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거리 -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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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MZ들의 핫플레이스라는 여의도 더현대를 드디어 가보았다. 그런데 가는 교통편이 조금 껄끄럽다. 전철로는 거의 40분 넘게 걸리는데 택시는 고작 8분 거리다. 처음으로 택시호출 앱를 이용해서 정말 어렵게 택시를 탔다.
힘들게 도착한 여의도 더현대 앞은 횅하기만 하다. ‘여기가 맞나? 왜 사람들이 없지? 잘못 왔나?’ 어리둥절한 마음을 수습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차도가 무척 넓다. 왕복 10차선은 됨직하다. 게다가 인도에서 더현대 건물까지 직선거리로 50미터 이상은 족히 됨 직한 넓은 공간이 있다. 이렇게 넓은 공간에 내렸는데 지나는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으니 횅할 수밖에. 매몰차게 부는 찬바람은 마음을 더 횅하게 한다.
정작 내부는 여느 백화점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4층에 오르니 매체에서 보던 바로 그 모습이다. 가운데 광장이 있고 광장을 둘러싸고 도는 길, 그리고 그 길가에 가게들이 있다. 광장이 있는 거리를 그대로 실내로 가져온 형상이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광장과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아마도 승용차나 지하철을 이용해서 건물 지하로 출입하는 모양이다. 나처럼 지상으로 온 사람은 별종이다. 사람들은 바깥 공기를 전혀 접하지 않고 인공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여의도 더현대 앞의 거리는 추운 겨울 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괴물처럼 거대한 건물은 현실의 거리를 집어삼켜버렸다. 현실의 거리는 생명력을 잃었지만 실내에 박제된 거리엔 인간들이 넘쳐난다. SF에나 등장하는 미래도시의 모습은 이미 현대 도시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문득 1990년대 즈음, 가끔 강남을 지날 때면 묘한 이질감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차로 이동하며 본 강남의 거리엔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별로 보이질 않았다. 대신 건물들은 대부분 크고 세련되고 고급져 보였다. 그때 느꼈던 이질감이 다시 생생하게 재현된다. 내가 싫어하는 서울의 느낌은 이미 그때부터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서울에 들른 건, 베트남 하노이로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서울은 우리나라인데 낯설고, 베트남 하노이는 멀고도 먼 남의 나라인데 오히려 친숙하다. 특히 하노이의 구시가지는 친숙하다 못해 정겹기까지 하다. 분명 프랑스식의 건물들은 이국적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익숙함은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하노이 구시가지의 거리는 살아 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의 1층은 하나같이 작은 가게들이다. 찻길과 인도의 구분도 특별히 없다. 그냥 길이다. 사람도 다니고 차도 다닌다. 특별히 건널목도 필요 없다. 그래서 차는 천천히 다닐 수밖에 없고, 폭도 넓지 않아서 한 대는 편하게 다니고 두 대는 겨우 다닐 정도이다. 거리는 가게와 사람과 차와 오토바이로 북적인다. 생기가 넘친다.
하노이 구시가지의 거리는 나의 어릴 적 거리와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 나는 1960년대 초반에 부산에서 태어나 1980년대 초반까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정지용 시인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고 실개천이 뒤돌아 흐르는 목가적인 시골 마을에서 향수를 짙게 느꼈다면, 나는 하노이의 구시가지 같은 생기 넘치는 도시의 거리에서 진한 향수를 느낀다. 나의 부모세대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각박한 도시의 빈민촌에서 퍽퍽한 삶을 이어갔지만, 바로 그곳이 나에게는 향수 어린 장소이다.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주말마다 일본 구석구석을 걸어서 여행하는 채널이 있다. 도쿄의 평범한 서민들이 사는 동네를 보노라면, 유년시절의 동네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추억 속 거리가 도쿄 한복판엔 아직도 건재하고 있었다. 백주년 기념이 흔하다는 일본은 확실히 우리와 다르다. 광주를 비롯한 이 나라 지방 도시의 구도심은 한결같이 쓸모를 다한 영화세트장처럼 황량하기만 하다. 한집 건너 임대 공고가 붙어 있다. 동명동처럼 새롭게 재조명되는 지역을 제외하면 낮이든 밤이든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
하노이 여행을 다녀온 뒤로 서울을 싫어하는 이유를 또렸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빌딩이 즐비한 21세기의 휑한 거리에서, 초라했지만 북적이고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1970년대의 거리를 그리워한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상실한 것들을 위한 시간들이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이국의 낯선 거리에서 친근함과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힘들게 도착한 여의도 더현대 앞은 횅하기만 하다. ‘여기가 맞나? 왜 사람들이 없지? 잘못 왔나?’ 어리둥절한 마음을 수습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차도가 무척 넓다. 왕복 10차선은 됨직하다. 게다가 인도에서 더현대 건물까지 직선거리로 50미터 이상은 족히 됨 직한 넓은 공간이 있다. 이렇게 넓은 공간에 내렸는데 지나는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으니 횅할 수밖에. 매몰차게 부는 찬바람은 마음을 더 횅하게 한다.
문득 1990년대 즈음, 가끔 강남을 지날 때면 묘한 이질감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차로 이동하며 본 강남의 거리엔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별로 보이질 않았다. 대신 건물들은 대부분 크고 세련되고 고급져 보였다. 그때 느꼈던 이질감이 다시 생생하게 재현된다. 내가 싫어하는 서울의 느낌은 이미 그때부터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서울에 들른 건, 베트남 하노이로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서울은 우리나라인데 낯설고, 베트남 하노이는 멀고도 먼 남의 나라인데 오히려 친숙하다. 특히 하노이의 구시가지는 친숙하다 못해 정겹기까지 하다. 분명 프랑스식의 건물들은 이국적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익숙함은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하노이 구시가지의 거리는 살아 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의 1층은 하나같이 작은 가게들이다. 찻길과 인도의 구분도 특별히 없다. 그냥 길이다. 사람도 다니고 차도 다닌다. 특별히 건널목도 필요 없다. 그래서 차는 천천히 다닐 수밖에 없고, 폭도 넓지 않아서 한 대는 편하게 다니고 두 대는 겨우 다닐 정도이다. 거리는 가게와 사람과 차와 오토바이로 북적인다. 생기가 넘친다.
하노이 구시가지의 거리는 나의 어릴 적 거리와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 나는 1960년대 초반에 부산에서 태어나 1980년대 초반까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정지용 시인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고 실개천이 뒤돌아 흐르는 목가적인 시골 마을에서 향수를 짙게 느꼈다면, 나는 하노이의 구시가지 같은 생기 넘치는 도시의 거리에서 진한 향수를 느낀다. 나의 부모세대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각박한 도시의 빈민촌에서 퍽퍽한 삶을 이어갔지만, 바로 그곳이 나에게는 향수 어린 장소이다.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주말마다 일본 구석구석을 걸어서 여행하는 채널이 있다. 도쿄의 평범한 서민들이 사는 동네를 보노라면, 유년시절의 동네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추억 속 거리가 도쿄 한복판엔 아직도 건재하고 있었다. 백주년 기념이 흔하다는 일본은 확실히 우리와 다르다. 광주를 비롯한 이 나라 지방 도시의 구도심은 한결같이 쓸모를 다한 영화세트장처럼 황량하기만 하다. 한집 건너 임대 공고가 붙어 있다. 동명동처럼 새롭게 재조명되는 지역을 제외하면 낮이든 밤이든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
하노이 여행을 다녀온 뒤로 서울을 싫어하는 이유를 또렸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빌딩이 즐비한 21세기의 휑한 거리에서, 초라했지만 북적이고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1970년대의 거리를 그리워한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상실한 것들을 위한 시간들이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이국의 낯선 거리에서 친근함과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