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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마한문화공원] 마한으로 떠나는 여행…고대의 시간 속으로
삼한 중 가장 세력 막강했던 ‘마한’ 경기·충청·전라 지역 분포
영산강 유역·영암 지역, 청동기시대 유물 주거지·고인돌 발굴
전시실 ‘월지관’·마한문화체험장·고분탐사관·전망대 등 자리
2022년 04월 11일(월) 01:00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는 청동기시대 유물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비치돼 있다. 사진은 전시관인 월지관.
전남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는 청동기 문화의 응결체인 마한문화공원이 있다.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과 주거지는 당시 영산강 유역과 영암지역의 문화적 토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마한은 진한, 변한과 함께 삼한시대를 형성했던 주요 세력이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기원전 2세기경 다시 말해 삼국시대 이전부터 형성된 부족국가 연합체다. 무려 54개국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중심에는 목지국이 있었다. 삼한 가운데 세력이 가장 막강했던 마한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분포돼 있었다.

그러다 백제가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3세기경 중부지역 마한 세력이 남쪽으로 이동을 한다. 지금의 영산강에 토대를 잡는 것은 그 무렵이다. 그러나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발흥한 백제에 점차 마한 세력들의 주도권이 넘어감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학자들은 대략 그 무렵을 5~6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고대 묘제 등 유물이 있는 몽전(夢殿).
바야흐로 시간은 봄의 절정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다투어 피어난 봄꽃과 물이 오르기 시작한 잎들이 눈부시다. 자연은 스스로 움트고, 가꾸고, 번성한다. 혹여 누가 뭐라 한들 그것에 휘둘리지도 눈치 보지도 않는다. 묵언수행을 하는 선자의 모습처럼 자리를 지킬 뿐이다. 마치 사시사철 변하는 색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스스로를 금하는 것이 본연의 일인 것처럼 말이다.

볕이 좋은 날이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태양의 궤적은 다함없이 풍요롭다. 한낮의 태양이 고대를 비추는 시간, 숲은 침묵처럼 고요하다. 한 시절 영욕으로 불타오르던 고대의 터는 무심한 듯 고요 속에 침잠해 있다.

문화공원이 있는 이곳은 영암 신북면에서 발원한 삼포강이 영산강 본류와 만나는 여울목에 해당한다. 나주 반남과 공산을 휘돌아 흘러오던 영산강 물줄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고대의 문화는 꽃을 피웠다.

마한문화공원과 인접한 지역에서 발굴된 주거지와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 유물이다.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생과 사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운명을 보여준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살아서든 죽어서든) 온전히 자신의 몸을 의탁할 공간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지난 시절의 영화는 그렇게 가뭇없이 사라져갔다. 오랜 세월이 흘러 현현된 듯한 눈앞의 풍경은 인간 역사의 유한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문화의 생명력을 표상한다. 전체적인 문화공원의 모습은 평온하면서도 다소 쓸쓸하다.

삼한시대에는 소도라는 성지가 있었다. 종교적인 성역으로 ‘별읍’이라고도 한다. 긴 장대를 세워 소도라는 표식을 했는데, 죄를 지은 이가 이 안으로 들어오면 보호를 받았다. 추적을 당하거나 내쫓김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절망에 빠진 이에게 건네는 연민의 손짓이다. 넉넉히 품어줌으로써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아마도 너그러움을 입은 자들은 신당에 제를 올리고 자신의 죄를 참회했으리라. 누군가를 용서하는 자는 또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없는 죄도 만들어 사람을 옥죄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온갖 투서와 무고가 난무하는 시대에 고대 사람들이 베푼 인정과 사람에 대한 예의는 귀한 가치로 다가온다. 자신들의 커다란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타인의 사소한 티를 못 견뎌하는 게 오늘의 모습이다.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며 상대에게만 정의와 공정을 요구한다.

소도에 들어서는 심정으로 문화공원으로 들어간다. 이곳에는 공원은 크게 전시관, 마한문화체험장, 고분탐사관(몽전), 전망대 등이 있다.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것은 옹관 모양의 전시관인 월지관(月支館). 마한 54개 소국 중 으뜸이었던 월지국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은 영상실, 전시관, 사무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 떨어져 보면 기다란 지붕 위에 옹관 모양이 얹혀 있는 형상이다. 고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전시실 안에는 마한에 관한 정보를 정리한 자료들이 비치돼 있다. 특히 공원을 중심으로 영산강 일대의 지형을 형상화한 안내도가 들어온다. 강을 토대로 세력을 형성했던 마한의 융성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영상강 유역을 따라 출토된 주거지를 비롯해 지석묘, 토광묘, 옹관묘, 석실분, 패총에 관한 자료도 눈에 띈다. ‘낭주벌은 가없이 넓고 영산강은 쉼 없이 흐른다’는 표석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월지관에서 나와 왼쪽으로 걷다보면 커다란 유리구슬 모양의 조형물을 만난다. 지구본을 반으로 자른 모양 같기도 하고, 돔 형상 건축물 같기도 하다. 유리로 덮인 지붕은 은은한 빛을 발한다. 첨단과 신화라는 중층적 이미지가 감도는 조형물은 몽전(夢殿)이라는 현판을 부착하고 있다. 이곳에는 고대 묘제를 비롯해 유물 발굴 체험관 등 자료가 망라돼 있다. 고대인들의 제국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어 신성한 느낌마저 감돈다.

남해 망루.
아마도 몽전의 명칭과 연관된 설화 때문일 것이다. 몽전 인근에 자리한 남해신사(南海神祠)와도 연관돼 있다. 남해신사는 강원도 동해 동해묘, 황해도 풍천의 서해단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신제를 올리는 사당이다.

때는 고려 현종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란족 침입으로 위협에 처한 현종은 나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어느 날 꿈속에 백발의 수신(水神)이 나타나 이곳으로 피하라는 음성을 들려준다. 꿈이 이른 대로 피한 현종은 목숨을 부지하게 되고 이후 남해포에 당을 짓고 인근 6개 고을 수령들로 제를 지내게 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남해신사를 ‘대사’로 규정하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남해신사는 국사로서 ‘중사’에 속했다고 기록돼 있다. 나주목사가 주관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나온다.

현종의 현몽과 남해신사, 몽전은 신성한 계시라는 관점에서 하나로 수렴된다. 꿈은 그렇게 생명과 안위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 부족국가, 현시대와의 접점 등 다채로운 기제로 작용한다.

공원 한켠에 조성된 마한문화 체험장.
남해신사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는 남해망루가 있다. 마치 우주 비행접시가 날아와 살포시 안착한 분위기다. 고대와 미래, 현재가 한데 어울려 교신하는 송신탑이다. 망루에 올라 먼 바다를 향해 눈을 돌린다. 미세먼지 탓에 다소 흐릿하게 보이는 저편은 잃어버린 마한의 꿈인 듯 아득하기만 하다. 망루 어딘가에서 불쑥 마한 사람이 나올 것도 같다. 주위를 둘러보다 잠시 잠깐 고대의 시간 속으로 흘러들고 만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