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통합 -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옹관(甕棺)은 흙으로 만든 항아리를 이용해 시신을 안치하는 관을 말한다. 흔히 독널로도 부른다. 옹관을 사용하는 매장방식은 토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이어져 왔다. 어린이 시신을 묻거나 성인의 뼈만 골라 옹관에 넣는 방식이다. 일제 강점기 나주 반남고분군에서 시신 매장용 전용 옹관이 처음 발굴됐고 1960년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소아용 옹관 53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옹관은 영산강 유역 일대 마한(馬韓)을 상징하는 묘제다. 타 지역에서는 지배층의 무덤으로 나무나 돌을 이용한 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을 사용했는데, 영산강 유역 일대에서는 유독 흙으로 만든 성인용 옹관이 사용됐다. 길이 2m, 무게 300kg에 달하는 거대한 옹관을 제작해 장례에 사용하는 풍습은 3세기 무렵부터 6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5세기 즈음 운영된 나주 오량동 가마터는 옹관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이다. 나지막한 구릉에서 옹관을 생산한 가마 77곳과 공방이 발견됐다. 미조사 가마까지 포함하면 수 백기가 100여년 동안 운영돼 온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이 옹관 제작 기술을 복원하기도 했는데, 현재 사용하는 옹기의 제작 방법과 유사하다. 점토띠를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올려 가마에서 굽는 방식이다.
전남도가 최근 나주시·영암군과 함께 ‘마한 옹관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나섰다. 잠정목록 등재를 신청한 유산은 나주 오량동 요지(窯地), 나주 반남고분·복암리고분군, 영암 시종고분군 등 4곳이다. 옹관이 가장 성행했고 두드러진 지역이다. 아쉽게도 전남과 영산강 줄기를 공유하고 있는 광주의 신창동 유적은 빠졌다. 옹관의 맥을 잇고 있음에도 말이다. 물론 고대사와 무관한 행정 경계가 작용하고 있다. 2021년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당시에도 ‘마한역사문화권’에 ‘전남’만 포함시켰다가 뒤늦게 법을 개정해 광주를 포함시켰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행정통합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원래 한 뿌리였다는 전제가 바탕이라면 가장 먼저 복원하고 통합해야할 현안은 광주·전남 고대사가 아닐까.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penfoot@kwangju.co.kr
5세기 즈음 운영된 나주 오량동 가마터는 옹관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이다. 나지막한 구릉에서 옹관을 생산한 가마 77곳과 공방이 발견됐다. 미조사 가마까지 포함하면 수 백기가 100여년 동안 운영돼 온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이 옹관 제작 기술을 복원하기도 했는데, 현재 사용하는 옹기의 제작 방법과 유사하다. 점토띠를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올려 가마에서 굽는 방식이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행정통합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원래 한 뿌리였다는 전제가 바탕이라면 가장 먼저 복원하고 통합해야할 현안은 광주·전남 고대사가 아닐까.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penfoot@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