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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전성시대
2020년 08월 03일(월) 00:00
“철들기 전부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가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따라 불렀지요. 옛 노래들이 언제부터인가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떠올리고, ‘남쪽 나라 내 고향’은 어디쯤일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허리춤에 달아 주는 ‘도토리묵’은 어떤 맛일까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제야 그 노래들을 제대로 불러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한 곡 한 곡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수 주현미가 최근 발간한 ‘추억으로 가는 당신’은 불후의 명곡 50선을 통해 한국 가요 100년사를 들려주는 한편 데뷔 35주년을 맞은 자신의 음악 인생을 돌아본다. 오늘의 그녀가 있기까지 가요계 인사들과의 추억은 물론 ‘봄날은 간다’, ‘비 내리는 호남선’, ‘비 내리는 고모령’ 등 명곡에 얽힌 사연이 담겨 있다. ‘트로트의 여왕’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지난 시절의 추억과 노래는 오랜 흑백사진 같은 울림을 준다.

바야흐로 트로트 전성시대다. TV 채널을 돌리면 트로트와 관련된 방송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뽕짝’으로 비하되며 B급 대중문화 대명사로 치부된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러나 지금 트로트가 기성세대는 물론 계층과 나이를 초월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늘의 트로트 열풍은 지난해 모 방송국에서 기획한 ‘미스 트롯’이 기폭제가 됐다. 무명 가수들의 오디션 방식으로 풀어낸 이 프로그램은 중장년층과 노년층에 애틋한 추억과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 가운데 진도 출신 송가인은 발군의 가창력, 울림 있는 음색, 노래에 대한 독창적 재해석으로 주목을 받았다. 대중들은 드디어 이류라고 폄훼되는 B급 문화 이면에 드리워진 진정성을 알아보게 됐다.

그러나 작금의 ‘트로트 홍수’는 지난해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무명가수 오디션과 잊힌 스타를 경연에 참여시키는 방식 등 유사 프로가 난립하고 있는데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 결핍과 허기를 위로하던 본래의 맛이 퇴색된 듯해 아쉽다. 가끔은 허름한 선술집에서 흘러나오던 한 소절의 노래,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읊조리던 트로트가 그리워진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