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溫柔)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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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溫柔)한 자
2020년 08월 14일(금) 00:00
임형준 순천 빛보라교회 담임목사
평소에 평평한 길조차 많이 걸어 보지 못한 탓에 어쩌다 산행을 하면 쓰지 않던 근육들이 아우성친다. 더구나 함께 등반하는 사람들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려면 무릎이 아프고 발목이 시큰거리고 숨이 차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산이 아름답고 공기가 맑다는 최초의 탄성은 잃고, 주위의 경관을 돌아볼 새도 없이 점점 멀어져 가는 동료의 뒷모습을 따라 잡기에 급급해진다. 저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 주던 동료들 속에 합류하여 땀이라도 한번 닦을 참이면 다른 사람들은 벌써 벗어 놓은 배낭을 짊어지기 시작한다.

삶은 언제나 그렇게 급급하고 헉헉거리게 만든다. 여름 휴가철이지만 세계적으로 번진 초유의 코로나 감염병과 더불어 장마철 집중 호우로 생활 터전이 침수되고 야산이 붕괴되어 많은 재산과 인명 피해로 오열하는 이들의 눈물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누리던 것들을 잃은 상실과 불안증으로 좋았던 관계가 갈등으로 확산되고 인격의 균형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람의 인격인 지(知), 정(情), 의(意)를 신체에 비유하여 머리형, 가슴형, 장형 이렇게 세 가지 성격 유형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머리형은 매사에 생각하는 에너지가 강하여 냉철한 이성으로 사물을 판단하므로 지성이 발달된다. 반면 생각 에너지가 너무 과다하면 모든 사물을 의심하게 되고 선택 장애를 겪거나 현실을 이탈하여 지나치게 미래를 염려하고 걱정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가슴형은 풍부한 감성으로 타인의 기쁨을 함께 즐거워하고, 이웃의 슬픔도 나누며 위로와 섬김을 거저 베풀며 스스로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감정의 에너지를 통제하지 못하면 쉽게 마음에 상처를 받고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심해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장형은 의지력이 강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과 장애물을 이겨내고 목표를 성취하며 자기관리를 잘하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분노가 폭발하고 매사에 불만과 고집스러운 감정의 에너지에 장악당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일상 속에 전염병과 자연재해처럼 불균형한 에너지가 갑자기 찾아와 인격을 공격하고 무너뜨릴 때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유한 인격의 성벽은 마음의 균형을 지켜내는 훌륭한 방패가 된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한 온유한 성품은 마냥 사람 좋은 사람, 거절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또는 힘 있는 대상을 향하여 가식을 떨거나 비굴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온유’는 헬라어 어원으로 ‘프라오테스’라고 하는데 그 뜻은 ‘야생마가 길들여진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된다. 야생마가 평원을 질주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 야생마가 아무리 힘이 좋다 하더라도 그 상태로는 사람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인에게 길들여져서 주인의 조정을 받을 때 비로소 명마가 되는 것이다. 즉,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이 다스려질 때 비로소 ‘온유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온유는 외면의 폭발적 에너지를 통제하는 내면의 강한 에너지로, 염려와 불안 의심스러운 생각 에너지를 멈추게 하고, 상처받은 감정을 치유하며, 고집과 분노를 눈 녹듯 녹이는 능력을 의미한다.

성경에서는 온유를 예수님의 성품으로 말하며 자기 힘이 마음대로 분출되지 않게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으로 필터링(통제)되어야 한다고 교훈한다. 이웃에게 온유를 발휘하려면 직접 반응하지 않고 필터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터링을 하지 않고 자기가 직접 반응하면 어느 순간 분노가 일어나고 미움이 일어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동물처럼 거역하고 포악한 성질이 서로를 파괴하고 침몰되어 스스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이 우리 안에 없으면 상대방에 의해서 내 마음이 통제받는다는 것이다. 신께 먼저 반응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께 먼저 마음으로 질문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11:29)

이 전환의 시대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유한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 균형적인 인격과 마음의 평정을 갖는 것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므로 외부의 환경이나 남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온유한 인격의 산행을 두려움 없이 나설 때만이 이 어려운 전환의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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