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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불로소득을 환수하라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4년 04월 30일(화) 22:30
우리나라 ‘시장주의자’들이 모델로 하고 있는 미국의 주거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도널드 트럼프의 허쉬 머니 재판, 우크라이나·가자 전쟁, 대학 내 친팔레스타인들의 항의 집회 등 굵직한 이슈들 속에서 미국을 달구고 있는 또다른 이슈는 홈리스(Homeless)다. 미 연방 대법원이 지난 22일 홈리스들의 공공장소 노숙 금지 여부를 놓고 청문 절차를 시작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국의 도시들, 뉴욕·로스앤젤러스·샌프란시스코·시애틀 등지에서는 수만 명이 공원, 광장 등의 텐트와 천막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주 대법원들이 노숙자 수용 공간이 없을 경우 홈리스들을 체포하거나 벌금을 매기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으나, 지방정부는 계속 늘어만 가는 이들을 막을 방법이 없어 연방대법원에 다시 판단을 맡긴 것이다.

미국에 홈리스가 대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시장에 주택 공급을 내맡기고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 주택 정책을 포기한 후 몇 년이 지난 시점이다. 미 프린스턴대 사회학 교수 매슈 데즈먼드는 지난해 11월 발간한 ‘미국이 만든 가난(Poverty, by America)’에서 ‘착취’에 초점을 맞춰 가난을 이야기했다. 그는 건물주의 집세 착취, 금융 대출 및 이자율 착취, 주택 소유자들의 집값을 비싸게 팔려는 집단적 노력 등을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 완전히 방치한 정부

우리나라도 다를 바 없다. 지난 3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공개한 평당(3.3㎡) 분양가는 1749만원으로, 이는 8년 전인 2016년 3월(906만원)의 1.93배에 달한다. 매년 10~20%씩 상승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기반·편의·문화시설이 잘 갖춰진 수도권, 일부 대도시의 아파트 가격이 대폭 오르면서 주거비 급등을 이끌고 있다.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가 낮은 경우 ‘로또’라고 해서 청약 인파가 몰리고 부동산 업자와 투기꾼들은 각 도시를 돌며 저렴한 아파트들을 매입해 가격을 올려놓고 있다. 건설사, 부동산 업체, 투기꾼에 이제는 중산층까지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규제가 전무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어 불로소득을 쌓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적정한 가격에 주택을 구하려는 실수요자는 ‘착취’를 당하고 전세 임차인은 거대한 사기 시스템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토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비옥함이었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차액지대로 설명했듯, 조선시대 토지는 수확량에 따라 상·중·하로 나눠 거래되었다. 같은 노동량을 투입해 쌀, 밀 등 식량을 더 수확할 수 있다면 그 토지를 구매 또는 임대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후 산업화·도시화는 이러한 구조를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어떤 시설이 어디에 들어서고, 집적되어 있는지,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은지 등이 지가(地價)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알프레드 마셜과 폰 튀넨이 위치를, 리처드 허드가 접근성을 지가의 핵심요소라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여기서 위치, 집적, 편리, 접근 등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부가 투자하는 도로·철도·항만·공항 등 기반시설이다.

다시 말해 정부가 재정을 집중 투입하는 곳에 인구·기업·자본이 몰리고 땅값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수도권, 영남권의 땅값이 타 권역의 그것보다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불로소득, 모두를 위해 써야 한다

아파트가 주거지역만이 아니라 상업·공업·녹지 등 모든 지역에 난립하고 있다. 정부·지자체가 부동산 경기 진작을 핑계로 규제를 풀고 인센티브까지 더해 개발 인허가를 쉽게 내주면서 곳곳이 고층아파트 숲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건설업체, 개발업체 등은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있다. 그러나 정부·지자체의 개발 인허가 역시 국민과 시민이 위임한 공공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누군가 천문학적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분명한 특혜다. 인허가를 둘러싼 모든 비리는 공공의 자산을 특정인이 독점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기반시설의 설치, 개발 인허가, 부동산 소유 및 거래 등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철저히 분석해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을 공공의 몫으로 거둬들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보수든 진보든 이를 게을리하고, 외면·방치해왔기 때문에 개발 비리와 부동산 투기가 근절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22대 국회는 자신의 노력 없이 또는 그 노력에 비해 더한 부를 쌓고 있는 특정 지역·세력·계층의 불로소득을 원천 징수하는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 이를 공공 재정으로 끌어들여 국토 균형발전, 양극화 해소, 서민 주거비 절감 등을 위해 투입하는 것이 지방소멸 위기 해소, 저출산 극복, 미래 지속가능성 확보 등을 위한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