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초 작가 “창작의 코드는 속죄·재생·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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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초 작가 “창작의 코드는 속죄·재생·화해”
광주일보 신춘문예 출신
두번째 소설집 ‘보스니아 레드’ 출간
생의 의지로의 ‘빨강’ 그려
2024년 01월 03일(수) 19:15
이연초 작가
“나라는 사람의 글쓰기가 그동안 모두 ‘속죄’, ‘재생’에 모아졌구나, 라고 깨달았어요.” 이연초 작가는 그동안 창작했던 작품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소설가는 본질적으로 삶의 부조리와 불의함 그리고 내면에 깃든 얽매임 같은 것을 풀어낸다. 물론 새로운 관점과 기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직조화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문제로부터 창작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연초 작가는 “속죄와 재생은 나를 지배하는 중요한 코드였다”며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드는 이런 식의 소설쓰기를 왜 하나, 가끔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화해’를 청하고 싶은 것이 내 소설쓰기 방식이었던 것 같다”며 “다음 작품집을 낼 때는 칼날을 제대로 벼려야겠다”고 웃었다.

이 작가가 두 번째 소설집 ‘보스니아 레드’(문학들)를 펴냈다. 지난 201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천화’가 당선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전에 소설집 ‘그 여자, 진선미’를 발간한 바 있다.

그는 조용한 성품 탓에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다. 모임이나 행사 때도 있는 듯 없는 듯 한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이다.

첫 작품집을 펴낸 지 5년이 지나 두 번째 소설집 출간 소식을 전해온 작가는 “눈 앞의 현실에 전전긍긍하느라 5년이 후딱 갔다. 그 사이 돌봐줘야 할 손주가 생겼고(손주 생각하면 저리 가라죠. 웃음) 또한 제 삶을 지배했던 엄마가 돌아가셨다”며 “그럼에도 그 와중에 소설은 항상 그림자처럼 내게서 하루도 떠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문학을 하는, 더욱이 소설을 쓰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병’이다. 눈앞의 예기치 못한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또는 너무도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작가 특유의 창작욕구가 발동한다. ‘이것을 반드시 소설로 쓰리라’하는 열망 같은 것 말이다.

“책을 낸다는 것이 참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다른 어느 분야보다 문학출판계의 어려운 현실을 잘 알고 있고 혹여 ‘몇 그루의 나무를 또 훼손하게 되나’ 그런 생각부터 들었죠. 그러나 한편으론 영영 소설을 못 쓰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초조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소설쓰기와 멀어질 때면 쓰게 하는 계기들이 생겨나는데 아직까지 끈을 놓지 못하는 건 내 의지보다 어떤 카르마 같은 자력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 ‘보스니아 숲속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등 모두 7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작품집 전체 제목인 ‘보스니아 레드’는 보스니아 참상, 나아가 이념이나 사상, “사람을 죽이는 이념, 피의 레드를 상징”한다고 작가는 부연한다.

“그 빨강이 삶, 생의 의지로의 빨강으로 이행되는 걸 그리고 싶었다”는 말에서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 상정하고 있는 일종의 주제의식 같은 것이 대략 가늠되었다. 아마도 저자가 꿈꾸는 레드는 ‘생명의 레드’, ‘혁명의 레드’쯤 일 것 같았다.

“아시다시피 6.25 전쟁은 미소 강대국의 대리전이었지요. 1992년의 참혹한 보스니아전쟁도 엄밀하게 말하면 그 연장선상이라고 봅니다. 보통사람들이 일으킨 민족 간의 전쟁이라기 보다는 소수의 권력탐욕가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란 견해에 공감해요. 남과 북 양쪽에서 버림받은 남부군 유격대들의 삶을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힌데, 빨치산의 노래가 보스니아에서 건너왔다는 사실에서 저는 보스니아에 애정이 갔어요.”

김영삼 평론가도 “소설 속 인물인 수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와 싸웠던 유고연방의 빨치산들이 불렀던 독전가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러시아 ‘아무르 강의 파르티잔’들을 거쳐 한반도 지리산 남부군의 빨치산들에게 ‘아무르 빨치산의 노래’로 전승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고 평한다.

갈수록 소설 쓰기가 어려운 시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설을 쓰는 것은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노래나 무용, 운동 등과 같은 것인데 문학이 좀 더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문학은 저 자신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빛과 같은 것 같아요. 소설쓰기를 통해 나를 알고 사람을 이해하고, 더 나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늙어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현재 작가는 ‘아시아문학 책읽기’ 모임에 나가며 창작공부를 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시간은 없지만 그 모임을 통해 문학적 에너지를 받곤 한다. 인터뷰 말미에 작가는 “수록된 ‘영희에게’는 친구 ‘큰 영희’에게 보내는 헌사”라고 밝혔다.

한편 장흥 출신 이 작가는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2011년 목포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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