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당신에게 위로와 힐링을 전하는 조르주 루오
전남도립미술관 200점 전시
‘미 제레레’ 58점 판화 작품
‘여인들 그리고 정물과 풍경’
‘서커스와 광대-어린삐에로’
루오 ‘삶·작품’ 영상물 감동
2022년 10월 06일(목) 20:15
6일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 ‘서커스와 광대’ 섹션에서 만나는 다양한 작품들.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애절한 멜로디의 첼로 연주 ‘자클린의 눈물’이 흐르는 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기면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루오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미제레레(Miserere)’ 58점의 판화 작품이 전하는 압도적인 모습에 잠시, 숨을 고른다. 종교적인 내용과 더불어 인간의 희로애락을 흑과 백의 대비와 굵은 선으로 묘사한 작품 한점 한점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마음이 정화되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미제레레’ 해설을 쓴 정웅모 신부는 “이 공간은 절망에서 구원이 필요한 인간의 군상을 단편적으로 묘사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 섹션은 6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2023년 1월29일까지) 전 중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다.

58점으로 구성된 루오의 대표작 미제레레
전남도립미술관이 파리 국립퐁피두센터, 조르주 루오재단 등과 협약을 체결하고 엄선한 작품 20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깊이 패인 주름 속에 고통을 겪는 자들의 말없는 친구”이고자 했던, 20세기 예술 거장 조르주 루오(1871~1958)의 예술과 삶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인간의 평등과 고귀함을 갈구했던’ 그는 인간 영혼의 비참한 모습을 거침 없이 파고들며 작품활동을 이어갔고, 종교화의 대가로 불리지만 결코 관습적인 종교 소재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는 시도로 자신만의 길을 열어갔다. “위대함은 수학적 비율이나 주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의 눈동자와 뇌와 손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는 색채와 재료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이어간 개척자이기도 했다.

‘미제레레’ 판화 작품과 원판인 동판화. (부분)
기존 블록버스터 전시처럼 서울 등을 거쳐 지방으로 내려온 기획전이 아니라, 오직 전남도립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루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을 만나는 각별함과 함께, 각 주제별로 전시장 레이아웃에 변화를 주는 등 흥미로운 구성도 돋보인다. 전시작들은 원색의 화려한 색감과 두터운 마티에르, 굵은 선면 등 루오 작품의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들로 정화와 힐링의 순간을 제공한다.

아뜰리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루오의 대형 사진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는 첫 섹션은 ‘조르주 루오의 회상록’이다. 목탄으로 그린 ‘자화상’을 비롯해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스승이자 프랑스 상징주의 거장으로 꼽히는 귀스타프 모로,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의 초상화 등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악의 꽃’을 모티브로 삼아 발표한 채색 판화집은 이번 전시에도 등장한다.

조르주 루오 베로니카
푸른색 벽면으로 구성된 ‘여인들 그리고 정물과 풍경’ 섹션에서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루드밀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등을 만난다. 그의 인물화에 대해 라이사 마리탱은 “여성의 우아함이 고결하고 진정한 세련됨으로 루오의 손끝에서 자연스레 솟아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유리에 손을 자주 베는 가난한 스테인드글라스 견습공이었다”고 말하는 루오의 스태인드글라스 작품 ‘작은 숲’도 눈길을 끈다.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란 뜻의 라티어 첫 머리에서 제목을 따온 판화집 ‘미제레레’는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보여주고, 종교화를 당시의 시대상에 곁들여 루오만의 시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동판화가 보여주는 흑과 백의 색채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서로 서로를 사랑하시오’, ‘분장하지 않는 자, 그 누구인가?’, ‘외로운 사람들의 거리’ 등 각각의 작품은 깊은 울림을 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루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해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된 이들의 가난과 불행을 위로하기 위해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을 종교적인 주제로 형상화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섹션이 바로 이 작품들을 만나는 섹션이다. 화려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의 배경 속에 고뇌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담긴 ‘수난(모욕당하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 등이 대표적이며 타피스트리로 제작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악의꽃’, ‘수난’, ‘서커스’ 등 다양한 서적의 삽화를 만날 수 있는 섹션이기도 하다.

자주빛 벽면으로 구성된 ‘서커스와 광대’ 섹션에서는 어릴 적부터 서커스 구경을 좋아했고, 광대의 자유로운 삶을 동경했던 루오가 말년까지 30여년간 주제로 삼았던 광대와 곡예사 등이 등장하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작 중 가장 대형 작품인 ‘무지개 곡마단의 소녀 마술사’를 비롯해 ‘어린 삐에로’ 등이 대표작이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깊은 곳에 감춰진 그들의 비애와 함께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녀야했던 그들의 삶이 용암과 같은 두터운 질감과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 불규칙한 붓질로 표현된 작품들이다.

루오의 삶과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영상 작품.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에 배치된 20여 분 분량의 영상물은 차분히 앉아 꼭 감상하길 바란다. “동시대 누구보다 삶과 사회를 대담하게 풍자하고, 광범위한 색채의 확장성을 펼쳐보이고 휘황찬란한 광채로 변화된 작품을 토해냈던” 화가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삶과 대표작품을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보고 나면, 전시장으로 되돌아가 그의 작품을 하나 하나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