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 열사와 역사의 피뢰침- 강수돌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전체메뉴
윤상원 열사와 역사의 피뢰침- 강수돌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2025년 07월 15일(화) 00:00
오랜만에 다시 찾은 광주 망월동 묘지, 공식적으로는 ‘국립 5·18민주묘지’라 한다. 그러나 내 기억엔 ‘광주민주항쟁열사쉼터’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추모탑 뒤 제1묘역엔 박기순-윤상원 열사가 ‘함께’ 누워 계신다. 그리고 그 왼편 도로를 건너 조금 올라가면 우측에 제3묘역도 나온다.

1980년 5·17 비상계엄에 항거하던 초창기 열사들의 안식처로 기억한다. 아주 잘 다듬어진 제1묘역에 비해 제3묘역은 좀 더 ‘자연스런’ 분위기다. 5.18 당시 사망자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민주, 노동, 통일운동을 하다 산화한 열사들이 함께 안식한다. 모두 이 시대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셨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그 기운이 ‘바로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특히 박기순-윤상원 열사는 영혼결혼식과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유명하다. 박기순 열사(1958-1978)는 전남대 국사교육과 3학년이던 1978년 학교에 가지 못한 노동자들을 위해 다른 동지들과 함께 광천동 성당 교리실에 야간학교를 만들었다. 들불야학이었다. 이어 광천공단에 ‘위장 취업’ 노동자가 되었다. 대학생을 포기하고 낮에는 노동자, 밤에는 야학 강학(교사)을 하면서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런데 그는 그해 겨울, 불의의 사고(연탄가스)로 만 20년의 인생을 마치고 말았다.

윤상원 열사(1950-1980)는 1971년에 전남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 중간에 군 복무(하사관) 후 1976년 복학한 뒤 1978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서울 주택은행(봉천동 지점)에 취업했으나 6개월 뒤 사직했다. ‘민중의 곁’으로 가려는 마음이 컸던 탓이다. 광천동의 한 공장에 ‘위장 취업’했고 1979년부터 박기순이 운영하던 들불야학 강학으로 참여했다. 여기서 두 사람의 인연이 두터워졌다.

윤상원은 또 들불야학 인근의 시민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민운동도 했다. 10.26 이후엔 본격적 노동운동 조직화에 뛰어들던 중 전두환과 노태우 등에 의해 1980년 5.17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비상계엄 즉각 해제하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5.18항쟁의 불을 댕겼다. 이어 녹두서점에서 동지들과 화염병을 제작, 보급했다. 투쟁의 홍보를 위해 등불야학 동지들과 함께 ‘투사회보’도 제작, 배포했다. 항쟁의 치열한 과정 중(5.25.) 무기반납과 투항을 둘러싼 분열이 가시화하자 열사는 새로운 항쟁지도부인 ‘시민학생투쟁위’를 만들었다. 투항 아닌 투쟁 의지와 상황을 정직하게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 ‘대변인’이 되었다. 그렇게 도청 사수 최후 투쟁을 하다 계엄군 총에 맞고 말았다. 그리하여 윤 열사는 계엄의 번갯불을 먼저 맞고 쓰러짐으로써 공동체와 역사를 구해냈다. 앞장서서 ‘역사의 피뢰침’(하성흡)이 된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설사 여기서 우리가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불의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웠다는 자랑스러운 기록을 남깁시다.” 비장한 각오였다. 그에게 목숨보다 귀한 것은 양심과 역사였다.

이 마음을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에서 이렇게 썼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그렇다. 양심과 용기가 사회와 역사를 살린다. 만일 우리가 강자 앞에 굴복한 뒤(“강자 동일시”), 돈이나 권력에 영혼을 판다면 우리 공동체는 윤석열 일당의 12·3 쿠데타 앞에 처참하게 붕괴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지고 서해 바다에서 수장되었을지 모른다. 또 6.25 같은 전쟁이 터져 ‘김건희 2025 통일대통령 만세!’ 같은 헛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망월동을 다시 방문하고 보니, 나는 얼마나 양심과 용기를 지키며 사는지 거듭 자문하게 된다. 민주 영령들이시여, 정말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