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수사 드러나 … 아내 살해 혐의 무기수 19년만에 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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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수사 드러나 … 아내 살해 혐의 무기수 19년만에 재심
진도 저수지 살해 사건…대법, 유죄 입증 모든 간접증거 배척
사고차량 견인 날짜 조작·공문서 위조·국과수 부실감정 인정
9억여원 공동 수익자 보험 살해 동기 의문…판결 결과 주목
2024년 01월 15일(월) 20:05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남편 A(66)씨가 19년만에 재심법정에 서게된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A씨는 지난 2003년 9월 9일 화물차 조수석에 아내 B(당시 45세)씨를 태운 채 해남에서 진도방향으로 가던 중 명금저수지(현 송정저수지)에 빠졌다. 그는 사고 현장에서 빠져 나왔으나 아내는 숨졌다.

경찰은 애초 A씨를 살해 용의자로 봤으나 증거를 찾지 못해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이첩했다.

검찰은 A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인했다고 보고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은 A씨가 아내에게 수면제 2정을 감기약으로 속여 먹인 뒤 차를 저수지에 빠뜨리고 B씨를 차량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숨지게 했다고 봤다.

법원도 A씨와 B씨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고 부부를 공동 수익자로 하는 보험액이 9억원에 달하는 점을 살인 증거로 판단했다. 차량 조수석 햇빛가리개 고정대를 조이는 볼트를 미리 빼 둔 점과 B씨의 부검 결과도 인용됐다. 결국, A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며 19년째 복역 중인 A씨는 최근 대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따라 다시 재판을 받게됐다.

대법원은 A씨의 유죄를 입증했던 간접 증거들을 사실상 모두 배척했다.

법원은 사고차량이 2003년 7월 10일 인양돼 16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견인됐음에도 경찰이 작성일자를 15일자로 소급하는 등 허위 공문서(압수조서)를 작성했다고 판단했다. 경찰 수사기록에서 인양 당일 촬영된 사진과 국과수로 옮긴 이후 촬영된 사진을 비교하면, 국과수에 옮긴 이후 천장재가 더 내려앉아 있는 등 차량 파손 상태가 달라졌다는 A씨측의 주장도 인용했다. 오염된 증거라는 것이다.

사고 화물차 전면 유리와 내부의 조수석 햇빛가리개 고정대 손상도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는 간접증거였지만 대법원은 부정했다.

애초 검찰은 “좌우측 햇빛가리개 고정대 분리와 천장 모서리 파손은 저수지 추락 후 화물차 전면 유리 이탈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는 국과수 감정인의 의견을 들어 살인증거로 제시했다. 전면 유리창이 물에 빠졌을 때 쉽게 차와 분리돼 물이 빨리 들어차 B씨를 익사시키려는 의도로 판단했다.

하지만, 최근 다른 법감정이 나왔다. “(차량 설계 구조상) 햇빛가리개 등 천장 내장재의 분리와 전면 유리 결속력은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2003년 당시 화물차를 감정한 국과수 감정인은 감정결과를 철회했다.

B씨 부검 감정서에는 소화되지 않은 캡슐 형태의 감기약이 검출됐을 뿐인데 1,2심 법원은 국과수 감정인의 의견만으로 수면제를 먹인 것으로 해석했다.

법원은 ‘A씨가 사고 직전 약수터에 들러 감기약으로 속여 아내에게 수면제 2정을 먹인 뒤, 약효가 나타날 즈음 출발해 저수지에서 고의로 추락 사고를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국과수 약독물 감정인이 ‘통상 수면제는 미량이어서 복용하더라도 검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답변한 사실을 수면제를 먹인 것으로 오인한 것이다.

B씨의 몸에 새겨진 흔적들도 유죄를 입증하는 간접증거로 쓰였지만 모두 부인됐다.

‘수중에서 목을 조르는 등 압박을 했을 경우 점상출혈(일혈점) 등 상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감정인의 답변서 때문에 법원은 A씨가 B씨를 차량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A씨는 아내를 구조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났을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배척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가슴 부위 압박흔은 긴급하게 이뤄진 심폐소생술 흔적일 수도 있다는 다른 감정인의 소견에 신빙성을 부여했다.

A씨의 살인의 동기로 판단된 보험도 문제였다.

검찰은 A씨가 사고 발생 1년여 전인 2002년 9월부터 2003년 4월까지 총 9건의 보험을 가입해 보험금 9억3000만원을 받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하지만 가입된 보험은 총 15건이고 3건을 제외하고 모두 6500원부터 3만 7000원에 달하는 소액이었다. 나머지 3건의 보험료는 6~11만원 사이다. 보험들은 교통사고 보장보다 만기에 환급받는 저축성보험에 집중돼 있었다는 것이 변호인측의 설명이다.

재심전문 변호사이자 A씨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과거의 국과수 감정결과를 발전된 최근 과학으로 깨뜨린 사안이다”면서 “이사건은 과학의 이름을 빌린 선입견, 편견이 만든 비극인 것을 재심에서 밝혀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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