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 생각’] 맑은 하늘과 화려한 노을에 담긴 속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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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생각’] 맑은 하늘과 화려한 노을에 담긴 속뜻
2020년 08월 06일(목) 00:00
하늘이 심상치 않다. 남부지방에서는 이미 물난리를 치르고 무더위를 맞았는데 중부지방에서도 뒤늦게 물난리로 치도곤을 치르고 있다. 국지적으로 시간당 100밀리미터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위협적으로 사람의 마을을 덮쳤다. 심상치 않은 기록은 이어진다. 51일 동안 이어지는 장마는 사상 최장이라 한다. 7월에 태풍이 올라오지 않은 것도 69년 만의 기록이라고 한다. 기후에 관한 모든 지표들이 나날이 기록을 경신한다. 지구가 회복 탄력성의 임계치를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다. 돌아보면 이상기후의 조짐은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됐던 상황이다.

기후에 따른 나무 생태의 변화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한반도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고유 특산종인 구상나무가 멸종 위기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는 생소하지 않다.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소나무도 갈수록 더워지는 한반도에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달 말 환경부와 기상청이 함께 펴낸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는 지난 20년 동안 소나무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침엽수 숲이 약 25% 줄었다고 말한다. 역시 두드러진 온도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이대로라면 이 땅에서 소나무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소나무·구상나무만 그런 건 아니다. 제주에서 생산하던 감귤이 강원 지역에서 ‘강원 감귤’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된다. 열대지방에서 수입하던 바나나와 커피를 한반도에서 키워 수확하는 일도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여름이면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도 한반도의 따뜻한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던 나무였다. 그러나 이제 중부지방에서도 아무 탈 없이 잘 키울 수 있게 됐다.

아름다운 꽃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야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만큼은 곰곰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 모두 지구의 몸살 결과라는 걸 아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참담해질 수밖에 없다. 봄부터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팬데믹 사태로 사람들의 온갖 활동이 정지되면서 지구의 대기가 맑아졌다는데, 낙관만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산업 활동이 멈추고, 하늘에 화석연료 찌꺼기를 쏟아 내던 항공기 운항이 줄어들자, 순식간에 전 세계의 하늘이 맑아졌다. 맑은 하늘과 선명하게 붉어진 노을은 눈부실 만큼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 결코 긍정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그 아름다움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저질러 온 모든 과거가 담겨 있다.

지구라는 복합적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왕성한 활동에 대해 지구는 애면글면 안정화를 이루며 여기까지 버텨 왔다. 겨우 안정을 갖춘 지구가 갑자기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탄생 45억 년 내내 매우 느린 속도로 변화한 지구의 갑작스러운 돌변은 필경 또 다른 몸살의 원인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하늘이 어떤 결과를 쏟아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중부지방에서 피어나는 배롱나무 꽃이든, 화려하게 물드는 저녁노을이든,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뜻을 살펴야 한다.

그동안 그랬듯이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지구에서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된다. 다양한 기미들이 낙관할 수 없는 지표로 나타나지만, 인류는 그동안 어떤 사태에서든 더 현명하고 더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는 지혜와 기술을 뚜렷하게 향상시켜 왔다.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이 지구를 평화롭게 이어가기 위해 의지를 발동할 주체는 인지 능력을 가진 인간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지구를 관리한다거나 운영한다는 자만심을 내려놓고, 우리가 곧 지구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깨닫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구의 지배자라는 헛된 자만심이 아니라, 사람도 나무와 풀과 곤충과 동물이 어울려 사는 복합 생태계인 지구 안의 한 부분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제 더 이상 실패할 겨를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거대 생태계의 축소판으로 살아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세심히 살피고 그 속뜻을 읽어 내야 할 때다.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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