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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겹고 순박한 채소가 어디 있을까 (292) 호박
2019년 12월 05일(목) 04:50
안혜경 작 ‘고마운 호박’
“호박꽃이 꽃이냐/비웃음을 받고요/울퉁불퉁 둥글납작/내 용모 보기 흉해도/겉만 보고 속단 말 건/사람 아니 호박입니다/난 속살 단맛 있고/영양가 높고/침을 놔도 까닥 않는/참을성 좋고???”

어린 시절 별명이 ‘호박 부대’라 불리는 친구가 있었다. 여성스럽지 않고 조금 어글어글한 인상이 울퉁불퉁한 호박을 닮아서였는데 정말 호박처럼 마음씨 둥글고 모가 없어 한 번도 그 별명에 언짢아 한 적이 없었다. 오래전 우리 집에 한 점 걸렸던 호박꽃 그림 속 화제였던 ‘호박의 자부’라는 시를 읽을 때마다 그 친구 별명이 동시에 생각나곤 했다.

그렇게 호박은 오래도록 ‘못생김’의 대명사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호박만큼 정겹고 맛있고 조형적으로도 예술적 소재가 되기에 순박한 채소가 흔치 않음을 깨닫게 된다.

안양 출신으로 현재 공주에서 작업하고 있는 안혜경 작가(1964~ )는 몇 년 전 해남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머무르면서 가을이면 온 들녘에 가득 쌓여있는 늙은 호박덩이들을 마주한 후 그 감동으로 아예 ‘고마운 호박’(2017년 작)이라는 작품을 연작으로 그리고 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그림 그리는 화가를 꿈꾸었던 작가는 해남에서 따뜻한 봄날 호박 모종을 심고, 서투르지만 열심히 풀 뽑고 물주면서 호박을 가꾸었다고 한다. 잠시만 한 눈 팔면 호박밭엔 무성한 풀이 주인이 되고 보물 찾듯 호박을 따낸 기억으로 그림농사를 지었던 것 같다.

화폭 속 호박은 해남 붉은 땅 기운으로 잘 익어 주황색 등불처럼 온 대지를 환하게 밝히는 듯하다. 아침을 맞이하는 나팔꽃을 만나고 빨간 동백꽃에 빠졌다가, 호박밭을 드나들었던 작가의 사계절이 그림 한 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올 것만 같은 호박 그림도 들판의 잡초도 모두가 고마운 자연의 선물이고 가족이리라.

<광주시립미술관 학예관·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