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공부하는가? - 박행순 전남대 명예교수, 전 네팔 파탄의대·카트만두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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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하는가? - 박행순 전남대 명예교수, 전 네팔 파탄의대·카트만두대 객원교수
2025년 12월 03일(수) 00:20
대학에서 교양과목 ‘삶과 지적 대화’의 한 꼭지를 맡은 지 3년이 되었다. 지난 학기부터 유태인의 삶을 포함시키니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되돌아보게 된다.

2012년 MBC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대부터 50대까지 우리나라 남자들이 후회하는 1 순위는 “공부 좀 할 걸”이다. 여자들도 젊을 때는 남자들과 같지만 40, 50대가 되면 “애들 교육에 신경 더 쓸 걸”하고 공부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자식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를 들볶는 ‘몬스터 맘’ 또는 ‘괴물부모’가 생겨나는 것 같다.

KBS 정현모 프로듀서가 이스라엘, 미국, 유럽 등지의 유태인들을 만나 취재한 후 2011년에 출판한 ‘유태인의 공부’에서 그들이 공부하는 목적은 ‘신 앞에서 바른 삶을 살기 위하여 토라(모세의 율법)를 배우고 대를 이어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한다. 사람 앞에서 바른 삶을 살기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신 앞에서 바른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에게 공부는 삶의 목적, 본질이며 지식이 아니라 진리와 지혜를 추구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하브루타(Havruta)’라는 공부 방식은 짝을 지어 질문, 토론, 논쟁하고 역할을 바꾸어 양방향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논리적이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고 둘은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동반자가 된다.

유태인 가정에서 안식일인 금요일, 저녁 식탁은 밥상머리 교육장이다. 모든 주제가 열려있어서 아버지를 중심으로 자녀들은 자유롭게 질문하고 자기 의견을 말한다. 주말마다 열띤 가족 세미나가 열리는 셈이다.

반면, 우리는 식사 시간에 심각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주장하는 기술이 서툴러서 결국 감정이 상하고 소위 밥맛이 떨어지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나 가정, 어디서나 질문 보다 정답을 선호하고 다른 의견 내기를 주저한다. 결과적으로 비판적 사고의 결여는 현대와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위를 분별하지 못하고 각종 사기나 피싱에 잘 넘어가는 토양이 우리의 교육과 문화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 이유는 공부를 잘 하면 성공하고 부를 축적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서울대 교육연구소(2022년)의 “공부는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고등학생의 70% 이상이 “성적 향상, 진학”이라고 답했다. 2023년 교육부의 청소년 인식조사에서 공부 목적에 대한 답변 1위는 좋은 대학 진학(62%), 2위는 좋은 직장(24%)으로 두 기관의 조사 결과가 일치한다.

우리와 유태인의 삶을 비교하다보면 학생들은 자신들의 공부하는 목적, 방법 등에 회의, 자책하는 의견들을 내놓기도 하며 우리의 교육 현장이 바뀔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나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새삼스러운 물음 앞에서 ‘성공과 부를 통한 행복’을 나의 최우선 가치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가 답해야 한다.

그간 10년 가까이 살았던 네팔의 삶을 소개할 때 ‘세계의 지붕’, 해발 8848.86m의 에베레스트 산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높은 에베레스트 산과 2400km 길이의 히말라야 산맥을 백만분의 일로 축소하면 산맥의 길이 240cm에 비해 산들의 높이는 고작 0.9cm 미만이다. 산맥과 산에 서로 다른 단위를 적용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사물을 왜곡하여 인식하는지 놀라게 된다.

세계 8000m이상의 고봉 14개중 히말라야 산맥이 10개를 품고 있다. 우리의 인생 전체가 히말라야 산맥이고 그중 성공과 실패로 기억되는 것들이 봉우리라고 가정하면, 240 가운데 0.9 미만이다. 입체적으로 보면 참으로 소소하게 보이지만 이 또한 매우 중요하다. 히말라야 산맥에 이름 붙여진 봉우리들만 3400개가 넘고 이들이 있어 네팔이 돋보이듯이 우리 삶에서 성공 뿐 아니라 실패 또한 소중한 봉우리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강의 마지막은 항상 “성공뿐 아니라 방황, 실수, 실패도 귀중한 자산이며 포기하지 않는 한, 즉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지 않는 한, 실패한 삶은 없다”라고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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