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루기 위해 뜨겁게 살다 간 여인 ‘방굿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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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루기 위해 뜨겁게 살다 간 여인 ‘방굿덕’ 이야기
광주일보 신춘문예 출신 김현주 작가 ‘붉은 모란 주머니’ 출간
미암 유희춘·부인 송덕봉·첩 방굿덕, 각각의 시점으로 풀어내
2023년 08월 22일(화) 19:25
역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은 사실과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러나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를 명확하게 나누는 것은 쉽지 않다. 당대의 역사를 상상력으로 풀어내 오늘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오랜만에 역사를 토대로 한 장편 소설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어느 겨울, 우연히 ‘미암일기’를 발견했다. 희열을 느꼈다. 눈 내리는 밤, 틈틈이 미암 선생의 일기를 읽는 일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광주일보 신춘문예(1993년) 출신 김현주 작가가 첫 장편소설 ‘붉은 모란 주머니’(다인숲)를 펴냈다.

작품은 16세기 선조 임금의 경영관이었던 미암 유희춘과 부인 송덕봉, 첩 방굿덕의 이야기를 각각의 시점으로 풀어낸다. 저마다의 관점으로 풀어낸 소설은 디테일한 묘사와 재미를 선사한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온 작가는 예상대로 소설집을 펴냈다는 얘기를 꺼냈다. 사실 작가는 어떤 소설을 쓰고 있다거나 작품집을 펴냈다는 소식을 전할 때 가장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동안 김 작가는 자신만의 ‘창작의 방’에서 역사 속 인물들과 역동적인 교우를 해왔던 것이다.

“오래전 ‘담양송순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이 소설은 깊이 묻혀 있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 작품은 채 완성되지 않은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한 지인의 출판을 해보라는 권유가 있었는데 소설을 새롭게 완성하기까지 지인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김현주 작가
이번 작품은 제6회 담양송순문학상 수상작 ‘연계정 대숲소리’를 새롭게 고친 소설이다. 언급한대로 소설은 미암 유희춘과 그의 부인 송덕봉, 첩 방굿덕의 이야기가 메인 줄거리이다. 소설은 미암의 일기로부터 태동됐다고 할 수 있다.

“미암 선생의 일기는 해배 후부터 시작되어 죽음 직전까지 계속된다. 기록 정신에 철저한 그의 방대한 독서량, 정치 철학, 백성을 향한 애민정신의 결과물이다. 미암의 인권 존중과 겸손함은 가정사에도 드러난다. 부인 송덕봉을 지음(知音)처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도, 후실 방굿덕과 서녀들을 책임지고 돌보기 위해 끝까지 애쓴다.”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미암 선생의 정실부인 송덕봉과 대비되는 인물, 후실 방굿덕의 삶에 상상의 촉수를 세웠다. 같은 여성이지만, 송덕봉과 천지 차이였던 면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을 거였다.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 자주 담양 대덕을 찾았다. 머릿속에 분명한 서사의 줄거리가 잡히기 전, 작가들은 모티브가 될 법한 공간을 자주 찾는다. 김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암 선생과 덕봉 선생의 쌍봉에는 청명한 하늘 아래 빛나는 햇살이 따뜻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아래, 소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가난한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풀이 성글게 돋아있어 쓸쓸했다. 평생, 사랑을 믿었던 여성 방씨의 묘지였다.”

작가는 이미 여성 방씨의 묘지에서 전체 소설의 가닥을 추렸을 것이다. 담양송순문학상에 이름을 올렸을 당시, 문순태 소설가로부터 ‘방굿덕을 살리면 더욱 좋겠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방씨의 묘는 상상의 부싯돌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 방굿덕이 딸 넷을 모두 노비에서 속량시키고 자신도 속량되기를 바랐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며 “한평생 미암 선생을 해바라기처럼 사랑했던 여성, 독립적이며 진취적인 인물로서의 방굿덕을 그렸다”고 부연했다. 어쩌면 방굿덕은 작가의 표현대로 “꿈을 이루기 위해 뜨겁게 살다 간 여인” 그 자체였는지 모른다.

소설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미암의 관직생활과 가정사, 부인 송덕봉과의 관계다. 여기에 미암의 첩 굿덕이 양인으로 살고자 하는 열망이 서사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굿덕의 신분 상승 욕구는 정실부인 송덕봉이 건네준 ‘붉은 모란 주머니’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 주머니는 후일 ‘기축옥사’에 엮이게 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작가는 현재 채희윤 작가를 비롯해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아시아문학읽기’를 하고 있다. 낯설었던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는 즐거움이 크다. 소설과 관련된 읽기와 창작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작업이다.

요즘 많은 이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작가로서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고 물었다. 작가는 ‘소설적’인 답을 내놨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러면 소설책을 읽기 시작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애는 어떠했을까. 소설을 읽다가 어떤 목소리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길 때, 위로를 받곤 한다. 역사소설을 펼치면, 어떤 목소리가 나를 일깨울 때가 있다. 과거, 먼 시대를 살아냈던 인물들의 심정에 공감하게 된다. 인간의 일은, 시대를 초월해서 그다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김 작가는 1998년 계간지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으며 창작집 ‘물속의 정원사’와 산문집 ‘네 번째 우려낸 찻물‘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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