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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5월 19일 ‘오! 하느님’
2019년 11월 21일(목) 04:50
<삽화:이정기>
유석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 갈 수 없었다. 어제 세종장호텔 앞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만행을 직접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공수부대원의 잔혹한 만행이 뇌리에서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공수부대원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힌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자행되고 있을까.

유석은 갑자기 외로웠다. 학교 밖에 혼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자신이 외딴 섬 같았다. 흠모해왔던 선생님들도 홀연히 멀어져버린 듯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감정이었다. 학교 안팎에서 유기체처럼 알게 모르게 하나로 움직여 왔는데 자신만 튕겨져 나온 듯했다. 원각사 누각 다락방에서 본 붉은 피로 얼굴을 적신 그 청년이 자꾸만 떠올랐다. 유석은 오전수업만 빠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내로 나갔다.

한편, 유석의 급우들은 1교시수업을 듣기 위해 교과서를 펼치고 있었지만 일부 몇몇은 교과서를 내팽개친 채 웅성거렸다. 박행삼 선생이 출석부를 들고 들어왔다. 박석무, 윤광장 선생 등과 대동고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들이 존경하는 사십대 초반의 교사였다. 그런데 반장이 일어나 ‘차렷 경례’ 구호를 끝내자마자 한 학생이 일어나 울부짖듯이 말했다.

“선생님,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도 답답하고 암울하기는 여러분 같아요.”

“지금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합니까?”

“여러분 마음을 나도 알아요.”

“금남로에서는 우리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학생이 울음을 터뜨리자 또 다른 학생이 일어나 말했다.

“고등학생이지만 우리도 나서야 합니다. 선생님!”

그 학생 역시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울먹였다. 박행삼도 학생들과 같은 심정이었으므로 교사 신분을 잊어버리고 분필을 집어던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박행삼이 비통하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어째서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는지 참담할 뿐입니다.”

교실은 울음바다가 돼버렸다. 잠시 후에는 성격이 불같은 학생이 일어나 의자를 부숴 몽둥이를 만들더니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외쳤다. 교실은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다른 반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운동장에 학생들이 벌떼처럼 모였다. 이윽고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민주교사 합세하라.’ ‘민주학생 합세하라.’ ‘광주시민 짓밟은 공수부대 몰아내자.’

2학년 학생 몇몇이 운동장을 돌면서 구호를 선창했다. 1학년, 3학년 학생들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합류했다. 박행삼은 교무실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서 흐느꼈다. 학생들의 순수한 울분은 이해하지만 교사가 직접 나설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외면하고 앉아 있자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윽고 교장이 다가와 말했다.

“교무주임 선생님, 학생들을 진정시킵시다. 공수부대가 학교 근처까지 와 있다고 합니다. 방금 헬기가 빙빙 돌더니 갔어요. 학생들이 다치면 큰일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박행삼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는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흥분한 학생들을 보자 숨이 막힐 듯했다. 박행삼은 선두에서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 앞으로 나가 소리쳤다.

“여러분 심정은 충분히 압니다. 그렇지만 지금 여러분들이 나간다는 것은 입을 벌린 맹수 아가리에 몸을 던져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생명은 귀중합니다.”

“선생님! 누가 광주시민을 지켜줍니까? 우리는 나설 수밖에 ?습니다.”

학생들이 박행삼에게 항의하듯 말했다. 학생들과 대화는 불가능했다. 박행삼은 자신의 진심을 몸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씩씩거리며 교문 밖으로 진출하려고 하자 박행삼은 교문 앞에 드러누워 말했다.

“나가고 싶은 학생들은 나를 밟고 가그라.”

“선생님, 눕지 마십시오.”

학생들이 주춤하며 물러섰다. 어떤 학생은 운동장을 치며 울부짖었다. 학생들의 기세가 점차 수그러들었다. 운동장에는 몇 명의 학생만 남고 대부분 교실로 복귀했다. 교장은 담임교사들에게 학부모를 학교로 오게 하여 학생들을 무사히 귀가시키라고 지시했다.

유석은 점심시간에야 학교로 돌아왔다. 그런 뒤 시위를 주동했다. 3학년 선배 몇 명과 어제 시내에서 공수부대의 만행을 목격한 급우 서너 명과 각 반을 돌며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끌어냈다. 학생들은 조금 전에도 시위를 한 적이 있어 쉽게 응했다. 금세 6백여 명 정도가 모였다. 유석은 선두에서 ‘투사의 노래’, ‘봉선화’, ‘정의가’ 등을 부르며 운동장을 돌았다.

이번에는 교장과 교사들이 한꺼번에 정문으로 나와 학생들의 시내 진출을 만류했다. 더구나 교문 앞에는 1천여 명의 전경이 달려와 길을 봉쇄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학생들은 각자 시내로 가자며 ‘애국가’를 부른 뒤 해산했다. 유석은 학내시위 주동으로 잡혀갈 것 같아 집으로 가지 않고 전남대 정문 앞에 사는 친구 집으로 가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탈 수 없었으므로 걸어서 가는데, 가톨릭센타 앞은 여전히 공수부대원과 시민과 학생시위대가 쫓고 밀리는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오후 3시쯤이었다. 가톨릭센터 7층 기독교방송국에서 시위대의 동정을 살피던 계엄군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시위청년들이 가톨릭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충장로에서 페퍼포그차를 불지를 때 일조했던 김현채도 합류했다. 청운학원을 다니던 재수생 최동기도 뒤따랐다. 인성고 졸업생인 최동기는 ‘광주 시민이 당하는데 강의를 들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청운학원에서 함께 재수하던 다섯 명과 행동을 같이했다. 재수생들은 인도에서 뜯은 보도블럭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7층에 먼저 도착한 시위청년들이 소방용 곡괭이를 꺼내 잠긴 출입문을 부수고 의자로 대형유리창을 깼다. 시위대가 들이닥치자 계엄군 7명이 방송실 한쪽 구석으로 물러섰다. 지금까지 당하기만 했던 시위청년들이 계엄군들에게 다가가 윽박질렀다. 시위청년 한 명이 탁자 위에 있던 콜라 병으로 계엄군의 철모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내 친구 살려내. 이 새끼야!”

콜라 병이 박살나며 유리 파편이 방송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또 한 청년이 계엄군의 얼굴에 소화기를 쏘며 말했다.

“소속이 으디여? 얼능 말해. 어차피 니덜은 여그서 죽을틴께.”

“31사단 소속입니다.”

“뭐시라고? 공수가 아니란 말여?”

“방송국 경계 나온 31사단 군인입니다.”

시위청년 중에 점잖게 생긴 이가 말했다.

“이 군인덜은 계엄군이라도 우리 적이 아닌께 패지는 맙시다.”

사실 전경이나 31사단 병사들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시위청년들이 멈칫했다. 그때였다. 계엄군이 M16소총에 탄알을 장전하며 시위청년들을 겨냥했다. 그러자 시위청년 중에 한 명이 총을 든 계엄군에게 달려가서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아나, 쏴바라!”

총을 든 계엄군이 고함친 시위청년의 기에 눌려 머뭇거렸다. 그 사이에 시위청년이 계엄군의 총을 잽싸게 낚아채버렸다. 시위청년과 김현채는 빼앗은 총을 들고 옆방으로 가서 노리쇠를 당겼다. 노리쇠에 물려 있던 총알이 바로 튕겨 나왔다. 시위청년이 계엄군의 총을 밖에 있는 시민들에게 내보이며 흔들었다. 시위대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로 응답했다.

대치하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시민들을 20여 미터쯤 밀어낸 뒤 가톨릭센타 안으로 들어오려고 정렬했다. 그러자 가톨릭센터 옥상에서 시위청년 네댓 명이 보도블럭을 깬 시멘트 조각을 공수부대원들에게 던졌다. 최동기를 따라서 옥상으로 올라간 재수생들이었다.

공수부대원들은 시멘트 조각이 우박처럼 쏟아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톨릭센터 안으로 진입했다. 최동기 일행은 단거리 경주하듯 계단을 통해 내려와 건물 후문으로 빠져나왔다. 기독교방송국 안에 있던 시위청년들도 ‘공수가 온다!’고 소리치며 계단을 타고 내려와 후문 주차장 천막지붕을 타고 달아났다. 미처 피하지 못한 시위청년 한 명은 주차장 천막지붕에서 붙잡혔다. 공수부대원은 그를 진압봉으로 가격하다가 M16소총 끝에 착검한 대검으로 그 의 옆구리를 찔렀다. 시위청년은 맥없이 주저앉았다. 김현채 앞에 있던 시위청년도 주차장 벽 밑의 상자를 밟고 담을 넘으려다가 공수부대원이 내리치는 진압봉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김현채는 그 순간 몸을 피해 깜깜한 지하실로 들어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으므로 기다시피해서 지하실 안쪽에 엎드려 숨을 죽였다. 김현채를 본 공수부대원이 뒤쫓아 오는 듯 지하실계단을 밟는 군홧발 소리가 쿵쿵 들려왔다. 군홧발 소리는 공명이 되어 지하실을 음산하게 떠돌았다. 김현채는 겁에 질린 채 중얼거렸다.

‘인자 여그서 죽어부렀구나.’

그러나 웬일인지 공수부대원의 군홧발 소리가 멈추었다. 공수부대원도 지하실이 캄캄하므로 겁이 난 듯했다. 5분쯤 뒤에는 공수부대원이 계단을 올라가버린 듯 군홧발 소리가 멀어졌다. 김현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혼잣말을 했다.

‘지도 겁이 나겄제잉. 지나 나나 1대1인께.’ 30분쯤 지나자 군홧발 소리는 건물 안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가톨릭센터 밖도 조용해진 듯했다. 김현채는 도둑고양이처럼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1층으로 나오니 사무실에 있던 경비원 아저씨와 청소원 아주머니가 김현채를 큰 상자 안으로 숨겨줬다. 상자 안에는 이미 시위청년 한 명이 숨어 있었다. 한참 후 경비원 아저씨가 상자를 열어주어 두 사람은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제 시위대는 보이지 않았고 금남로에는 돌멩이와 시위대의 신발짝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공수부대원들만 빈 금남로 거리를 지그재그 대오로 활보 중이었다. 불이 붙은 포니승용차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워 올랐다. 김현채는 황급히 금남로를 벗어났다. 동아극장 앞에도 공수부대원에게 붙잡혀 군용트럭에 실려 간 시위학생 시민들의 신발이 두 가마니 정도나 쌓여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은 시위자를 붙잡으면 도망가지 못하게 웃옷과 바지, 신발을 먼저 벗겼던 것이다.



그때, 김성룡 신부는 북동성당에서 열린 가톨릭농민회 모임에 참석하고 난 뒤 금남로로 향했다. 택시를 잡을 수 없었으므로 걸어서 갔다. 가톨릭센터 쪽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가 김성룡 신부 눈에도 보였다. 동료 신부 세 명과 가톨릭농민회 회장 등과 걸어가는데 신자들이 찾아와 하소연했다.

어제 낮부터 공수부대가 시내로 나와 진압봉으로 시민의 머리를 내리치고, 피를 흘리며 넘어진 시민을 군홧발로 짓밟고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렸다. 여학생, 남학생 가릴 것 없이 옷을 벗기고, 구타하고, 군홧발로 차고. 착검한 대검으로 찌르고, 담을 넘어 민가로 도망가는 청년을 쫓아가서 초주검이 되도록 두들겨 팬 뒤 군용트럭에 짐짝 던지듯 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며 흐느꼈다. 김 신부는 애써 마음을 진정하며 탄식했다.

‘아.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군이란 말인가?’

김 신부 일행은 소방서 사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금남로에서 쫓겨 온 시위대가 사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장갑차를 앞세운 공수부대가 밀고 들어오자 시위대는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흩어졌다. 공수부대원들이 도로 양쪽 건물 위에서 내다보는 시민들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뭘 보는기야! 죽고 싶으면 이리 내려와 새끼들아!”

지휘관이 뭐라고 하자 5,6명의 공수부대원이 김 신부 일행 옆을 휙 지나쳤다. 그런 뒤 내려진 셔터를 군홧발로 차고 M16소총 개머리판으로 찍었다. 그 건물의 누군가가 공수부대원을 향해 비난한 듯했다. 시위청년이 포승줄에 묶이어 끌려가는 것이 또 보였다. 장발한 머리가 터져 얼굴은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김 신부는 분노가 치밀어 몸을 떨었다.

‘국민들이 낸 방위세로 무장한 군인이 아닌가! 외적을 막으라고 지급한 총을 시민들에게 돌리고 있다니. 이런 군대는 필요 없다. 주인을 모르고 미처 날뛰는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 누가 이 군인들을 미치게 했는가? 시민을 살상하라고 명령한 원흉은 누구인가?’

김 신부는 아침에 누님의 딸 마리아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마리아는 국민학교 1학년인데 엄마에게 물었던 것이다.

“엄마, 친구가 말했어라. 인민군이 쳐들어와 사람들을 몽땅 죽이고 있다고라. 그래서 선생님도 집에 빨리 들어가라고 하셨어라. 맞아요?”

어처구니없는 마리아의 질문이었다. 어린 아이 눈에 국군이 인민군으로 보였다니 통탄할 노릇이었다. 도청이 가까운 금남로만 조용할 뿐 그 밖의 지역은 시위대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도로 공사 중인 한국은행 사거리에도 시위학생 시민들이 모여 구호를 외쳐댔다. 시위대에 시민이 많이 섞이면 ‘아리랑’이나 ‘애국가’를 합창했다. 시위대는 노래를 부르다가도 공수부대가 다가오면 투석전을 벌였다. 시위대 속에는 국민학교 5, 6학년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 아이가 공수부대원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더니 야구공만 한 주먹을 치켜들었다. 김 신부의 눈에는 대견하기보다 왠지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다.

시위대 속에는 처음으로 가담한 사람들이 많았다. 화순에서 손님에게 광주 소식을 듣고서 구두 닦는 일을 접고 넘어 온 박래풍도, 공장에서 망치를 직접 만들어 나온 용접공 김여수, 견딜 수 없어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온 가구노동자 김종철, 회사 일로 광주에 출장 나왔다가 공수부대원의 횡포를 보고 분개한 회사원 김준봉도 시위는 처음이었다. 김준봉은 장성공장으로 가는 퇴근버스 안에서 옆에 앉은 계장에게 치를 떨면서 말했다. “개새끼들 가만 두나 보세요. 우리 집은 아들이 넷인께 나 하나쯤은 죽어도 괴않치라.” “에이. 자네 무신 말을 모질게 허는가?”

김준봉은 공수부대원들이 떠올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눈 주변 근육이 실룩거리는 것 같아 두 손으로 얼굴을 박박 문질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