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도 그림도 삶도 ‘짓는 마음’ 같아…정성 들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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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도 그림도 삶도 ‘짓는 마음’ 같아…정성 들여야”
허백련미술상 수상 ‘그림으로 농사 짓는’ 박문종 화가
자연·농촌 모티브 65점…12월25일까지 의재미술관
2024년 11월 04일(월) 19:45
박문종 화가
“당시 난초를 많이 그렸습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기초 훈련을 하듯, 난초 선 그리는 데 몰두했지요. 수련하듯 묵선을 그렸던 것은 기초가 중요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박문종 화가는 연진회 미술원 1기생이다. 연진회 미술원은 의재 허백련 제자들이 주축이 돼 스승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1978년 창설했다.

당시 박문종 작가는 연진회 미술원 1기생으로 입문했다. “선의 무거움을 깨닫는 시간”이었다는 말에서 그림을 대하는 곧은 정신 같은 게 느껴졌다.

2023 허백련미술상 수상작가로 선정된 박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오는 12월 25일까지 의재미술관에서 펼쳐지며, 광주시립미술관(관장 김준기)과 의재미술관(관장 이선옥)이 공동 개최한다. 초창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모두 65점이 출품돼 작가의 그림 여정을 볼 수 있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만난 박 작가는 첫눈에도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천상 농부라 해도 될 만큼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배어나왔다. 헌데 그림과 농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상통하는 점이 있다.

무언가를 ‘짓는 마음’은 동일할 것이다. 결실을 맺기까지 씨를 뿌리고, 가꾸고, 정성을 들이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 농사가 그렇고, 그림이 그렇고,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이 그런 과정을 거쳐야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둘 수 있다.

박 작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8년 연진회에 들어갔다”며 “도제식 교육으로 진행됐는데 난초 그림을 많이 그렸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의재 선생님이 작고하신 이후 춘설헌에서 반년 동안 기거하며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공모전은 저 같은 시골 출신 작가들에게는 ‘비빌 언덕’과도 같았죠. 국전을 준비하며 반년 가까이 그림을 그렸는데 나중에 입선을 했는데 그곳에서의 기억은 여전히 새롭습니다.”

‘모내기’
무안에서 태어난 그는 연진회 미술원 1기생으로 그림에 입문 후 1980·90년대 암울한 시대 상황을 필묵으로 표현했다. 이른바 현실주의 수묵화 시기를 거친 것이다. 1997년 담양으로 이주한 후에는 ‘농사짓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 그리듯 농사를 짓는’ 삶을 살고 있다.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부끄럽다”고 손사래를 치는 그는 현재 논농사는 안 짓고 텃밭 정도 일구고 있다. 자신은 ‘농부 화가’가 아니라며 그러면서 밀레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이삭 줍는 여인’ 등을 그린 밀레는 화가이지 농부가 아닙니다. 농촌의 풍경, 가난의 사회적 의미를 숙고하게 하는 작품들 그렸죠. 우리가 밀레를 화가라고 부르지 ‘농부화가’라고는 하지 않거든요.”

박 작가는 남도의 자연과 농촌을 모티브로 흙과 인간이 교감하는 서사를 그린다. 그의 정체성은 ‘그림으로 농사를 짓는 화가’에 닿아 있다.

“농경과 농촌을 소재로 하는 그림을 그린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흙과 농사를 모티브로 삼는 이유에 대해 그는 “80년대 이후 작품 활동을 하면서 무엇을 그릴까 고민을 했다. 잘 아는 것이 농촌이었다”고 했다.

특히 그림 재료로 흙을 사용했다. 아버지가 모아둔 흙을 물에 풀어 썼는데 전에는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다.

“물감 대신 흙을 염료형태로 풀어 종이에 앉힙니다. 먹과 흙, 종이와의 만남이었던 셈이죠. 흙도 광물의 일종이어서 변하지 않는 특징이 있어요.”

‘춘설헌’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작품 ‘춘설헌’은 의재 허백련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다. 후학 양성과 창작의 공간이었던 춘설헌을 대나무 숲과 매화꽃에 둘러싸인 풍경으로 묘사했다.

대작도 있다. 전시실에 걸린 ‘무등산’이 그 것. 작가에 따르면 누더기 가까운 종이에 많은 점을 찍어 무등산 형태를 완성했다.

김준기 관장은 “이번 전시는 허백련 미술상이 시립미술관으로 이관돼 새롭게 출발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며 “연진회 미술원 1기생인 박문종 화가가 수상자로 선정되고 전시를 연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선옥 관장은 “연진회와 농업학교를 통해 지역 일꾼과 인재를 배출했던 의재선생의 철학이 응결된 의재미술관에서 허백련미술상 수상 작가의 전시를 열게 돼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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