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아파트 숲, 시대흐름에 맞는 주문형으로] ‘고립’ 부르는 아파트, 다양한 주거형태 담은 공동체 전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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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아파트 숲, 시대흐름에 맞는 주문형으로] ‘고립’ 부르는 아파트, 다양한 주거형태 담은 공동체 전환을
아파트로 주택 부족 해결했지만
소통 단절·투기 문제 등 야기
고령화 비율, 2060년엔 세계 1위
1인 가구, 고독사 등 사회문제 가능성
지속 가능 사회 위한 ‘공유적 삶’ 필요
다양한 가족 형태·거주 요구 수용
2022년 12월 04일(일) 22:30
거주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 싱가포르 마리나원 주상복합아파트(왼쪽). 자연과의 공생 등을 통해 거주자가 함께 사는 마을이 된 일본 ‘오사카 넥스트21?
공과(功過) 담고, 도시형 주택으로 자리한 아파트

거대한 고층 아파트로 메워지고 있는 우리 도시들의 모습이 외국인에게는 어떻게 비춰질까? 2017년 프랑스 마른 라벨리대학 발레리 줄레조 교수가 쓴 책 ‘아파트공화국’에 궁금점에 대한 답이 있다. 저자는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군대 막사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협소한 영토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나 벨기에는 그러하지 않는데, 왜 한국에는 고층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 걸까? 프랑스에서는 저소득층의 생활공간인 아파트가 왜 한국에서는 인기가 있을까? 그는 이런 의문을 품고 책을 썼다고 한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아파트가 모든 계층이 살고 싶어하는 최고의 주택유형이라는 사실과 가장 큰 재산증식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또 아파트가 주도하는 무질서한 도시모습에 고개를 흔들고 거대한 폐쇄적 아파트 단지가 삶 문화의 장소로 인기가 많다는 점에도 의문을 표한다. 이런 충격과 의문, 놀람과 궁금증의 이면에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국내외의 비판적 시각에도, 대도시는 물론 읍면의 문전옥탑에까지 아파트가 세워질 정도로 인기가 있는 현실에는 한국만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이 있다. 이미 일제 강점기부터 주택난을 겪었던 우리나라는 해방 직후 많은 해외 동포들이 귀국하고 6·25전쟁으로 주택이 파괴되면서 주택부족은 현상은 심화됐다. 이후 급격한 산업화로 농촌 인구의 도시 이동이 이뤄진데다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하고 핵가족화되면서 주택난은 사회문제가 됐다. 정권마다 주택난 해결책을 고민했는데 그 방안은 짧은 기간에 토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해 대량 주택을 공급할수 있는 아파트 신축이었다.

아파트는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주택부족 해소는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주거문화를 향상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해왔다. 특히 빠른 기간에 후진국형 주거문화에서 지금과 같은 질 높은 주거 문화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파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광주는 2019년말 현재 주택 보급률이 107%에 이르는데 이중 아파트 점유율은 66.8% 수준이다. 이는 짧은 기간에 아파트가 주택난 해소에 꽤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대도시는 모두 아파트 비중이 가장 높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부족해 아파트 입주당첨은 로또 복권처럼 재산적 가치를 크게 증식시켜 주었다.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지금도 아파트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크게 앞지를 때도 재산증식 수단이 될지는 의문이다. 또 지나치게 기능성과 산업성을 중시하며 형성된 획일적이고 규격적인 주동과 주호(단위세대)의 공간구성이 유효할지도 의문이다. 이제 아파트는 변화하는 앞으로의 사회적·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제2의 진화가 필요하다.



획일적·개인화에서 다양성의 공동화 생활방식으로

21세기 가장 큰 문제는 인구감소와 환경부하 증가에 대한 대응이다. 인구감소는 소자녀·고령화로 이어지며, 1인가족의 고착화를 가져온다. 우리나라 고령화 비율은 2021년 15.7%(일본28.1%)에서 2060년에는 43%(일본 38%)로 증가,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고령화 나라가 된다. 현재 40% 수준인 1인가구도 머지 않아 우리사회 대부분을 차지할 걸로 예견되기 때문에 아파트 대응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파트는 절연생활을 고착화 시키면서 고립과 고독, 고독사 등 사회문제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주로 공동주택을 설계하는 필자는 일본 등의 사례를 접하며 앞으로 아파트는 지속가능한 사회(소자녀, 고령화 사회)와 지속가능한 환경(환경보전 대응, 자원에너지 절약)에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첫 번째가 공유적 삶의 지향이다. 우리 아파트는 가족만의 생활을 전제로 설계됐다. 초창기에는 주택난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큰 목표가 있었고 가족단위의 생활과 직장 등에서의 활동이 활발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인인구를 비롯한 1인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혼밥, 혼잠은 고립, 고독과 함께 사회적 고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웃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함께 사는 공동성의 마을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아파트 주동은 입체가로 등의 다양한 공유공간 창출과 함께 1층을 아파트 사람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유적 공간으로 만드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래야 공동성을 구축해 즐겁게 생활할 수 있고 아이 키우기 좋은 아파트가 된다. 특히 아이 키우는 문제는 개개의 주호 문제를 넘어 주동이나 주거단지의 문제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두번째로 규격적이고 획일적인 주호를 적층으로 쌓아 올린 아파트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형태와 거주요구를 담을 수 있어야한다. 주거요구가 변화되면 주호의 공간구성도 바꿀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크기와 형태가 똑같은 구두에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발을 맞추는 것과 같은 지금까지의 준비형 공급은 주택확보를 위해 어쩔수 없는 측면이 많았다.

앞으로는 다양한 거주요구를 수용하는 주문형으로의 변화가 필요한데 이는 구조의 변화를 동반 해야한다. 아울러 상자형의 획일적 모습에서 벗어나 다양한 표정을 갖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중저층의 경우에는 발코니의 효용성을 다시 생각해야한다.

세번째는 앞으로의 아파트 유지 관리 문제와 각종 자원낭비, 환경파괴 주범이 되고 있는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문제다. 우리는 아파트 짓는 데 주력하며 이런 문제에는 소홀히 해왔다. 앞으로 아파트는 장수명의 주택 설계와 함께 건설 폐기물을 최소하는 데 힘써야한다.

마지막으로 외부공간에는 사람들이 주동 밖으로 나와 자연을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도록 녹지는 물론 질높은 휴게시설 등을 마련해야한다. 아울러 탄소중립 실천을 위해 신재생 에너지 생산과 사용도 가능케 해야한다.

필자는 최근 광주시민대학에서 ‘광주아파트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발표하고 앞으로 아파트가 지향해야할 점들을 논의하는 토론에 참여했었다. 아파트가 담장이나 방음벽 등으로 도시경관을 훼손하고 도시단절을 만든다며 물리적인 경계를 허물어 감성도시를 만들어야한다는 주장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는데 전문가들이나 시민들이 생각하는 아파트의 지향점은 대부분 비슷했다.



공동 주택의 과제를 해결한 오사카 넥스트21 실험주택

현대주택은 다양한 관점을 요구받고 있다. 개인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는 물론 시대적 요구 등을 수용해 건전한 공동체와 함께 지속가능한 주택을 지어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일본 오사카 가스회사가 건립한 오사카 넥스트 21 실험주택은 많은 교훈을 준다. 넥스트 21은 국내 건축가, 교수, 건설회사 임직원, 대학원생들이 많이 견학한 주택이다. 1993년 6층 규모의 18세대로 조성된 이 실험주택은 1994년부터 5년간 주거자들을 대상으로 거주실험을 했다. 이어 1999년 대규모 리모델링과 설비시스템 교체 후 2차 공개했고 2000년부터 5년간 다시 실험 거주가 시작됐다.

이 주택의 첫 번째 특징은 건물의 골조 구조(스켈톤)의 주호(인필)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장기적 내구성을 갖고 있는 구조체를 손상하지 않고 주호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주호는 각기 규모와 공간구성이 다르고 설계하는 건축사도 다르다. 한명의 건축사가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설계하는 우리나라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두 번째는 시스템 주택 구축이다. 주호 외벽 등은 규격 제품화로 교체 및 이설이 쉽고, 외벽 이동을 가능케했다. 리모델링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건설폐기물이 거의 발생하지 않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세 번째는 가변성의 배관시스템이다. 통로형 복도 아래 배관 등 설비를 둬 주호 변경을 할 때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수를 중수로 바꾸고 지상에서 옥상까지의 외관에는 세로형 녹지를 조성, 힐링 경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새나 나비 등 곤충들이 찾아오는 녹색 생태공간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1차 5년 실험 거주 기간에 오사카성 등에서 22종 새들이 날아왔고 21종의 자연식물 생육이 확인됐다. 이처럼 넥스트21은 구조체(주동)와 주호분리, 융통성 있는 주호와 배관시스템, 자연과 공생 폐기물의 재자원화 시스템 방식으로 거주자가 함께 사는 마을이 되고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할 아파트 상이다.

일본의 집합주택에 선도적 공헌을 한 건축가 후지모 마사이는 “주택은 도시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서 매력적 도시경관을 만드는 관점, 적정한 비용부담을 바탕으로 양질의 사회적 스톡크를 형성하는 건축물을 만드는 관점, 집단적 요구를 포함해 다양한 거주자요구를 수용하는 생활공간 만들기 관점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사카 넥스트21 실험주택은 이런 관점을 잘 구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아파트는 양적 부족 해소, 주거수준 향상에 큰 공헌을 해왔다. 앞으로는 인구 감소와 소자녀 고령화, 그리고 환경부하의 절감에 공헌하는 도시주택으로 변화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설비나 환경을 포함한 기술, 제도를 만드는 행정, 건설사, 시민 등 여러 분야의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나라만의 정체성있는 주거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안길전

㈜일우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대표

(전)광주광역시 건축사회 회장

(전)대한민국 건축문화 대상심사위원장

(현)광주광역시 건축위원회 위원

(현)전라남도 건축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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