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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벽골제…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가장 크고 오래된 저수지
김제 부량면에 위치한 저수지 둑
백제 비류왕 때 축조 원성왕 때 증축
제방 포괄, 신용리~월승리 2.5km
여인 단야·조연벽 흑룡 설화 전해져
1415년 세워진 벽골제 중수비
1963년 사적 제111호 지정
2022년 01월 23일(일) 19:00
전북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까지 약 2.5km에 이르는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이다. 벽골제 랜드마크 상용.
신라 제38대 원성왕 때의 일이다. 벽골제가 축조된 지 오랜 시일이 지나 보수를 해야 할 시기였다. 당시 김제를 관할하던 태수에게는 단야라는 딸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토목기술자인 원덕랑이 김제에 도착한다. 멀리서 그를 지켜보던 단야는 이내 원덕랑을 흠모하기에 이른다.

전북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까지 약 2.5km에 이르는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이다.벽골제 수문.
예나 지금이나 사랑 앞에는 늘 난관이 자리하고 있는 법. 당시 벽골제 인근 지역에서는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는데, 대규모 공사를 앞두고는 반드시 용이 사는 계곡에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무렵 원덕랑의 약혼녀 월내가 김제 벽골제에 당도했다는 소문이 돈다. 태수는 자신의 딸 단야가 원덕랑을 못 잊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계략을 세운다. 월내를 붙잡아 제물로 바쳐야겠다는 계책이었다. 그러고 나면 공사도 큰 어려움 없이 끝날 테고 딸의 사랑도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였다.

1415년 진행됐던 벽골제 중수를 기념하는 비.
그러나 단야는 아버지의 음모를 알아채고 만다. 마음이 비단이었던 그녀는 스스로 용의 제물이 되는 길을 택한다. 그것만이 아버지의 살인을 멈추게 하고, 원덕랑과 월내의 사랑도 지켜줄 수 있었다. 결국 단야의 희생으로 벽골제 보수 공사는 무사히 끝난다.

벽골제 제방에 올라선다. 끝 간 데 없이 들이 펼쳐져 있다. 밑줄을 그어 놓은 것 같다. 반듯한 농토에 절로 배가 부른다. 재봉선 같은 일직선들이 멀리 지평선에까지 이어져 있다. 광활함보다 더 광활하다. 어떤 뭉클함이 밀려온다. 우리 땅, 우리 농토, 우리 국토, 우리 숨결, 우리 생명, 생명. 저 농토를 지키기 위해 선조들은 얼마나 피와 땀을 흘렸던가. 누대에 걸쳐 이어져 온 흙에 대한 따사로운 열망이 느껴진다.

어디선가 단야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다. 자신을 죽여 대의를 살린 여인의 목소리다. 환청이다. 바람이 속삭이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나를 잊지 마세요. 벽골제에 담긴 나의 혼을 기억해주세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냥 예전처럼 잊어주세요. 저는 벽골제를 지키는 이름없는 여인으로 남을 거예요. 훠이 훠이 가끔은 허공을 날고, 더러는 이 김제 벌판을 날며 우리의 땅과 우리의 물을 지키렵니다.”

벽골제에는 단야각과 단야루가 있다. 단야의 효심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과 누각이다. 그곳에 서면 한 가녀린 여인의 마음이 전해온다. 설화든 꾸며낸 이야기이든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내던졌던 단야의 올곧은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1415년 진행됐던 벽골제 중수를 기념하는 비.
김제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저수지다. 비단 저수지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 제방까지 포괄한다.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까지 약 2.5km에 이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330년 백제 비류왕(27년) 때에 축조를 시작해 790년(원성왕 6년) 증축됐다. 제방을 쌓는 데만 연인원 32만 명이 동원됐다. 이밖에 수문이나 하천 공사 등을 감안하면 인원은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적인 대사업이었다. 당시만 해도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이었을 것이다. 1415년 세워진 벽골제 중수비에는 저간의 내력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 중수비는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1호로 지정됐다.

벽골제에는 랜드마크가 있다. 바로 쌍용이다. 여의주를 문 두 마리의 용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지금껏 그렇게 큰 용을 본 적이 없다. 상상속의 용이 아닌 눈앞에 현시된 실존의 용으로 다가온다. 불어오는 바람에 용이 꿈틀거린다. 물살이 휘돌아 가는 것 같다. 춤을 추는 것도 같다. 역동적이다. 쌍용이 싸우는 것도 같고, 서로를 애닯아 하는 것도 같다. 서로를 향하는 움직임은 무엇에 비할 수 없이 유연하다. 낭창한 버드나무가지를 보는 기분이다. 그러나 두 용을 담기에는 연못은 너무 협소하다.

단야라는 여인의 설화도 있지만 다른 이야기도 전해온다. 각색이 되고 윤색이 되는 건 구전의 묘미다. 사랑에 얽힌 여인의 비련은 가슴을 시리게 한다. 이어지는 또 하나의 민담. 때는 고려시대 장군 조연벽과 관련이 있다. 몽고가 침략했을 때 장군으로 활약했던 조연벽은 어느 날 꿈을 꾼다. 벽골제를 뺏으러 흑용이 나타난다. 평화롭던 벽골제에 전운이 감돈다. 이에 벽골제에 사는 용은 싸울 준비를 하고, 한편으로 조연벽의 꿈에 나타나 흑용을 함께 퇴치하자고 말한다. 결국 조연벽의 도움으로 흑용을 물리친다.

다양한 농기구들.
가장 오래된 저수지라는 상징은 그렇게 감동의 스토리를 품고 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이곳은 그러므로 모든 이야기의 근원을 담고 있는지 모른다. 옛사람들의 열망과 신화적 상징, 삶의 근원인 농업에 대한 관점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골제를 가로지르는 옛다리.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저수지는 천하지대본’이라는 말로 바꿔도 무방할 것도 같다. 농업은 물을 전제로 한다. 통치권자에게 치수(治水)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역량이자 덕목이었다.

이곳에는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농경사주제관·체험관, 짚풀공예 전시·체험장을 비롯해 민속놀이체험마당이 있다. 특히 농경문화박물관은 벽골제의 역사적 의의와 발굴 경과 외에도 수리와 치수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다양한 농기구와 수리 관련 기구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농경사회의 옛 모습과 기억들을 환기한다.

농경사주제관은 벽골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한다. 1층에는 학습공간, 2층에는 어린이 박물관이 있으며 3층 옥상은 벽골제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이곳에선 매년 지평선 축제가 열린다. 지난 1999년 김제의 특산품인 지평선 쌀을 알리기 위해 지평선을 테마로 축제가 시작됐다. 벽골제가 5천년을 이어 내려온 농경문화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홍보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이밖에 벽골제 단지 내에 아리랑문학관이 있다. 조정래 소설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에 담긴 문학정신과 역사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2003년 5월 16일 건립됐다. 일제강점기 김제를 시작으로 펼쳐진 민족의 고난과 투쟁의 역사를 오롯이 조망할 수 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