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려면 건축과 도시를 바꿔라 <11> 품격 있는 도시는 시민 권력으로 만들어진다
도시경관은 자산…시민 합의로 광주다운 도시 만들어야
어지러운 간판으로 덮인 고층건물
기능·효율 위주 재산적 가치로 판단
원도심·외곽 건물 높이 차등 규제
역사성 보존, 도시경쟁력 강화 효과
209m ‘몽파르나스 타워’ 교훈
파리 구도심 10층 이상 건물 없어
어지러운 간판으로 덮인 고층건물
기능·효율 위주 재산적 가치로 판단
원도심·외곽 건물 높이 차등 규제
역사성 보존, 도시경쟁력 강화 효과
209m ‘몽파르나스 타워’ 교훈
파리 구도심 10층 이상 건물 없어
![]() |
노무현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은 당신의 생애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구미의 선진도시를 처음 본 사람들이 다 그렇듯 귀국 후 첫 일성이 “왜 우리의 도시·건축은 그처럼 아름답지 못합니까?”였다고 한다. 이러한 대통령의 관심에 힘을 얻어 ‘건설기술·건축문화선진화위원회’(2005)라는 대통령 직속 기구가 출범한다. 이 기구는 이후 ‘국가건축정책위원회’(2008)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건축문화 창달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다.
‘건축기본법’(2007)은 이 위원회의 첫 작품이다. 이 법은 건축문화를 진흥함으로써 국민의 건전한 삶의 영위와 복리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됐다. ‘건축문화’, ‘품격’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건축’을 건축물과 공간환경을 기획, 설계, 시공 및 유지관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건축기본법의 의의는 건축을 단순히 건축물을 짓는 행위로 보는 시각을 벗어나 문화적 행위로 보고 건축물의 품격 향상이 공공성 증대에 기여한다고 본 점이다.
그때까지 “건축은 건축물을 신축ㆍ증축ㆍ개축ㆍ재축(再築)하거나 건축물을 이전하는 행위”라고 따분하게 정의되었었다.(건축법(1962))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건축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의 위상을 찾게 된 셈이다. 예컨대 프랑스 건축법의 제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다. 건축적 창조, 건물의 품격, 주변 환경과의 조화, 자연 및 도시경관의 존중, 문화유산 보존 등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건축이 세계 10위 경제 대국, 최고의 반도체와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 BTS와 봉준호를 배출한 나라의 수준에 도달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 수상 횟수만 해도 일본은 7회나 되고 중국, 인도, 아프리카에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수상하지 못했다. 몰취미한 건물들과 어지러운 간판으로 뒤덮인 도시의 가로를 걷다 보면 구미 도시들의 정연하면서도 품위 있는 가로벽이 부럽기만 하다. 이기적으로 치솟는 나홀로 고층 건물들과 유치하고 열악한 공공시설물들은 그렇지 않아도 정글인 도시의 풍경을 더욱 삭막하게 만든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져 건축문화를 선도해야 할 공공건축물은 어떠한가. 한 해 5500여 동이 지어지고 있지만 건축적으로 의미 있는 걸작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다른 모든 지표는 이미 선진국인데 유독 도시·건축은 후진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개발과 압축성장의 시절, 도시와 건축을 오로지 기능과 효율 위주로 짓던 관행과 부동산적 가치로만 재던 습성이 이른바 ‘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라는 프랑스 건축법 구절에 기대어 말하자면 우리 도시·건축의 이 남루함은 건조 환경을 심미적, 정신적 대상이 아닌 기능적, 물질적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우리 사회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도시·건축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경제, 문화적 위상과 비대칭을 이루는 대표적 분야가 정치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도시·건축을 가진 나라들이 모두 높은 수준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를 가졌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저들의 도시발전 역사가 민주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하다못해 골목길조차 이웃끼리 사이가 좋으면 깨끗하고 아름다워진다. 따라서 익명성과 무한경쟁의 장소인 도시공간의 질적 수준은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 추출능력과 정확히 비례한다고 보면 옳다.
우리가 닮고 싶은 구미의 아름다운 도시들도 산업혁명 시기에는 급격한 도시화로 추악한 모습이었다. 방 하나에 대여섯 가구에 심지어 돼지까지 살았으며 배설물은 길에 버렸고 근친상간이 심각한 사회문제였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아름다운 도시와 건축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1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시민들의 민주적 절차에 따르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엄격하게 자율 규제를 해 온 덕분이다.
파리는 구도심 전역에 10층 이상 건물은 없다. 1973년 ‘검은 묘비’라는 오명을 얻은 209m 높이의 몽파르나스 타워가 들어선 이후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도심 건물의 높이를 37m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재산권 침해에 대한 항의가 드셀 것 같지만 시민 모두의 자산인 도시 경관을 지키기 위해 개별 필지의 권리를 희생하는 것에 대해 모두 수긍한다. 이러한 시민정신이 아름다운 도시 파리를 지켜내는 힘이다.
우리나라는 2차 대전 이후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이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놀라운 성취가 오히려 우리 도시·건축의 위기를 가져온 원인이라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다. 경제성장은 개발압력에 따라 도시·건축의 무한 팽창을 요구하는 반면 민주화는 규제 권력의 약화를 야기하여 위험하고 질서 없는 도시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뉴욕이 그랬다. 고층건물이 규제 없이 들어서다가 급기야 1911년 전대미문의 참사가 일어났다. 맨해튼의 마천루의 13층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의류 공장에서 화재가 났고 공장주가 피난 통로를 잠그는 바람에 146명의 소녀들이 거리로 뛰어내려 죽었다. 이런 전시대적 사고가 우리에게는 현재의 일이다.
우리나라 소득반영 산재 사망률은 OECD 중 압도적 1위인데 2위의 캐나다의 3배이고 13위 영국의 무려 26.3배다. 그런데 한해 1000여명의 산재 사망자 중 절반이 건설현장에서 죽어나간다. 요컨대 우리의 도시·건축은 ‘고담시’ 같은 디스토피아나 ‘킬링필드’를 방불케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다시 소환하여 경찰국가로 가는 것은 ‘배트맨’같은 해결사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해답은 선진도시들이 그리했듯 시민들의 각성과 합의에 의해 자율적인 규제를 제도화시키는 방법 말고는 없다. 1911년 맨해튼 사고 후 10만 명의 성난 시민들이 장례행렬에 합류했고 ‘공공안전에 대한 시민위원회’를 결성한다. 이들의 압력으로 주 의회는 새 노동법과 소방법을 제정하고 이후 미국에서 9.11이전까지 그 이상의 건물에 의한 사고는 없게 된다.
우리나라가 제도적 민주화는 이미 얻었으되 아직 민주주의가 체화되지 않고 있다는 징표는 도시와 건축 행정의 현 상황에서 읽을 수 있다. 어떤 규제가 생기거나 인허가가 뜻대로 되지 않을라치면 이해 당사자들은 행정청에 가서 시위를 한다. 시민 권력이 뿌리내린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예컨대 영국에는 건축 인허가라는 것이 따로 없다. 법의 취지에 맞는지를 시민, 전문가들이 토론하여 부합된다고 결정하는 합의가 곧 허가다. 이 과정에서 행정청은 회의주재, 자료제공 등의 역할만 할 뿐이다.
이렇게 민주주의적 도시·건축 행정이 있는 도시에는 ‘질서 가운데의 개성’이 생긴다. 도시에는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가 있고 그 도시를 이루는 건축은 규제가 없는 만큼 개성이 넘친다. 이것이 좋은 도시,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도시·건축은 거꾸로다.
우리 도시는 명목적 민주화 시대를 맞아 권위주의 시대의 옛 규율은 버렸으나 새 규율을 가지지 못한 채 질서 없는 ‘각자도생’의 도시가 되고 있다. 한편 건축은 개발시대 대량생산의 관성과 시시콜콜한 것까지 규제와 심의로 간섭하던 타성을 벗어나지 못해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아파트와 똑같은 우체국 건물을 보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도시·건축은 대전환기에 놓여있다. 우리의 국력과 경제 수준에 걸맞는 도시·건축을 얻는가의 여부는 정치나 행정, 전문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 권력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이고 시민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어떠한 새 규율을 만드느냐에 의해 달려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건축물 높이에 대한 일률 규제를 해제하겠다는 이용섭 시장의 발언은 의미가 있다. 파리는 구도심은 37m로 엄격히 규제하지만 라데팡스 등 도심 외곽에는 높이 제한이 없다. 런던은 세인트 폴 성당 등 랜드마크를 향하는 통경축(view corridor) 내부는 철저히 높이 규제를 하되 나머지는 규제가 없다. 이렇듯 도시의 건축물 높이는 차등 규제를 해야 역사성 보존과 도시경쟁력 확보라는 두 목적을 같이 이룰 수 있다.
광주도 무등산을 향하는 통경축, ACC주변을 포함하는 원도심은 높이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그 나머지 지역은 규제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 다음은 시민들의 몫이다. 차등 규제에 따르는 이해 당사자들의 불만은 시민적 합의에 의해 포용되어야 하며 지역, 지구적 특성을 반영한 정교한 규제 및 완화 규정 또한 시민 참여 및 주도로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프랑스, 영국보다 잘 사는 나라이며 광주의 민주 정신이 파리, 런던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저들이 백여 년에 걸쳐 얻은 아름답고 안전한 도시를 우리가 더 빠른 시간에 시민적 합의에 의해 이룬다면 그것이야말로 ‘광주다운 도시·건축’일 것이다.
함인선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전 한양대 교수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
전 새건축사협의회 회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건축이 세계 10위 경제 대국, 최고의 반도체와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 BTS와 봉준호를 배출한 나라의 수준에 도달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 수상 횟수만 해도 일본은 7회나 되고 중국, 인도, 아프리카에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수상하지 못했다. 몰취미한 건물들과 어지러운 간판으로 뒤덮인 도시의 가로를 걷다 보면 구미 도시들의 정연하면서도 품위 있는 가로벽이 부럽기만 하다. 이기적으로 치솟는 나홀로 고층 건물들과 유치하고 열악한 공공시설물들은 그렇지 않아도 정글인 도시의 풍경을 더욱 삭막하게 만든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져 건축문화를 선도해야 할 공공건축물은 어떠한가. 한 해 5500여 동이 지어지고 있지만 건축적으로 의미 있는 걸작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다른 모든 지표는 이미 선진국인데 유독 도시·건축은 후진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개발과 압축성장의 시절, 도시와 건축을 오로지 기능과 효율 위주로 짓던 관행과 부동산적 가치로만 재던 습성이 이른바 ‘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라는 프랑스 건축법 구절에 기대어 말하자면 우리 도시·건축의 이 남루함은 건조 환경을 심미적, 정신적 대상이 아닌 기능적, 물질적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우리 사회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도시·건축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경제, 문화적 위상과 비대칭을 이루는 대표적 분야가 정치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도시·건축을 가진 나라들이 모두 높은 수준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를 가졌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저들의 도시발전 역사가 민주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하다못해 골목길조차 이웃끼리 사이가 좋으면 깨끗하고 아름다워진다. 따라서 익명성과 무한경쟁의 장소인 도시공간의 질적 수준은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 추출능력과 정확히 비례한다고 보면 옳다.
우리가 닮고 싶은 구미의 아름다운 도시들도 산업혁명 시기에는 급격한 도시화로 추악한 모습이었다. 방 하나에 대여섯 가구에 심지어 돼지까지 살았으며 배설물은 길에 버렸고 근친상간이 심각한 사회문제였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아름다운 도시와 건축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1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시민들의 민주적 절차에 따르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엄격하게 자율 규제를 해 온 덕분이다.
파리는 구도심 전역에 10층 이상 건물은 없다. 1973년 ‘검은 묘비’라는 오명을 얻은 209m 높이의 몽파르나스 타워가 들어선 이후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도심 건물의 높이를 37m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재산권 침해에 대한 항의가 드셀 것 같지만 시민 모두의 자산인 도시 경관을 지키기 위해 개별 필지의 권리를 희생하는 것에 대해 모두 수긍한다. 이러한 시민정신이 아름다운 도시 파리를 지켜내는 힘이다.
우리나라는 2차 대전 이후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이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놀라운 성취가 오히려 우리 도시·건축의 위기를 가져온 원인이라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다. 경제성장은 개발압력에 따라 도시·건축의 무한 팽창을 요구하는 반면 민주화는 규제 권력의 약화를 야기하여 위험하고 질서 없는 도시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뉴욕이 그랬다. 고층건물이 규제 없이 들어서다가 급기야 1911년 전대미문의 참사가 일어났다. 맨해튼의 마천루의 13층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의류 공장에서 화재가 났고 공장주가 피난 통로를 잠그는 바람에 146명의 소녀들이 거리로 뛰어내려 죽었다. 이런 전시대적 사고가 우리에게는 현재의 일이다.
우리나라 소득반영 산재 사망률은 OECD 중 압도적 1위인데 2위의 캐나다의 3배이고 13위 영국의 무려 26.3배다. 그런데 한해 1000여명의 산재 사망자 중 절반이 건설현장에서 죽어나간다. 요컨대 우리의 도시·건축은 ‘고담시’ 같은 디스토피아나 ‘킬링필드’를 방불케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다시 소환하여 경찰국가로 가는 것은 ‘배트맨’같은 해결사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해답은 선진도시들이 그리했듯 시민들의 각성과 합의에 의해 자율적인 규제를 제도화시키는 방법 말고는 없다. 1911년 맨해튼 사고 후 10만 명의 성난 시민들이 장례행렬에 합류했고 ‘공공안전에 대한 시민위원회’를 결성한다. 이들의 압력으로 주 의회는 새 노동법과 소방법을 제정하고 이후 미국에서 9.11이전까지 그 이상의 건물에 의한 사고는 없게 된다.
우리나라가 제도적 민주화는 이미 얻었으되 아직 민주주의가 체화되지 않고 있다는 징표는 도시와 건축 행정의 현 상황에서 읽을 수 있다. 어떤 규제가 생기거나 인허가가 뜻대로 되지 않을라치면 이해 당사자들은 행정청에 가서 시위를 한다. 시민 권력이 뿌리내린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예컨대 영국에는 건축 인허가라는 것이 따로 없다. 법의 취지에 맞는지를 시민, 전문가들이 토론하여 부합된다고 결정하는 합의가 곧 허가다. 이 과정에서 행정청은 회의주재, 자료제공 등의 역할만 할 뿐이다.
이렇게 민주주의적 도시·건축 행정이 있는 도시에는 ‘질서 가운데의 개성’이 생긴다. 도시에는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가 있고 그 도시를 이루는 건축은 규제가 없는 만큼 개성이 넘친다. 이것이 좋은 도시,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도시·건축은 거꾸로다.
우리 도시는 명목적 민주화 시대를 맞아 권위주의 시대의 옛 규율은 버렸으나 새 규율을 가지지 못한 채 질서 없는 ‘각자도생’의 도시가 되고 있다. 한편 건축은 개발시대 대량생산의 관성과 시시콜콜한 것까지 규제와 심의로 간섭하던 타성을 벗어나지 못해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아파트와 똑같은 우체국 건물을 보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도시·건축은 대전환기에 놓여있다. 우리의 국력과 경제 수준에 걸맞는 도시·건축을 얻는가의 여부는 정치나 행정, 전문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 권력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이고 시민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어떠한 새 규율을 만드느냐에 의해 달려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건축물 높이에 대한 일률 규제를 해제하겠다는 이용섭 시장의 발언은 의미가 있다. 파리는 구도심은 37m로 엄격히 규제하지만 라데팡스 등 도심 외곽에는 높이 제한이 없다. 런던은 세인트 폴 성당 등 랜드마크를 향하는 통경축(view corridor) 내부는 철저히 높이 규제를 하되 나머지는 규제가 없다. 이렇듯 도시의 건축물 높이는 차등 규제를 해야 역사성 보존과 도시경쟁력 확보라는 두 목적을 같이 이룰 수 있다.
광주도 무등산을 향하는 통경축, ACC주변을 포함하는 원도심은 높이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그 나머지 지역은 규제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 다음은 시민들의 몫이다. 차등 규제에 따르는 이해 당사자들의 불만은 시민적 합의에 의해 포용되어야 하며 지역, 지구적 특성을 반영한 정교한 규제 및 완화 규정 또한 시민 참여 및 주도로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프랑스, 영국보다 잘 사는 나라이며 광주의 민주 정신이 파리, 런던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저들이 백여 년에 걸쳐 얻은 아름답고 안전한 도시를 우리가 더 빠른 시간에 시민적 합의에 의해 이룬다면 그것이야말로 ‘광주다운 도시·건축’일 것이다.
![]() |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전 한양대 교수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
전 새건축사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