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세계문학중심도시로] ‘소년이 온다’가 불러온 나비효과 …‘책읽는 광주’ 날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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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세계문학중심도시로] ‘소년이 온다’가 불러온 나비효과 …‘책읽는 광주’ 날갯짓
[ (11) 책 읽는 인문도시]
한강 작가,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회견서 “책 많이 읽는 광주 만들어달라”
시민에 책 읽기·인문학 중요성 환기
광주시 ‘인문도시 광주위원회’ 발족
올 책마당·인문투어 등 프로그램 다채
‘책 생태계 활성화’로 독서율 제고를
2025년 07월 28일(월) 08:20
‘인문도시 광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책 생태계를 새롭게 조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독립서점 ‘기역책방’에서 한 독자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 <광주일보 DB>
자본주의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추동력은 부와 명예와 같은 외적인 조건이다. 일반적인 성공은 물질적인 부를 전제하며 액수로 환산된다. 하지만 물질적 성공에는 진정한 의미의 꿈의 미학, 삶의 미학이 결여돼 있다.

미래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현대 문명을 창조했지만, 이 문명을 통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오늘날 물질적 풍요와 외적인 성공만을 위해 질주하는 현대인들이 한번쯤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지난해 한국문학과 광주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책 읽기와 인문학의 중요성을 환기한 ‘대사건’이었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두 개의 질문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근에 자리한 독립서점 책과 생활 내부.
◇한강 노벨상 계기, 책 읽기와 인문학에 관심

한강 작가의 강연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에 대한 특히 한없이 작은 약자에 대한 사랑이다. 또한 작가의 내면에 드리워진 명징한 의식은 ‘광주는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사실이다.

한강은 소설가 이전에 사유가 깊고 명징한 인문학자다. 문장에 드리워진 품격과 고전미, 인간과 세계에 대한 심오한 성찰은 여타 작가와 변별된다. 또한 그는 창작을 하지 않는 시간은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감성을 충전하고 지적 사유의 경계를 확장한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노벨상의 도시’ 광주에 책 읽기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 한강은 “큰 기념관이나 화려한 축하잔치를 원하지 않으며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사는 광주를 만들어 달라”고 밝힌 바 있다. 그뿐 아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공식 기자 회견에서는 ‘‘제2 한강’이 나오려면?’이라는 물음에 다음처럼 이야기했다.

“어릴 때부터 1년에 최소한 문학작품을 학교에서 서너 권은 읽고 그걸 토론하고 다각도로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문학작품을 읽는 근육을 기를 수 있게, 문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특히 입시 때문에 멈추지 않고 중고등학교를 통과하며 그런 교육을 한다면 독법(讀法)도 풍요로워질 것 같다.”

책 읽기와 인문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늘의 한강을 만든 것은 부친인 한승원 소설가의 “혼자만의 동화적인 몽상을 즐기던 시간이 결국 오늘의 작가로 키운 것이 아니었나 싶다”는 말에서 짐작이 된다.

독서, 상상력, 사유 등은 곧 인문학으로 수렴된다. 인문학이 거창하거나 어려운 학문은 아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배우며 해석하는 학문이다. 인문학(人文學)은 ‘人+文+學’이 결합된, “인간의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학문 가운데 가장 먼저 인(人)을 내세우는 분야는 인문학이 거의 유일하다. ‘먼저 인간이 돼라’는, 인간을 배운다는 의미가 투영돼 있다. 인간을 이해하고 그 존엄을 인식하라는 뜻도 담겨 있다. 인간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토대를 갖춘 후에 문(文)을 배워야 학문이 견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文)은 앞서 언급한 고전적인 인문학의 범주인 문학, 역사, 철학을 지칭하지만 오늘날은 그 경계가 확장되는 추세다. 미학을 비롯해 미술, 음악, 예술, 문화 등 타 장르로도 넓혀지고 있다. 융합과 통섭 등 다양한 접근을 연계로 하며 그 전제 조건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탐구’다.

올 봄에 진행된 광주시 도서관문화마당 장면. <광주시 제공>






◇지역의 독서 프로그램 다채…책 생태계와 연계를

광주시의 책 읽는 인문도시는 독서와 인문학에 방점을 두고 있다. 기초, 토대를 탄탄히 하자는 의미로 읽힌다.

지난해 11월 광주시는 전일빌딩245에서 북카페 ‘소년이 온다’ 개소식을 열고 독서 및 인문학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인문도시 광주위원회’를 발족했다. 김형중 조선대 국어국문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신형철 서울대 영어영문과 교수가 부위원장을 맡았으며 이용훈 전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 황풍년 전라도닷컴 대표, 이기호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송광룡 문학들 대표, 김꽃비 문화기획자 등이 참여했다.

당시 위원회는 ‘책과 친해지는 문화’를 만들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건물을 짓고, 거창한 행사를 열기보다 읽기 문화부터 조성하자는 것이다. ‘책 읽는 광주 프로젝트’를 추진해 책과 함께 성장하는 도시, 책을 읽고 향유하는 책과 함께 하는 시민, 독자와 작가 그리고 출판사 등의 경쟁력을 도모하는 독서 생태계의 활성화를 꾀하자는 취지다.

강기정 시장은 “그동안은 광주 앞에 정신을 붙여 ‘광주정신’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노벨상의 도시’라는 이름도 붙게 됐다. 평화정신이 책 읽는 인문도시 광주에서 더 커지고 깊어지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김형중 위원장은 ‘인문학적 사유가 가능한 광주’를 강조했다. 그는 “‘광주의 골목까지 책의 영향이 미치고 인문학적 사유가 가능한 광주’, ‘아주 유익하게 멍 때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 위원회의 역할이고 인문도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광주시는 지난해 시립도서관 생애주기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청소년 대상 진로독서, 성인 대상 경제인문학 등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지식정보 취약계층을 위한 독서활동 지원, 시민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아카데미 강좌 등이 그것이다.

광주시는 올해도 인문사업 일환으로 ‘도심 속 북크닉, 빛고을 책마당’(9월 6~7일), 인문투어 ‘소년의 길’(5월~11월), ‘시립도서관 다문화 및 취약계층 대상 인문 프로그램’(4월 ~11월) 등을 진행 중이거나 진행할 예정이다.

동구 구립도서관 책정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어린이와 시민들.
각 지자체에서도 지난해 인문학, 독서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진행했다. 문화강연, 독서교실, 북토크, 낭독회, 독서동아리 지원, 북페스티벌, 독서공모전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도 지자체들은 책마을 인문산책(동구), 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서구), 테마가 있는 인문학 아카데미(남구), 주부인문학당(북구), 세대를 아우르는 인문학(광산구) 등을 운영한다.

이처럼 시를 비롯해 지자체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일말의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목도 있다. 관련 프로그램은 명칭만 다를 뿐 변별성이나 차별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브랜드로 내세울 만한 개성적이며 확장적인 프로그램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백화점식 나열의 운영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고민하고 삶에 대해 사유하고 탐색하는 인문학 본연의 탐구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양질의 프로그램과 차제에 이를 콘텐츠로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인문도시 광주’를 실현하기 위해선 책 생태계를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조진태 오월문예연구소장은 출판생태계 활성화는 자율 시장, 곧 자본의 흐름에만 맡겨서는 그 해법이 어려울 만큼 간단치 않은 문제이기에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책 생태계는 저자-출판사-서점, 도서관-독자의 순환구조로 이루어진다”며 “ 생산(저자와 출판사)과 유통(서점)이 활성화되려면 소비(도서관, 독자)가 기본 축인데, 광주전남 지역 사람들의 독서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 소장은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진흥조례’, ‘문화예술진흥조례’와 ‘지역출판진흥조례’ 모두 이를 위한 제도적 환경이 명시돼 있다”며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시행과 지속성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독서와 인문학은 무궁무진한 콘텐츠 원 재료를 제공하는 본질적인 분야다. 기업적 관점에서도 지식이나 기술도 융합하고 확장해야 시너지효과를 발현하는 시대다. 제품이 인간에게 유용하며 인간의 삶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의 밑바탕이 책(독서)에서 연유하며 상당부분 인문학적 상상력과 지식을 필요로 한다.

광주시의 ‘책 읽는 인문도시’가 인문학의 본질과 내용 등을 아우르는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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