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단상(斷想) - 김창균 빛고을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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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단상(斷想) - 김창균 빛고을고등학교 교장
2024년 08월 14일(수) 00:00
1978년 4월, 한탄강변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주한미군 그렉 보웬은 이상한 돌을 발견하였다. 고고학을 전공한 그의 눈에 띈 돌은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로 밝혀졌고, 연천 전곡리 주변에서만 30만 년 전 구석기 유물이 4000점 넘게 나와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는 주먹도끼가 없다는 학설이 수정되었고, 가장 당황한 사람들은 일본인이었다. 한국에서 발견된 구석기 도구가 일본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문화 전파 흐름이 어떻게 귀결될지 뻔하기에 말이다.

그러던 중 1981년에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고고학자가 4만 년 전의 뗀석기를 발견하며 일본 구석기 연대를 1만 년 끌어 올렸고, 이어 1990년대 말에는 70만 년 전 유적을 발굴하는 등 일본 열도를 흥분하게 하였다. 그러나 2000년 8월, 자신이 조작한 유물을 몰래 묻는 모습이 한 신문사 카메라에 잡히면서 20여 년간의 사기극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그간의 여러 의혹을 학계조차 무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비록 후지무라 개인의 욕심일지라도 그걸 부추기고 박수갈채한 일본 사회의 감춰진 욕망을 여기에서 보게 된다. 특정 대상보다도 자신이 더 뛰어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며 만족을 얻으려는 우월 의식은 개인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경쟁으로도 드러난다고 한다. 그런데 우월 의식이라는 게 사실은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부정하기 위한 허세임을 알프레드 아들러는 간파하였다. 그래서 그는 우월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거짓 우월성을 꼽은 바 있다.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도 한사코 가해의 역사를 감추는 행동에서 평행이론처럼 또 하나의 자취를 발견한다.

한편으로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이른바 벼락도끼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겨 약처럼 달여 먹었다고 한다. 벼락도끼란 바로 선사시대 돌도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음양학적으로 영험한 효능이 있을 거라고 믿어 왕에게 진상까지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렇게 갈아먹은 유물만 5만 점이 넘는다고 추정한다니,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어 아이에게 채워 주기도 하였던 선조들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고민스럽다. 15세기 문인 이육은 벼락도끼가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노련한 장인이 만든 물건일 가능성을 그의 문집 ‘청파집’ 중 ‘청파극담(靑坡劇談)’에 남겼는데, 20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다른 나라 병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진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무방비로 있는 사이에 외국인이 우리나라 자원의 진가를 발견하여 빼앗은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1984년에 미국인 베리 잉거는 홍도에서 빛이 나는 잎을 가진 흑산도비비추를 발견했다. 곧바로 해외로 반출되어 Hosta yingeri S.B. Jones라는 학명이 부여되는데, 학명을 부여한 Jones가 채집자 Yinger를 종소명에 넣은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잉거비비추(Hosta yingeri)’라는 품종으로 등록되어 이제는 우리 것이 아닌 것으로 되고 말았다. 학명이 나왔으니 말인데, 울릉도에 자생하는 한국 고유종인 섬초롱꽃 학명에는 기가 막히게도 Campanula takesimana라고 ‘다케시마’가 들어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 나카이가 학명을 붙였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가 녹아 있는 소나무(학명 Pinus densiflora)의 영문 일반명은 붉은 일본 소나무라 해서 ‘Japanese Red Pine’으로 전 세계에 통용되었다. 소나무 분포의 중심이 한반도지만 일본의 소나무가 먼저 서양에 알려진 까닭이다. 학명은 바꿀 수 없지만, 다행히도 일반명은 선취권이 없기에 국립수목원은 ‘Korean red pine’으로 홍보하며 소나무 광복을 선언하였다. 지난 2015년 일이다.

충남 안면도 송림에 가면 V자 칼자국이 선명한 소나무를 보게 된다. 일제강점기 때 전쟁 물자인 송탄유(松炭油)를 만들기 위한 송진 채취의 흔적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아픔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자연이 가진 가치에 대한 관심과 이해에서 시작하여 세계에 알리고 자랑거리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마침 내일이 광복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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