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2040] 대한민국, 불신 사회를 넘어 공정 사회로
![]() |
왜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가. 시험의 제도적 측면에서 신분상의 차별이 없고 공정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공무원 시험에 더 매달리는 이유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성들에 대한 차별로 그 공정성을 의심받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은 학생 시절부터 시험이라는 객관적 능력 평가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다. 때문에 커닝을 하는 학생보다 커닝하는 학생을 눈 감아 주는 선생님이 더 밉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공정함을 지키지 못하는 제도는, 심지어 날밤 새며 공부하기보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커닝 페이퍼를 만드는 친구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있다. 은퇴한 아버지들의 일자리가 자식 격인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때와 지금 세대의 일자리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다. 당시에 비해 대학 졸업자는 두 배 이상 불어났지만 대학 졸업자에 맞는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청년들이 요구하는 일자리의 비매칭이 가져오는 사회.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다. 게다가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채용 비리는 청년들의 분노를 넘어 강한 허탈감과 포기를 동반한 지 오래다.
시민들의 아픔과 분노도 공정성을 지켜 달라는 요구로 번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과거 가난하지만 평등했던 사회에서 풍요롭지만 불평등한 사회로 급격하게 변했다. 그 과정에서 빈번하게 지적됐던 것은 공정성 시비에 따른 불신이다. 오랜 투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불신은 더 심해졌다. 시민들은 심판에 해당되는 입법·사법·행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다. 심판을 믿지 않으니 사회적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미국 헌법을 만든 제임스 매디슨이 고민했던 문제는 극단적인 사회적 불신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정치인으로 하여금 시민의 주권이 훼손당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대통령 임기를 제한하고, 삼권분립을 하고, 임기 내에도 탄핵할 수 있는 여러 방어적 장치를 제도화한 것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의심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합의했던 대원칙일 것이다.
언론의 공정성 시비도 자주 지적된다. 언론사별로 진보와 보수 성향이 있지만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임은 자명하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말하며, 진실은 ‘사실의 속성을 내면적으로 깊이 들여다볼 때 나타나는 진리’라고 정의하고 싶다. 정치인들의 발언은 서로를 극단으로 치닫게 하고, 그것을 받아쓰고 왜곡하는 언론의 편향된 보도는 시민들을 양분화시킨다.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확대 재생산시키는 구조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언론 환경을 탈진실 시대라고 한다. 사실을 체크해서 진실을 가리는 게 무의미해져 버린 사회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전통적인 미디어 시대가 가고 개인 방송이 무차별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뉴스를 각자의 방식으로 생산·편집·소비하고,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만 소통한다. 사회의 어젠다를 제시하던 전통적 언론의 기능이 축소돼 버렸다. 소셜미디어, 특히 유튜브를 통해 편을 가르고 광장으로 모이자고 선동하는 새로운 미디어의 방식이 갈등을 더 증폭시키고 사회 불신을 초래한다.
대한민국은 중대한 기로에 있다. 갈 길이 멀지만 민주화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경제적 성장만을 통해 풀 수 있는 문제의 접근도 무의미하다. 더 많은 민주화와 성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정성의 문제다. 대한민국의 투명성 수준은 세계 50위권 밖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갈등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신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예민한 공정성을 요구한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 불신을 넘어 공정 사회로 가는 첫걸음을 떼어야 하는 시기 아닐까.
미국 헌법을 만든 제임스 매디슨이 고민했던 문제는 극단적인 사회적 불신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정치인으로 하여금 시민의 주권이 훼손당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대통령 임기를 제한하고, 삼권분립을 하고, 임기 내에도 탄핵할 수 있는 여러 방어적 장치를 제도화한 것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의심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합의했던 대원칙일 것이다.
언론의 공정성 시비도 자주 지적된다. 언론사별로 진보와 보수 성향이 있지만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임은 자명하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말하며, 진실은 ‘사실의 속성을 내면적으로 깊이 들여다볼 때 나타나는 진리’라고 정의하고 싶다. 정치인들의 발언은 서로를 극단으로 치닫게 하고, 그것을 받아쓰고 왜곡하는 언론의 편향된 보도는 시민들을 양분화시킨다.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확대 재생산시키는 구조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언론 환경을 탈진실 시대라고 한다. 사실을 체크해서 진실을 가리는 게 무의미해져 버린 사회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전통적인 미디어 시대가 가고 개인 방송이 무차별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뉴스를 각자의 방식으로 생산·편집·소비하고,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만 소통한다. 사회의 어젠다를 제시하던 전통적 언론의 기능이 축소돼 버렸다. 소셜미디어, 특히 유튜브를 통해 편을 가르고 광장으로 모이자고 선동하는 새로운 미디어의 방식이 갈등을 더 증폭시키고 사회 불신을 초래한다.
대한민국은 중대한 기로에 있다. 갈 길이 멀지만 민주화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경제적 성장만을 통해 풀 수 있는 문제의 접근도 무의미하다. 더 많은 민주화와 성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정성의 문제다. 대한민국의 투명성 수준은 세계 50위권 밖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갈등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신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예민한 공정성을 요구한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 불신을 넘어 공정 사회로 가는 첫걸음을 떼어야 하는 시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