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갠 어느 날 오후 광주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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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오후 광주천을 따라 걷는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불어난 물에 잠겼던 천변 산책로다. 참으로 길었던 장마 끝에 만나는 햇볕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뭉게구름 둥실 떠가는 파란 하늘을 보며 이제 성큼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폭우로 잠시 몸을 숨겼던 바위들도 다시 물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크고 편편한 바위 위에서 노랑 부리 왜가리 한 마리가 물속을 응시하며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녀석도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일 터.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평화스럽고 한가롭게만 보인다.
평소 같으면 눈에 자주 띄었을 풀꽃들은 자취도 없다. 보라색 작은 꽃들을 가녀린 몸에 매달고 꼿꼿이 서서 인사하던, 그 자존심 강한 맥문동(麥門冬)도 보이지 않는다. 애기똥풀이나 괭이밥 노란 꽃들도 온데간데없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풀들 역시, 한 번 엎드린 채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비는 그쳤어도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생채기는 곳곳에 남아 있다. 여기 저기, 도로에서 천변으로 내려가는 계단 난간이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 부러진 나뭇가지나 덤불이 떠밀려 오다 난간에 걸려 있는 모습도 보인다. 지난주 얼마나 많은 비가 왔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긴 하천 범람으로 양동 복개상가가 하마터면 물에 잠길 뻔하기도 했으니.
예전엔 멱감고 빨래했건만
광주천은 건천(乾川)이다. 조금만 가물어도 이내 물이 마르는 내라는 얘기다. 그러나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예전엔 홍수 피해를 염려할 만큼 수량이 풍부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의 광주대교 옆 도로변에 복원되어 있는 석서정이 그 증거다. 산책로에서 계단을 타고 오르니 이곳 정자의 내력을 돌에 새긴 안내비가 보인다.
정자의 기문(記文)은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란 시조로 우리에게 익숙한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었다고 한다. ‘석서정기’(石犀亭記)에서 그는 이 정자가 ‘수재 예방’과 관련이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사람들이 모여 한갓 풍류나 즐기자고 세운 건물이 아닌 것이다.
기문(記文)에 따르면 남산(무등산)에서 발원한 두 줄기의 하천(광주천과 증심사천)은 홍수 때마다 주변에 큰 피해를 입히곤 했다. 그러던 중 광주 목사로 부임한 김상(金賞)이란 사람이 범람을 막기 위해 하천이 좁아지는 병목 부분의 물길을 터 본류 옆으로 새로 배수로를 뚫었다.
“배수로는 읍성 옆을 돌아나가 광주천 반대편으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광주천과 새로운 배수로 사이에 갇힌 땅은 마치 섬 모양이 됐고,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워 석서정이라 했다. ‘석서’(石犀)란 돌로 만든 물소란 뜻이다. 이색의 기문에 나와 있듯 돌은 산의 뼈대이며 물소는 물을 짓밟고 다니는 짐승이므로, 모두 물의 위험을 누르는 상징이라 정자의 이름으로 취한 것이었다.”(조광철,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실장)
이처럼 예전의 광주천은 주민들의 삶에 대단히 위협적인 하천이었다. 툭하면 범람을 일으켜 주변 농경지와 민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곤 했다. 하지만 눈부신 백사장과 수초 무성한 둔치가 하염없이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물도 깨끗해 잉어나 붕어 떼가 뛰놀았다. 아이들은 멱을 감았으며, 청년들은 투망질로 저녁거리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아낙네들은 빨랫감을 한 아름씩 들고 와 방망이로 통통 두드리며 빨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비가 조금만 와도 생활하수와 오수(汚水: 구정물)가 합쳐져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의 젖줄’로 불리던 광주천은 인구가 증가하고 생활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산업화를 겪으면서 심하게 오염되기 시작했다. ‘도심의 하수도’로 전락한 것이다. 소태천·서방천·극락천의 물이 줄어들면서 그렇지 않아도 건천인 광주천의 수량은 더욱 줄어들었다. 결국 공장과 가정에서 배출하는 오폐수(汚廢水)로 인해 ‘죽은 천’이 되고 말았다.
지금이야 인위적으로 많은 양의 맑은 물을 흘려보내고 있긴 하지만, 광주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수질 개선이 최우선 과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하천으로 더러운 물이 직접 흘러들지 못하도록 하수관거(下水管渠: 여러 하수구에서 하수를 모아 하수처리장으로 내려 보내는 큰 하수도관)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여 하천을 복원해도 생활하수가 그대로 유입되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산강 살릴 비법 있다는데
나는 여기서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최근에 읽은 좋은 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제목은 ‘아직도 오·하수가 흐르는 광주천과 영산강-그린 뉴딜로 그 대안을 찾자’다. 이 글을 쓴 이는 먼저 하수(下水) 처리에는 세 가지 기술이 있다고 일러 준다. 침전·희석 등의 물리적 처리, 미생물 신진대사에 의한 생물학적 처리, 질소와 인을 제거하는 화학적 처리 기술이다. 광주시의 현재 하수 처리는 이상 3단계로 끝난다.
그래서 여과 필터를 이용해 잔여 오염물질을 최종 처리하는 ‘막(膜) 여과’(Membrane filtration) 처리 기술을 활용하자는 거다. 현재 이 필터 기술은 하수나 바닷물을 ‘먹는 물’ 수준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모래 여과’와 달리 ‘막 여과’는 소형화가 가능해서 용지 면적이 적게 소요되는 데다, 바이러스나 세균 등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깨끗한 수질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설치비가 비싸고 유지 관리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돈이 문제로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그린 뉴딜’ 사업으로 광주를 ‘물 관련 필터 소재 생산기지’로 만들면 이 또한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을 보면서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수 처리의 필수 소재인 필터를 자체 생산함으로써 광주천과 영산강을 일거에 청정 1급수로 만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필터를 염가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는 것이 글 쓴 이의 최종 결론이다.
장문의 글을 아주 간략하게 줄여 보았는데, 이 같은 주장을 펴고 있는 이는 김강열 광주환경공단 이사장이다. 글을 다 읽고 나서 나는 김 이사장에게 간단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돈이 문제로군요.” 그의 대답은 달랐다. “돈이 아니라 의지가 문제지요.”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광주시 고위 관료들이라면 그의 글을 한번 반드시 읽어 보시기를. 특히 이용섭 광주시장께서는 꼭!
/주필
폭우로 잠시 몸을 숨겼던 바위들도 다시 물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크고 편편한 바위 위에서 노랑 부리 왜가리 한 마리가 물속을 응시하며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녀석도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일 터.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평화스럽고 한가롭게만 보인다.
예전엔 멱감고 빨래했건만
광주천은 건천(乾川)이다. 조금만 가물어도 이내 물이 마르는 내라는 얘기다. 그러나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예전엔 홍수 피해를 염려할 만큼 수량이 풍부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의 광주대교 옆 도로변에 복원되어 있는 석서정이 그 증거다. 산책로에서 계단을 타고 오르니 이곳 정자의 내력을 돌에 새긴 안내비가 보인다.
정자의 기문(記文)은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란 시조로 우리에게 익숙한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었다고 한다. ‘석서정기’(石犀亭記)에서 그는 이 정자가 ‘수재 예방’과 관련이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사람들이 모여 한갓 풍류나 즐기자고 세운 건물이 아닌 것이다.
기문(記文)에 따르면 남산(무등산)에서 발원한 두 줄기의 하천(광주천과 증심사천)은 홍수 때마다 주변에 큰 피해를 입히곤 했다. 그러던 중 광주 목사로 부임한 김상(金賞)이란 사람이 범람을 막기 위해 하천이 좁아지는 병목 부분의 물길을 터 본류 옆으로 새로 배수로를 뚫었다.
“배수로는 읍성 옆을 돌아나가 광주천 반대편으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광주천과 새로운 배수로 사이에 갇힌 땅은 마치 섬 모양이 됐고,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워 석서정이라 했다. ‘석서’(石犀)란 돌로 만든 물소란 뜻이다. 이색의 기문에 나와 있듯 돌은 산의 뼈대이며 물소는 물을 짓밟고 다니는 짐승이므로, 모두 물의 위험을 누르는 상징이라 정자의 이름으로 취한 것이었다.”(조광철,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실장)
이처럼 예전의 광주천은 주민들의 삶에 대단히 위협적인 하천이었다. 툭하면 범람을 일으켜 주변 농경지와 민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곤 했다. 하지만 눈부신 백사장과 수초 무성한 둔치가 하염없이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물도 깨끗해 잉어나 붕어 떼가 뛰놀았다. 아이들은 멱을 감았으며, 청년들은 투망질로 저녁거리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아낙네들은 빨랫감을 한 아름씩 들고 와 방망이로 통통 두드리며 빨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비가 조금만 와도 생활하수와 오수(汚水: 구정물)가 합쳐져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의 젖줄’로 불리던 광주천은 인구가 증가하고 생활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산업화를 겪으면서 심하게 오염되기 시작했다. ‘도심의 하수도’로 전락한 것이다. 소태천·서방천·극락천의 물이 줄어들면서 그렇지 않아도 건천인 광주천의 수량은 더욱 줄어들었다. 결국 공장과 가정에서 배출하는 오폐수(汚廢水)로 인해 ‘죽은 천’이 되고 말았다.
지금이야 인위적으로 많은 양의 맑은 물을 흘려보내고 있긴 하지만, 광주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수질 개선이 최우선 과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하천으로 더러운 물이 직접 흘러들지 못하도록 하수관거(下水管渠: 여러 하수구에서 하수를 모아 하수처리장으로 내려 보내는 큰 하수도관)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여 하천을 복원해도 생활하수가 그대로 유입되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산강 살릴 비법 있다는데
나는 여기서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최근에 읽은 좋은 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제목은 ‘아직도 오·하수가 흐르는 광주천과 영산강-그린 뉴딜로 그 대안을 찾자’다. 이 글을 쓴 이는 먼저 하수(下水) 처리에는 세 가지 기술이 있다고 일러 준다. 침전·희석 등의 물리적 처리, 미생물 신진대사에 의한 생물학적 처리, 질소와 인을 제거하는 화학적 처리 기술이다. 광주시의 현재 하수 처리는 이상 3단계로 끝난다.
그래서 여과 필터를 이용해 잔여 오염물질을 최종 처리하는 ‘막(膜) 여과’(Membrane filtration) 처리 기술을 활용하자는 거다. 현재 이 필터 기술은 하수나 바닷물을 ‘먹는 물’ 수준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모래 여과’와 달리 ‘막 여과’는 소형화가 가능해서 용지 면적이 적게 소요되는 데다, 바이러스나 세균 등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깨끗한 수질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설치비가 비싸고 유지 관리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돈이 문제로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그린 뉴딜’ 사업으로 광주를 ‘물 관련 필터 소재 생산기지’로 만들면 이 또한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을 보면서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수 처리의 필수 소재인 필터를 자체 생산함으로써 광주천과 영산강을 일거에 청정 1급수로 만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필터를 염가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는 것이 글 쓴 이의 최종 결론이다.
장문의 글을 아주 간략하게 줄여 보았는데, 이 같은 주장을 펴고 있는 이는 김강열 광주환경공단 이사장이다. 글을 다 읽고 나서 나는 김 이사장에게 간단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돈이 문제로군요.” 그의 대답은 달랐다. “돈이 아니라 의지가 문제지요.”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광주시 고위 관료들이라면 그의 글을 한번 반드시 읽어 보시기를. 특히 이용섭 광주시장께서는 꼭!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