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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할머니가 남긴 선물’을 읽으며-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2년 09월 30일(금) 00:30
“관리사무소에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첨단도서관에서 책 가치 나눔의 날 행사를 하오니 재밌게 읽은 책을 다른 책과 바꿔서 독서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관리소장님의 목소리가 거실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가을을 맞이하여 좋은 행사를 하는가 보다 생각하며 구경이라도 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벌써 ‘독서의 계절 가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책 네 권을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받았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라는 말이 있듯이 새 책을 보면 어쩜 이렇게도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아직도 책을 구입하는 내 자신에 대해 뿌듯한 생각마저 드는 것은 왜일까. 몇 주 전 지인의 사무실에 들렀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 이었다. 하나같이 두껍고 어려워 보이고 수준 있어 보이는 책들이었다. 나의 서재에는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이것저것 두서없이 꽂혀 있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최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격주로 두 군데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레크리에이션과 노래, 그리고 예배를 하며 뜻깊은 시간을 갖고 있다. 그분들에게 어떤 좋은 이야기를 해 드릴까 고민하는 중에 한 권의 동화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1997년 시공주니어에서 출판한 마거릿 와일드의 ‘할머니가 남긴 선물’이라는 책이다. 아주 오래 전에 출판된 책이었는데 그 내용이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이라기 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라 해도 될 만큼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에게 읽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감나게 들려드리고 싶어 구연 동화를 하듯 몇 번 읽어 내려가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내용을 잠깐 소개하자면 할머니 돼지와 손녀 돼지가 함께 살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 돼지는 이제 손녀와 영원히 헤어져야 할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되었다. 혼자 살아가야 할 손녀를 위하여 다양한 삶의 지혜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것저것 함께 하며 마지막 시간들을 보낸다. 그중에서 몇 가지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손녀가 혼자서도 잘해 나갈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도와 가며 분담해서 집안 일을 했다. 할머니가 먼지를 털어 내면 손녀는 마룻바닥을 쓸고 할머니가 이불을 개면 손녀는 빨래를 널고 하면서 나중에 무엇이든지 손녀가 혼자서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할머니의 깊은 뜻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크게 아팠고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할머니는 힘을 내어 일어나서 자기의 삶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손녀와 함께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통장을 해지하고, 식료품 가게에 가서는 외상값을 갚았다. 그리고 남은 돈을 손녀에게 주면서 “잘 간직했다가 현명하게 쓰거라”라는 말을 남겼다. 손녀와 함께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반짝이는 나뭇잎, 수다쟁이들처럼 모여 있는 구름, 따스한 흙냄새를 맡으며 일상에서 그냥 지나쳤던 풍경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감탄하며 행복해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고 손녀가 할머니를 꼭 껴안고 잠들며 이 동화는 끝난다. “돈을 아껴 써라”가 아니라 돈을 현명하게 쓰라니, 참으로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자연을 느끼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삶이 이다지도 삭막한 것은 바로 이것, 감탄이 빠져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영화, 드라마, 음악을 들으며 울고 웃으며 감정을 쏟아내는 것도 좋겠지만 구름 한 조각, 작은 풀벌레 소리들의 합창, 가을 잎이 떨어져 내려앉는 모습…. 우리는 주변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

창세기를 읽으며 신자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을 신앙고백으로 하면서도 피조물을 보며 진정으로 감탄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간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을 창조한 나를 믿어라’라고 강요하시는 것보다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깊어가는 가을에 책도 많이 읽고 오감을 동원하여 자연 만물을 느껴 보기를 바란다. 나뭇잎이 떨어져 바닥에 닿을 때 나는 소리 ‘사각’, 용케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저절로 미소 지어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