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이 전하는 교훈 - 송민석 수필가·전 대학 입학사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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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이 전하는 교훈 - 송민석 수필가·전 대학 입학사정관
2026년 01월 21일(수) 00:20
단풍이 곱게 물들 때쯤이면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것이 나의 오랜 습관이다. 이때쯤이면 늦가을, 어김없이 지리산 작은 골짜기 마을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빨간 홍시가 눈길을 끈다. 이를 보면서 각박한 인생길의 등불 같은 ‘까치밥’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까치밥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옛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여기저기에 녹아 있다. 어느 시인은 ‘까치밥을 따 버리면 빈 겨울 하늘만 남을 것’이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둘레길을 걸으며 우리 선조들의 ‘까치밥’ 문화를 통해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는 단순한 자연의 모습이 아니다. 이 작은 풍경 속에 선조들의 지혜와 공생의 철학이 담겨 있다. 너나없이 가난한 세상,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춥고 배고픈 시절에도 생명의 온기를 나누던 지혜의 상징이 아닐까 한다.

생태계 순환의 지혜가 담긴 까치밥은 겨울철에는 먹을거리가 부족해지는 까치, 참새, 직박구리 같은 새들이 남겨진 감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낸다. 그 과정에서 새들이 감 씨를 멀리까지 옮기며 감나무의 씨앗이 퍼지는 자연의 순환도 함께 이루어지게 된다. 인간의 작은 배려가 결국 생태계를 유지하고 살찌우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이러한 공존의 철학은 우리의 ‘고수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옛날에는 들이나 산에서 밥을 먹거나 음식을 먹어야 할 경우 음식을 조금씩 떼어서 ‘고수레’하며 던지는 풍습이 있었다. 농사일 중 새참이나 점심을 먹기 전, 들을 지키는 지신(地神)이나 수신(水神)을 향해 먹을 음식의 첫 숟가락을 떠서 공중으로 던져 감사의 마음을 전하던 의식이 고수레다. 배가 고프다고 하여 맛이 있다고 하여 자신의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변과 자연을 살피는 넉넉한 마음씨이다. 자연을 숭상하고 절대자와 함께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삶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펄벅 여사가 1960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였다. 황혼 무렵 볏단을 지게에 진 채 소달구지를 끌고 귀가하던 농부의 모습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볏단을 끌고 가는 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나누어지고, 나란히 집으로 향하는 그 모습을 보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펄벅은 감나무 끝에 달린 따지 않은 감나무를 보고는 “저 높은 곳의 감들은 따기 힘들어서 남긴 것인가요?”라고 물었다가 “까치밥이라 해서 겨울 새들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크게 감탄했다.

“바로 이거예요. 내가 한국에서 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펄벅 여사는 훗날 그의 저서 ‘살아있는 갈대’ 책 첫머리에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극찬했다. 이는 1960년 한국 방문 경험 때문이었다.

요즘 많은 이들이 ‘나’만 보고 살아가려 한다.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감사 불감증’이 아닐까 한다.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기고, 음식을 먹기 전에 고수레하고, 욕심이 동티를 불러온다는 것을 단단히 새기면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까치밥과 고수레는 “같은 자연으로 함께 삽시다”라고 하는 우리 인간의 제안이다.

조상들이 남긴 상생과 나눔의 철학, 까치밥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세상은 먼 데 있지 않다. 자연을 존중하고 공존을 실천하는 작은 행동, 그 출발점이 바로 까치밥이 들려주는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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