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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꿈
2020년 10월 23일(금) 05:30
코로나19 사태로 일정을 축소한 미국 메이저리그는 지금 ‘포스트 시즌’(최종 우승 팀을 가려내기 위해 실시하는 경기)이 한창이다. LA 다저스와 탬파베이 레이스가 우승을 다투고 있는데, 이들 팀에는 커쇼나 벨린저 등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하다. 하지만 더욱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 쿠바 출신인 랜디 아로자레나(탬파베이)다. MLB 최저연봉(56만 달러)의 무명에 가까운 이 신인 선수는 포스트 시즌에서 무려 7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다.

선수로서의 이력도 특이하다. 어린 시절 야구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이 가난해 글러브조차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축구를 했다고 한다. 호날두를 롤모델로 훈련하던 그에게 어느 날 야구팀 코치가 찾아왔다. 배트를 쥐어 주며 “선수 한 명이 비는데 한번 쳐 보라”는 것이었다. 그 한 번의 배트가 그의 운명을 바꿨다.

우리 주변에도 특이한 이력을 가진 선수들이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이종범. 그가 뛰어난 축구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종범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광주 서림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없어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야구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박종환 전 축구 대표팀 감독이 “1년만 훈련시키면 국가대표도 되겠다”고 말한 적도 있는 만큼, ‘바람의 아들’이 축구를 했다면 아마도 월드컵에서 엄청난 골 폭풍을 일으켰을 것이다.

기아 타이거즈 양현종의 사연도 재미있다. 광주 학강초등학교에 다닐 때 야구보다 축구를 좋아했는데 학교엔 아쉽게도 야구부만 있었다. 그는 긴 급식 줄을 벗어나 ‘밥을 빨리 먹기 위해(?)’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의 길게 늘어선 급식 줄 덕분에 타이거즈는 우승컵을 들 수 있었고, 국가대표팀은 1선발 투수를 얻었다.

반대로 야구선수의 꿈을 접고 축구선수가 된 경우도 있으니 한국축구의 ‘보물’ 박지성이다. 고흥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로 전학을 간 박지성은 야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에 야구팀은 없었고 4학년 때 축구팀이 창단되자 바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때 만약 축구 아닌 야구팀이 창단됐다면 대한민국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꿈속의 일이 됐을지도 모른다.

/유제관 편집1부장 jk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