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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를 초월한 조선시대 대동법 개혁-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 전 경기대 교수
2022년 06월 07일(화) 04:00
대동법 시행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개혁이다. 대동법은 당파간 심각한 갈등이 펼쳐지는 당시 정치 상황 속에서 당파가 갈등을 극복하고 이룩한 개혁이다.

조선 후기 조정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현물을 백성들로부터 거두어 충당하였다. 그런데 현물을 지방에서 거두어 한양까지 수송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한양에 있는 상인들로부터 필요 물자를 직접 납품받았다. 대신 상인들은 물건값을 해당 고을에서 징수하였는데, 과다 징수하여 백성들의 큰 부담이 되었고, 이는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된 것이 대동법이었다. 대동법은 기존의 인두세 형태의 조세 징수 방식을 토지 소유자에게만 걷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대동법 시행으로 백성의 세 부담은 절반 정도로 줄었고, 국가의 세입은 20% 늘었다. 대동법을 시행하면서 이전에 행해졌던 중간 수탈을 막은 결과이다.

대동법은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각 도 사정에 맞추어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함경도, 경상도 등의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시행되었다. 1708년 황해도에서 시행되면서 대동법의 전국적 확산이 완료되었다.

대동법은 서인 율곡이 처음 제안하였고, 남인 이원익이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시행하였으며, 서인 김육이 충청도와 전라도에 정착시키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붕당 망국론’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붕당 간의 대립이 심한 시기였는데, 백성과 국가에 이로운 정책이기에 초당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는데 큰 공을 세운 이는 김육이다.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기까지 100년의 시간이 소요된 것은 각 지방의 특수성을 반영한 시행세칙의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득권을 상실한 지주와 상인 및 그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관료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김육이 대동법 제도 개혁을 추진하여 성공시켰던 시기인 인조와 효종 대는 당파간 정치적 갈등이 높았던 시기였다. 대동법 실시가 결정된 이후에도 조정 내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펼쳐졌고, 여기저기서 비방이 있어 대동법은 좌초될 위기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김육은 ‘호서대동절목’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을 시작하자는 처음의 말은 비록 내가 꺼냈지만, 제공(諸公: 여러 동료)들이 알맞게 변통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막혀서 (대동법은) 시행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공들도 비록 잘 변통하기는 했지만, 이는 실로 임금께서 홀로 결단을 내리고 뜻을 확고히 정해 끝내 성사시킨 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김육이 대동법을 성립시킬 수 있었던 것은 개혁을 함에 있어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관료들의 지지와 임금의 결단을 이끌어 내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육과 당파를 달리하지만 민생 문제, 공납 문제에 정통한 이시방·허적·김홍욱과 같은 관료들이 김육의 대동법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고 뜻을 같이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인 김집·김상헌·송시열도 처음에는 대동법에 반대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입장이 변하였다. 대동법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거나 심지어 지지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경북대 이정철 교수는 “김집·김상헌·송시열의 변화는 대동법 시행의 필요성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김육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육 개혁의 성공은 그가 정치인으로서의 진정성과 관료로서의 전문성을 함께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대동법은 각 당파가 국가와 백성의 이익을 위해 당파를 초월하여 추진하였다. 처음 시행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100년이 소요되었다. 이는 각 도의 실정에 맞는 시행 세칙을 준비하고 반대파를 설득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대동법은 1708년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된 이후 1894년 세제 개혁 때까지 변함없이 탄탄하게 지속될 수 있었다. 이는 김육의 통합적 리더십, 그리고 국가와 백성의 이익을 위해 정파를 초월한 붕당의 지도자들이 함께 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심각한 갈등을 펼치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