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횡령의 반전- 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2022년 05월 13일(금) 00:45
올 들어 국내 상장사들의 대외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대형 횡령 사고가 잇따랐다. 거래소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언론은 연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횡령’이라는 단어를 문학과 연계할 경우 반드시 거론되는 문호가 있다. ‘오 헨리’와 ‘세르반테스’이다. 이들은 횡령을 주제로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횡령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됐고, 수감의 경험이 문학에 반영되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단편 소설을 본격적인 문학 장르로 끌어 올린 천재 작가 오 헨리는 은행에서 회계 업무 담당으로 일한 적이 있다. 이때 오 헨리는 공금 횡령죄(누명이라고도 알려져 있음)로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복역 중 딸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월리엄 시드니 포터’라는 본명 대신 친한 교도소 간수인 ‘오린 헨리’의 이름을 딴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썼다. 오 헨리의 작품은 수감자들의 애환과 사연에서 영감을 얻은 탓에, 사실성과 휴머니티가 뛰어난데다 반전 있는 결말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평생을 궁핍하게 살았던 세르반테스는 먹고 살기 위해 세금 징수원이 됐다. 당시 세금 징수원은 가장 경멸받던 직업 중 하나였다. 빵만을 위해 일했던 세르반테스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수도원에 세금 고지서를 발부하는 실수를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수도원의 모함으로 세르반테스는 횡령 혐의를 받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수감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끼니 걱정이 없어진 세르반테스는 드디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 근대 소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돈키호테’가 옥중에서 구상됐다. 오 헨리의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도 수감생활 도중 탄생했다.

시가 총액 2조 원 규모의 상장사 직원이 2200억 원대 거액을 횡령하고, 시중 4대 은행 중 한 곳에서 600억 원이 넘는 돈을 직원이 빼돌렸다. 이들은 횡령한 돈을 주식·선물 투자로 쓰거나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의 심판을 앞에 둔 이들에게는 ‘돈에 눈이 멀었다’는 이유 외에 어떠한 반전도 없었다.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