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의 종말- 이병우 우아포인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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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의 종말- 이병우 우아포인트연구소 대표
2026년 02월 04일(수) 00:20
그 많던 호프집은 어디로 갔을까. 한때 밤마다 북적이던 대학가와 오피스 밀집 지역의 술집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서울에서 폐업한 외식업체는 약 4400곳에 달하며 이 가운데 51%가 호프집과 간이주점이다. 물론 술집만 줄어든 것은 아니다. 2023년을 기점으로 전체 점포 수 자체가 감소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호프집의 감소 폭은 유독 크다. 이와 함께 주류 소비 역시 2015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2015년 대비 2021년 약 18% 줄었다.

이 현상에는 불경기의 영향도 작용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음주 소비 패턴의 변화에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MZ세대가 있다. 이들은 술을 덜 마실 뿐 아니라 마시더라도 과거와 같은 방식의 음주 문화를 원하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인식 전환을 가속화했다. 이미 회식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이들에게 팬데믹은 ‘회식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이제 과거와 같은 형태의 회식은 사실상 종말을 맞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회식의 종말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밤 경제’의 붕괴와 유통 지도의 재편으로 읽힌다. 술 중심의 회식은 식사 중심으로, 저녁은 점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때 당연하게 여겨졌던 1차 식당, 2차 호프, 3차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소비 사슬은 무너졌고 그 여파로 노래방 수 역시 빠르게 줄고 있다. 반면 비알코올 음료 시장, 편의점 소비, 배달 음식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술잔을 섞으며 서열을 확인하는 ‘회식 자본주의’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독립된 개인들이 각자의 취향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파티 자본주의’로 이동하고 있다. 강압적인 위계의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취함’ 대신 ‘취향’을 선택하는 개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술병 대신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이 SNS를 채우고 전시 관람이나 공연, 취미 활동 같은 문화적 경험이 저녁 술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혼술과 혼밥의 확산으로도 이어졌다. 과거에는 고립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타인의 시선을 벗어난 선택이자 해방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회식의 종말이 남긴 아쉬움도 있다. 과거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오가던 인간적인 위로와 상담은 점차 효율적인 기술적 조언, 나아가 AI 알고리즘으로 대체되고 있다. 인간적 유대감을 위해 감정을 소모하는 행위 자체가 ‘비효율’로 인식되는 경향도 짙어졌다. 여전히 소속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고 싶은 일부 구성원들은 이러한 관계의 파편화 속에서 심리적 공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집단주의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고립을 두려워하는 이중적인 심리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술 소비 감소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OECD 회원국의 1인당 연평균 주류 소비량은 2011년 9리터에서 2016년 8.6리터로 감소했다. 영국의 상징과도 같던 펍은 지속적으로 문을 닫고 있으며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도 맥주 판매량이 줄고 있다. 미국 주류 시장 역시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4년에는 미국 수제 맥주 산업에서 사상 처음으로 개업보다 폐업이 많은 역전 현상이 나타났고 생산량도 감소했다. 이에 따라 세계 주요 주류 기업 50곳의 시가총액은 최근 4년 사이 약 8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00조 원이 증발했다.

한국의 회식 문화는 그 독특함 때문에 해외 언론에서도 자주 조명돼 왔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2024년 한국 Z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음주 혁명’을 소개했고, 2013년 미국 CNN은 “한국인이 잘하는 것 10가지” 가운데 하나로 회식(Hoesik)을 꼽았다. 당시 CNN은 상사가 주도하고 폭탄주를 마시며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는 술자리 문화를 설명하며 ‘회식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7가지 팁’을 제시했다. 그 첫 번째 조언이 ‘위계질서 파악하기’였다는 점은 한국 회식 문화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식의 종말이 술 자체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개인적인 술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술을 즐긴다. 다만 달라진 것은 회식 문화다. 그 변화가 음주 문화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바로미터다. 이제는 달라진 시대에 맞는 새로운 관계의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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