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기적인 글쓰기 -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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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기적인 글쓰기 -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6년 01월 09일(금) 07:20
송광사에서 편집장 소임을 볼 때이니 꽤나 오래전 일이다. 출판계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분이 내 글을 보고 “불교색만 좀 더 입히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지 않았다. 다만 내가 쓰고 싶을 뿐이다” 라고 대답했더니 “이기적으로 글을 쓰시는군요”라는 답이 돌아왔고, 나는 그 답에 대해 그다지 부정하지 않았다. 그 분은 내 글을 평하면서 “법정 스님이야 워낙 뛰어나신데다 당시엔 불교 안에서 글을 쓰는 분들도 거의 없었지만 요즘은 너무도 많다”고도 했다. 아마도 스님으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지 않냐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법정 스님을 찾아보았다. 내가 처음으로 법정 스님의 글을 접한 건 198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가끔 귀경길 고속버스 안에서 요즘은 사라진 ‘샘터’같은 가벼운 잡지를 읽곤 했는데 ‘샘터’에 법정 스님의 글이 연재되고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당시 스님의 글에서 감명 같은 것은 별반 느끼지 못했다. 지중해 같은 이국의 낯선 여행지에서 써 보낸 글 같은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정도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심심해서 스마트폰 뒤적이는 기분으로 가끔 접했던 것이 전부였다. 스님의 글에 공감하기에 나의 피는 지나치게 뜨거웠고 근거없는 자만심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송광사 사보 일을 하면서 사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법정 스님의 책들을 본 적 있다. 어느덧 늙수그레한 중이 되어 나보다 젊었던 40대 법정 스님의 글을 보았다. 다른 절도 아닌 송광사의 스님이 되어서 보니 기분이 아주 묘했다. 조사어록을 풀어 쓴 글들은 전형적이었고, 자연예찬 같은 글들은 다소 식상한 느낌이었다. 스님으로서 삶을 성찰하는 글들은 가슴에 와닿았다.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같은 정서가 스님과 나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절집도 절 밖도 많이 변했지만 사는 모습과 그 안에서 느끼는 마음은 그다지 변함이 없는 듯했다.

얼마 전, 우연한 계기로 인터넷을 떠도는 스님의 어록들을 모아본 적 있다. 흩어져 있던 조각글들을 모아서 펼쳐 보니 일관된 흐름이 보였다. “항상 수행자의 자세로 인생을 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나친 축약이 주는 왜곡을 감수하며 내용을 조금 더 풀어보면 “인간은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빈 마음이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그러니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지켜보며, 단순하게 살라”로 정리될 수 있다.

외식사업으로 1500억대의 자산가가 되었다는 한 사업가는 “내가 좋아하는 맛이 아니라, 잘 팔리는 맛을 찾는 게 성공의 핵심”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매달 19개의 잡지를 구독하며 최신 트렌드를 공부한다고도 했다. 대중의 요구와 최신 트렌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사업 성공의 비결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내면으로 파고드는 자기 성찰의 과정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일종의 수행에 가깝다. 그것은 희미한 감정과 모호한 생각들을 명료하게 하는 시간이며, 그냥 흘려보내기엔 껄끄럽고, 애써 외면하기엔 불편한 생각들을 남김없이 끄집어내어 찬찬히 살피는 순간이다. 햇볕 좋은 날, 밀린 빨래를 하고 빨래줄에 가지런하게 널어놓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을 청소하는 일이다.

내 마음은 내 것이 아니다. ‘나’라는 것은 일종의 생각이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의 실체는 없다. 일종의 생각이기 때문에 마음의 일부인 셈이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성립할 수 없는 표현이다. 마음은 누구의 것도 아니며 소유의 범주를 넘어서 있다. 천 명의 사람에게 제각각 다른 천 개의 마음이 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이야말로 인간 보편에 대한 성찰과 가장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부처님은 스스로를 일러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안내자라고 하였다. 스스로 노력하여 개척한 길이기에 확신을 가지고 중생들에게 길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인생길을 걷고 있다. 나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수행자의 자세로 살며 마음을 관찰하고 기록한다면 크게 후회없는 일생이 될 것이다. 법정 스님도 그리 생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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