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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5월 19일 ‘우리가 폭도냐?’
“폭도들은 자수하라! 폭도들은 자수하라!”
피신하고 있던 청년이 욕을 했다.
“니들이 폭도제 우리가 폭도냐? 씨발 놈들아!”
진각은 오랜 만에 들어보는 욕이라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밖은 한 동안 정적이 흘렀으나
다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2019년 12월 12일(목) 04:50
<삽화:이정기>
이십대 후분의 승려 진각은 초파일을 보내기 위해 아침 일찍 증심사에서 내려와 금남로와 충장파출소 사이에 있는 송학탕에서 목욕을 했다. 함께 목욕한 증심사 총무스님 성연이 자주 가는 목욕탕이었다. 송학탕은 송학다방 바로 위층인 3층에 있었다.

진각과 성연은 17일, 18일에는 양동시장과 대인시장, 남광주시장에서 초파일 불전에 올릴 과일 등을 사느라고 바삐 장보러 다녔는데 19일은 목욕하려고 산을 내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송학탕에서 목욕을 막 끝내고 승복을 입는 동안에 금남로 시위대의 구호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강진이 고향이지만 광주로 올라와 자취하면서 전남고등학교를 졸업한 진각은 자신도 광주사람이라는 막연한 연대의식이 있었다. 진각은 자신도 대학생이라면 같이 시위하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쳤다. 실제로 진각은 광주 시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최규하 대통령에 대한 회의감과 권력을 쥔 전두환 신군부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터였다. 진각이 만난 양동시장이나 대인시장 상인들도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통행금지 시간이 앞당겨지자 군인들이 곧 광주로 들어올 거라며 술렁거렸다. 진각은 송학탕을 나서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나도 한 번 해봐야지.’

도반 성연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나주 다보사에 있던 자신에게 초파일 행사를 도와달라고 했지 시위하라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각은 곧 시위대 속으로 섞이었고, 성연은 그 자리에서 시위학생들을 응시했다. 시위대는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어제는 노동청과 전남대병원 앞, 금남로에서는 학생들이 주로 시위했는데 오늘은 시민들 가담이 눈에 띄었다. 시위대는 보도블럭을 뜯어서 조각을 낸 뒤 돌멩이 대용으로 투석전에 사용했다. 그러나 M16소총을 뒤로 멘 공수부대원들이 진압봉을 들고 맹수처럼 돌격해 오면 시위대는 뒤로 밀렸다. 공수부대원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진각은 그 자리에서 보도블럭을 뜯어 조각을 냈다.

‘나까지 이걸 들고 있다니.’

진각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의아했다. 승복을 입은 승려가 양손에 보도블럭 조각을 들고 있다니. 시민들이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뿐이었다. 시위대 속으로 들어가자 승복 입은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렸다. 시위대와 함께 구호를 외쳐댔다. 공수부대원이 쫓아오면 뒤로 달아났다가 다시 밀고 올라갔다. 도청 앞에서 한일은행 쪽으로 밀리다가 언뜻 성연을 보았다. 성연은 어느 교회 건물에서 피신하고 있었다.

‘목욕하러 산에서 내려왔다가 날벼락을 맞았네.’

한일은행 저쪽에서도 공수부대원들이 나타났다. 이른바 앞뒤 쪽에서 공격 진압하는 협공작전이었다. 이제는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아니었다. 시위대는 금남로 이면도로나 골목으로 피했다. 진각도 7, 8명의 젊은 청년들과 힘껏 뛰어서 전남체육사로 들어가 셔터를 내렸다. 공수부대원들이 금남로의 시위대를 제압했는지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폭도들은 자수하라! 폭도들은 자수하라!”

전남체육사 안으로 피신하고 있던 청년이 욕을 했다.

“니들이 폭도제 우리가 폭도냐? 씨발 놈들아!”

진각은 오랜 만에 들어보는 욕이라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밖은 한 동안 정적이 흘렀으나 다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시위학생이나 시민을 붙잡아 진압봉으로 두들겨 패는 듯했다. 그리고 상가셔터를 군홧발로 차는 우당탕 소리가 났다. M16소총 개머리판으로 찍는 둔탁한 소리도 연달아 들려왔다. 진각이 숨어 든 전남체육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셔터를 군홧발로 차는 소리가 났다.

“개자식들아, 빨리 나와! 부수고 들어간다.”

진각과 시위청년들은 각자 숨을 곳을 찾아 움직였다. 진각은 2층으로 올라가 피신할 곳을 찾았다. 그러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누군가가 옷을 주문하면 옷감을 재단해서 만드는 가게인지 강아지만한 검은 재봉틀이 한 대 놓여 있었다. 재봉틀 바로 뒤는 옷감을 쌓아두는 공간으로 회색 커튼이 쳐져 있었다. 진각은 승복 빛깔인 커튼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 뒤로 숨자.’

진각은 재봉틀 뒤 커튼을 들추고 들어갔다. 마침 한 사람 정도는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생사를 초월하고자 입산한 승려가 고작 커튼 뒤에 숨어 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이럴 때 깨달았다는 고승들은 어떨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오는 군홧발 소리가 나자 그런 생각들은 싹 달아나버렸다. 진각은 군홧발 소리가 2층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숨을 멈췄다. 공수부대원이 소리쳤다.

“어서 나와!”

진각은 버텼다. 커튼이 관세음보살이라면 공수부대원이 그냥 나갈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진각의 기대일 뿐이었다. 공수부대원이 커튼을 확 젖혀버렸다. 순간 진각은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허탈했다. 공수부대원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허허허.”

공수부대원도 한 번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네놈을 못 잡을 줄 알고?”라는 표정으로 돌변했다. 커튼 밖으로 나온 진각을 인정사정없이 걷어찼다. 진각은 배를 움켜쥐고 나뒹굴었다. 그런 진각의 목덜미를 공수부대원이 군홧발로 짓밟았다. 어깨와 허리, 다리 등을 가리지 않고 발길질을 했다. 전남체육사 안으로 피신한 시위청년 모두 붙잡혔다. 진각도 함께 두 팔을 머리에 얹고 3명씩 밖으로 끌려나왔다. 금남로 거리는 머리가 깨지고 얼굴이 찢어진 시위청년들이 흘린 핏물로 얼룩져 있었다. 진각은 불경에서 본 지옥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금남로가 바로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진각은 공수부대원에게 연행돼 가는 동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게다가 뒤따라오던 시위청년 한 명이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뒤돌아보니 걸음이 늦자 공수부대원이 대검으로 다리를 찌르고 있었다.

‘저 짐승만도 못헌 놈들.’

진각은 허리가 결렸지만 공수부대원의 대검이 두려워 앞장서 걸었다. 무조건 앞장서야만 대검에 찔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화중생(下化衆生)이란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이었다. 출가한 이후 은사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말도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진압봉과 개머리판, 대검, 최루탄 가스 앞에서는 고상한 말들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폭도 새끼들! 니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

다른 곳의 시위청년들도 끌려왔다. 한 시위청년은 머리가 크게 찢어져 흰색 티셔츠가 온통 피에 젖어 붉었다. 청년은 걷기도 힘든 듯 비틀거렸다. 진각은 청년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관광호텔 앞에서는 연행돼 온 시위학생과 시민들이 팬티만 걸친 채 엎드려 있다가 군용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진각 일행이 군용트럭에 실리기 전이었다. 동구청 앞을 지나가는데 경위 계급장을 단 경찰이 크게 부상당한 청년을 보면서 공수부대원에게 사정했다.

“저 사람은 가차운 병원서 응급치료를 받아야겄소. 곧 죽을 것 같으요.”

인도에서 지켜보던 회사원이나 시민들도 한 마디씩 했다.

“공수 삼춘, 저 사람 살려야 쓰겄소.”

공수부대원이 마지못해 진각에게 개인병원으로 데리고 가 응급치료를 하라고 허락했다. 진각은 정신이 없어서 동구청을 개인병원으로 착각했다. 동구청 안으로 부상이 심한 청년의 팔을 붙잡고 들어가는데, 좀 전의 그 경찰이 귓속말을 했다. 아마도 진각이 일반시민이 아니라 승려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빨리 뛰시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새겨들어보니 도망치라는 말이었다. 진각은 동구청 위층으로 뛰었다. 피신할 대라고는 위층밖에 없었다. 쓰러진 시위청년을 들쳐 업느라고 시민들이 갑자기 모여 들었으므로 공수부대원이 바로 진각을 쫓아오지 못했다. 시민들이 길을 막아준 셈이었다. 위층은 동구청 세무2과 사무실이었다. 공무원 30여 명이 일하다가 진각을 보고는 놀랐다. 진각이 말했다.

“살려주씨요. 공수에게 쫓기고 있그만요.”

공무원들이 즉시 근무복과 모자를 가져왔다. 진각은 사무실 가리개 뒤로 가서 승복을 벗고 근무복인 새마을운동복으로 바꿔 입고 새마을운동 마크가 달린 모자를 썼다. 그런 뒤 한 공무원이 가리키는 빈 책상으로 가서 공무를 보는 척했다. 모두가 당황하지 않고 순식간에 이루어낸 위장이었다. 공무원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침착했다. 이미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앉아서 능청스럽게 일을 보았다. 이윽고 공수부대원이 세무2과 사무실로 들어와 진각을 찾았다.

“중놈이 이리 오지 않았소?”

“잘못 들어왔소. 여그는 세무과 공무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이오.”

“중놈을 내놓으시오.”

몸집이 크고 호탕하게 생긴 세무2과 과장이 공수부대원에게 화를 냈다.

“무신 짓거리요! 여그는 공무원이 일하는 공공기관이란 말이오. 공무를 보는 기관에서 군인들이 이럴 수 있소?”

“여기밖에 없는데...”

과장에게 기가 꺾인 공수부대원이 뒷말을 흐리며 물러서 나갔다. 진각은 공무원들이 고마워 여러 번이나 합장했다. 점심때는 싸온 도시락을 자기들만 먹지 않고 진각에게는 자장면을 시켜주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점심시간에 금남로를 비우고 조선대학교 운동장으로 철수한 사이에 어디서 왔는지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도청 앞에서 가톨릭센터까지 시위학생 시민들로 8차선 도로가 가득 찼다.

1시가 지난 뒤에는 가톨릭센터에서 소란이 일었다. 소총을 든 옥상의 계엄군을 발견한 시위청년들이 아침에 당한 분풀이를 하려고 올라가려는데 가톨릭센터 측에서 출입문을 잠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군인은 7층에 있는 광주기독교방송국 시설을 경비하는 계엄군 중에 한 명인지도 몰랐다. 시위청년 중에 어떤 사람이 ‘정의와 평화를 내세우는 가톨릭센터에서 이럴 수 있냐’고 큰소리로 항의했다. 결국에는 출입문이 열렸고 시위청년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진각은 시민관 쪽으로 갔다. 그쪽에도 시위대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1시간쯤 후에는 공수부대가 다시 금남로를 장악했는지 시민관 쪽으로 시위대가 격류처럼 밀려왔다. 계림동 쪽에서도 꾸역꾸역 몰려왔다. 시위대는 시민관에서 전신전화국 앞 도로를 가득 메웠다. 갑자기 요의를 느낀 진각은 시외버스공용터미널 후문으로 잰걸음 했다. 그런데 그곳의 화장실은 평소처럼 붐비지 않고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건너편 터미널 주차장에는 공수부대원들이 드나드는 버스에 올라타서 검문검색하고 있었다. 학생이나 청년들은 시외버스마저도 이용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진각은 화장실로 들어서는 순간 팬티에 오줌을 저리고 말았다. 화장실 바닥에는 검붉은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사지가 늘어진 시체가 방치돼 있었다. 머리는 으깨어지고 온몸이 대검으로 찔린 상처가 선명했다. 진각은 오금이 저려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하고 화장실을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화장실 바닥에 사람이 죽어 있소!”

젊은 사람들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진각은 누명을 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대신 사람들에게 울부짖었다.

“공수 놈에게 죽은 청년이 화장실에 있소!”

진각은 생전 처음으로 시체를 보고는 질려버렸다. 광주시민이고 뭐고 다보사로 돌아가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보사로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동구청에서 빌려 입은 새마을운동복에는 핏방울이 몇 점 얼룩져 있었다. 게다가 얼굴이 약간 찢겨 공수부대원이 보면 틀림없이 시위자로 간주하여 연행해 갈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4.5톤 트럭 운전수가 진각을 의자 빈 공간에 숨겨주었다. 진각은 문득 곳곳에 부처의 가피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트럭으로 나주시 금성관까지 와서 다보사 초입의 산길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진각은 비를 맞으며 울었다. 생사가 하나라는 것이 새삼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저녁 7시 무렵 비는 광주에서도 내렸다. 윤상원은 광천동 자취방으로 가기 전 밤 9시가 다 돼서야 녹두서점을 들렀다. 녹두서점 안쪽에는 김상집 등이 어젯밤부터 만든 화염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윤상원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경상도 번호판이든디 8톤 트럭이 불났어. 근디 경상도 차만 보믄 불지른다는 유언비어가 퍼질지 모르겄네. 고것이 솔찬히 걱정이그만.”

“계엄군 놈들이 광주 사람들을 나쁘게 악의적으로 퍼뜨릴지 모르지라.”

“근디 저 소리는 뭐시여?”

녹두서점 부근에서 ‘우우’ 하는 소리가 났다. 주민들이 동시에 내지르는 소리였다. 축구국가대표팀이 외국축구팀과 경기할 때 야유를 퍼붓는 소리와 흡사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야유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실제로 축구경기가 있는 날은 아니었다. 주민들이 KBS나 MBC 9시뉴스를 보고 분통을 터뜨리는 소리가 분명했다. 광주시민과 학생 일부가 야당정치인의 사주를 받아 질서를 극도로 어지럽히고 있으므로 공공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계엄군을 투입했다는 방송을 어제부터 9시뉴스 시간에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고, 여그서 이럴 때가 아니제. 집에 가서 시민들에게 정확헌 시위소식을 알리는 회보를 만들어야 쓰겄네.”

“우리는 여그서 가차운 MBC를 응징해불라요. 어저께부터 우리는 전두환이 나팔수 노릇허는 9시뉴스는 안 봐불고 있지라.”

윤상원은 서둘러 녹두서점을 나와 광천동 자취방으로 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