇄 상태로 방치된 후 현재는 카페로 축소됐다. 당시 운영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기도 한 이 건축물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논두렁에 설치된 탓에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스케일로 랜드마크를 기대한 지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꼬집었다.

다크투어리즘의 명소인 DMZ박물관은 2019년 한국관광공사의 ‘코리아 유니크 베뉴’(Korea Unique Venue)로 선정됐다.
미술평론가 홍경한씨는 지난 2017년 출간한 ‘공공미술을 그리다’에서 “공공미술은 공공 공간의 주인인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면서 “예술성이 결여된 공공조형물은 주민과의 불화, 그로 인한 도시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말했다.

/연천·고성=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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