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편지-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2022년 08월 10일(수) 01:00
편지는 가장 오래된 통신 매체 가운데 하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보편화되기 이전인 90년대까지만 해도 편지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정치는 물론 외교와 경제, 전쟁과 관련된 문제도 종종 편지를 매개로 기록됐다. 편지는 누구나 쓸 수 있다는 보편성과 어떤 이의 글은 널리 회자된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지닌다.

유명 인사든 장삼이사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편지로 영어(囹圄)의 상태에서 쓴 경우를 빼놓을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깨알 같은 글씨로 써내려간 ‘옥중서신’은 언제 읽어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것은 단순한 편지를 넘어 신앙의 고백이자 고난에 처한 이들을 향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였다. 특히 편지 말미에 “다음 책을 넣어주시오”라는 문구와 함께 열거된 책의 목록들(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이나 솔제니친의 ‘암병동’ 등)은 DJ의 해박한 식견과 역사에 대한 안목을 보여준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로 수감 중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가 광복절 사면을 호소하는 옥중편지를 대통령실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 씨는 자필 탄원서에서 “저를 비롯해 전 정권 하에 억울하게 투옥되신 분들을 이번 8·15 광복절에 대사면 해달라”며 “새 정권에선 전 정권에서 벌어졌던 악랄함이 없을 것”이라며 간곡히 사면을 호소했다.

최서원 씨의 자필탄원서와 맞물려 떠오르는 편지가 있는데 바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맘때 쓴 것으로 보이는 구절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느끼게 한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같은 감옥이지만 누가 쓴 편지냐에 따라 그 감동과 격은 천양지차다. 괴테가 편지를 “한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회고록”이라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인 듯하다. 오늘 우리는 어떤 편지를 남겨야 할까.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