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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제안한 ‘이용감과 전궤사 설치’
2020년 11월 03일(화) 05:30
김 준 혁 한신대학교 교수
다산 정약용은 규장각에 근무할 때 청나라에서 수입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과 ‘고공전’(考工典) 240권, 박제가가 지은 ‘북학의’(北學議),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보며 중국 문물제도의 높은 수준을 알게 되었다. 직접 중국에 가서 청나라의 발전상을 보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다산은 자신의 현실에서 중국의 선진화된 문화를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 사회의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추구하였다.

다산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우리보다 문물이 우수한 나라에서 신문물을 배워 와서 이를 나라에 적용시켜 발전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하여 ‘이용감’(利用監)이란 기구를 설치, 중국에 가서 수준 높은 기술들을 배워 오게 하는 것을 직분으로 삼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산은 관상감과 사역원(司譯院)의 관원 중에서 수리(數理)에 정통하고 중국어에 익숙한 관원을 선발하여 이용감에 배치한 뒤 해마다 중국에 보내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아니면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기구를 매입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기구를 조선으로 가지고 와서 똑같이 물건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하면 10년을 넘지 않아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고, 나라가 부유해지고 군사도 강해져서 다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치욕과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다산은 여기에 더해 이용감을 통해 새롭게 배워 온 기술을 갖고 ‘전궤사’(典軌司)라는 기관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필요한 수레를 제작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의 상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수레 사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용감에서 중국의 수레 제도를 도입해 오면 전궤사에서 만든 뒤 백성들이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레 제작은 북쪽에 있는 중국에서 배우고, 선박 제조는 남쪽에 있는 일본·유구(琉球, 큐슈)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여 이를 규격화하여 제작해야 한다는 다산의 구상은 매우 개방적이다. 오로지 중국에만 의존하던 생각을 뛰어넘어 동서남북의 모든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인정하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국가를 개혁하고 백성들의 삶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혁신적 구상이었다.

다산의 이용감 설치는 실로 개방적 사고이자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고견이다. 조선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폐쇄성이다. 그리하여 조선은 중국과의 사대(事大) 관계만을 중시하고 서양 국가들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회피하였다. 그러나 당시 청나라는 서양 국가와 개방적 관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강희제부터 건륭제에 이르기까지 ‘강건성세’(康乾聖世)라 불리는 문화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북학파인 박제가는 1786년(정조 10년) ‘병오소회’(丙午所懷)에서 조선이 서양 선교사와 교류를 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조는 주자 성리학에 몰두해 있던 양반 사대부들의 눈치를 보느라 수용하지 못했다. 개혁 군주인 정조마저 서양과의 교류를 주저할 정도였으니, 그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정체된 조선’이었다.

다산은 이용감 관원들이 조선에는 없는 신기술을 중국에서 도입할 때 그 기술을 정당하게 배울 수 없다면 상당한 비용을 뇌물로 주고서라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래야만 수입된 기술 혹은 기구를 숙련된 기술자들이 새로 만들어 조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조정이 약간의 편법을 사용하더라도 국가 발전을 위한 신기술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보다 보면 나라를 위한 다산의 생각이 참으로 절박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신기술을 배워 올 수 있도록 이용감을 설치하자는 다산의 생각을 계승하는 일을 해야 한다. 가령 정부가 국가 신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의 업무 조정을 통해 반드시 ‘국가신기술개발위원회’ 혹은 ‘국가신기술개발처’를 조직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둡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