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어제의 해결책’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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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어제의 해결책’에서 출발한다
살아남는 생각들의 비밀
샘 테이텀 지음·안종희 옮김
2024년 05월 24일(금) 00:00
1990년 서일본철도 기술개발팀은 도쿄~오사카 구간을 운행할 신칸센 500시리즈를 개발하며 난관에 부딪쳤다. 새로운 초고속열차는 이미 필요한 속도에 도달했지만 빨리 달릴수록 시끄러웠다. 가장 큰 소음을 유발하는 곳은 ‘팬터그래프’(객차와 가공선을 연결하는 열차부품)였다. 더욱이 터널을 통과할 때 공기 압축파 때문에 ‘소음 충격파(터널 붐)’가 발생했다.

총괄관리자 나카쓰 에이지는 열렬한 조류 탐사자인 항공엔지니어의 강연을 듣고 마침내 해결책을 찾았다. 올빼미의 톱니모양 깃털과 아델리 펭귄의 매끈한 방추형 체형에서 영감을 얻어 ‘팬터그래프’를 개선해 난기류에 의해 발생하는 소음을 줄일 수 있었다. 또한 ‘터널 붐’을 해결하기 위해 물총새의 날카롭고 뾰족한 ‘찌부러진 다이아몬드형’ 부리와 같은 형태로 기관차를 디자인했다. 그렇게 시속 300㎞로 주행하면서도 조용하고, ‘터널 붐’도 발생하지 않는 새로운 초고속열차 개발에 성공했다. 기술개발팀은 ‘무’(無)가 아닌 생체모방을 통한 ‘생물학적 진화의 무한한 지혜에서 영향을 받은 창의적 사고 덕분’에 난제를 풀 수 있었다.

마케팅에이전시 글로벌 총괄책임자인 샘 테이텀은 신간 ‘살아남는 생각들의 비밀’ 프롤로그에서 “행동과학과 진화심리학 분야가 오늘날의 혁신에 얼마나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면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응용행동과학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진화적 사고를 증진하고 더 많은 혁신의 기회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물총새 부리를 생체모방해 디자인 한 일본 초고속열차 ‘신칸센 500시리즈’. <위키미디어 커먼즈 제공>
크게 1부 ‘진화적 사고의 도구’와 2부 ‘생각도구 사용하기’로 책을 구성해 혁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소개한다. 혁신은 고독한 개척자나 천재의 번뜩이는 영감이 아니라 ‘이미 있던 생각’에 대한 변형·모방·패턴 찾기에서 이뤄진다. 저자는 신칸센 초고속열차의 ‘생체모방’ 등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진화적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979년 5월 SF영화 ‘에일리언’(Alien)이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오래전 영화 시나리오를 팔기 위해 할리우드의 영화 프로듀서 사무실을 찾아갔던 두 작가는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를 두 마디로 압축했다. ‘우주의 죠스’.

스탈린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에 관한 편지를 보냈다가 북극권 노동수용소에 갇혔던 겐리히 알츠슐러의 ‘트리즈’(TRIZ·창의적 문제해결 이론)가 흥미롭다. 그는 “문제의 해결책은 이미 존재하고, 해결책에는 일관된 패턴이 있고, 모순 해결은 획기적인 혁신을 창출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2부 ‘생각도구 사용하기’에서 신뢰강화와 의사결정 지원, 행동유발, 충성도 제고, 경험개선 등 다섯 영역에서 살아남은 해결책의 패턴을 소개한다.

손 위생관리를 할 수 있도록 문 손잡이에 손 소독제를 설치하는 ‘디폴트’(Default·설정된 선택)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인간의 뇌 특성에 기반을 둔 것이다. 아이스크림 콘 바닥에 들어있는 초콜릿 덩어리는 당초 의도하지 않았으나 의외로 인기를 얻자 그대로 유지됐다. 기억의 정점과 마지막을 중시하는 ‘피크엔드’ 제품이다. 목표에 가까울수록 충성도가 올라간다는 ‘목표경사 가설’ 등 흥미로운 혁신의 심리학이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직면한 도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미 있던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핵심은 ‘진화적 사고’이다. ‘구글 글라스’처럼 혁신적인 생각이 늘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진화학적 해결책’과 ‘기술진화적 해결책’에서 무엇을 찾는지 알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진화심리학적 해결책’이 주변에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혁신 체크리스트 모음’을 붙였다. 뭔가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독자라면 여기에서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더퀘스트·2만1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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