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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우리 문화 <3> 장성 홍길동테마파크 - 소설 속 주인공인가, 실존 인물인가
‘의로운 도적 홍길동’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서자인 신분 탓에 출사 제약
차별없는 세상 염원 ‘의적’으로
허균의 ‘홍길동전’으로 소설화
장성 황룡면 테마파크서 매년 축제
생가 옆으로 활빈당·산채 등 재현
2022년 02월 14일(월) 02:00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있는 홍길동테마파크에는 홍길동에 관한 다양한 시설과 자료들이 비치돼 있다. 사진은 전시관.
다음에 말하는 그는 누구일까. 조선완조실록, 성호사설, 택당집, 계서야담, 증보해동이적 등에 실존인물로 소개돼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동시에 실존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반역자, 도적”으로 기록돼 있는 반면 이상국을 건설한 의적으로 그려졌다.

맞다. 그는 시대의 의적 홍길동이다.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보면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출몰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억압받던 이들에게는 의분을 풀어주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지만, 부정한 관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홍길동은 15세기 중엽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그러나 서자인 탓에 출사에 제약을 받았다. 당시에는 국법에 따라 첩의 자식은 관리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좌절과 울분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혹하고 쓸쓸한 날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염원이 끓어올랐다. 그는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규합했다. 썩어빠진 세상을 갈아엎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싶었다.

사람들은 그를 ‘의적’(義賊)이라 부른 이유다. 신출귀몰해 부정축재자에게서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통쾌한 일이다. 가난하고 선량한 이들을 돕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못된 짓을 일삼고 남의 것을 탐하는 이들에 맞서 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은 영웅이 없는 시대다. 아니 영웅이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다. 시대가 영웅을 부른다고 하지만 불의한 시대는 더러 영웅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멸문지화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 그럼에도 이 땅의 많은 이들은 여전히 영웅을 기다린다. 의에 굶주리고 의에 메마른 강직한 영웅을 찾는다. 가난하고 억울한 이를 위해 어깨를 내어주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그러면서 가슴 따뜻한 시대의 영웅을 민초들은 애타게 염원하고 있다.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사람들은 이곳을 아치곡, 아치실이라고도 부른다. 아늑한 산골짜기라는 뜻이다. 든든하게 에두른 산의 형상이 아늑하면서도 운치가 있다. 아지랑이 피는 봄날이면 고향의 품에 안긴 듯 따사로울 것 같다.

그를 대면하러 간다. 바깥 활동을 하기에는 녹록치 않은 날씨다. 바람에서 바늘 끝 같은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제법 매서운 한기 탓에 절로 옷깃을 여민다. ‘없는 이들에게는 여름보다 겨울나기가 어렵다’는 말이 절로 실감이 된다. 칼칼한 날씨 속에 잠시 잠깐 비치는 여우 꼬리만한 볕이 그리 고마울 수 없다.

황윤석이 쓴 증보해동이적에는 홍길동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조 중엽 이전에 홍길동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재상 홍일동의 서자 동생인데, 홍일동은 장성 아차곡에 살았다. 또한 다음과 같은 내용도 나온다. “재기를 믿고 스스로 호탕해 하였으나 과거를 보아 청훈과 현직을 맡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국법에 구속되어 하루아침에 홀연히 도망갔었다.”

홍길동 테마파크에 들어서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바람결에 그의 기상이 오롯이 느껴진다. 산자락 아래 펼쳐진 공원은 활달한 기운이 넘친다. 이곳을 배경으로 무예를 익히고 민초들 아픔을 생각했을 홍길동의 넓은 가슴을 마주하는 것 같다.

홍길동이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는 장면을 형상화한 조형물.
생가에 들어서면 시대를 역류해 조선의 어느 때로 진입해 들어온 느낌이다. 초립을 쓴 사내가 마당에 무릎을 꿇고 있고, 양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마루에 서서 젊은 사내를 바라보고 있다. 호부호형(呼父呼兄)을 청하는 길동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돈다. 첩의 서자로 태어나 온갖 설움과 구박을 받았던 날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길동은 자신이 있을 곳은 신분 차별로 고통을 받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가난한 이들의 곁이라고 생각한다. 먼길을 떠나는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길동의 가슴에 느꺼운 심회가 벅차오른다.

홍길동이 동료들과 의적 활동을 도모했던 ‘활빈당’을 구현한 누각.
생가를 나와 전시관에 들르면 홍길동 관련 다양한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실존성 자료들이다. 홍길동 관련 학술자료를 비롯해 생가터에서 발굴된 유물, 홍길동 관련 영상물을 만날 수 있다. 생가 옆으로는 홍길동이 동료들을 규합했던 활빈당, 무예를 익혔던 산채가 재현돼 있다. 망루에 오르면 테마파크 일대가 훤히 보인다. 가공된 공간이 아닌 마치 옛 시대의 한 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생생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청백리 한옥당도 빼놓을 수 없는 시설이다. 청백리로 알려진 백비의 주인공 아곡 출신 박수량(1491~1554)의 공적을 기리고 아울러 홍길동의 의로움을 되새기자는 뜻에서 건립된 한옥이다. 단아하면서도 정갈한 정취는 장성이 배출한 인물들의 정신을 닮았다.

매년 5월이면 홍길동축제가 열린다. ‘장성 황룡강 (洪)길동무 꽃길축제’와 연계해 열리는 축제는 황룡강을 물들이는 노란색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시대는 다를지언정 역사 이래 탐관오리는 늘 존재했다. 오늘날에도 부정하게 재물을 축재한 이들은 넘쳐난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는 누가 도둑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은 수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타깝게도 홍길동의 마지막 행적은 찾을 수 없다. 남해의 유배지에서 그들은 어떻게 탈출을 했을지, 그리고 어떻게 율도국이라는 이상국가를 세웠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의 이상사회를 향한 열정을 기억하고 그것의 현존이 실현되기를 바랄 뿐이다.

올해는 큰 선거가 연이어 있다. 저마다 자신들이 나라를 위한 지도자라고 떠든다. 참된 지도자가 그리운 시대다. 낮은 곳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백성을 섬기던 이들의 이야기는 문헌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관직을 꿈꾸는 이들은 많지만 진정으로 민초들을 위하는 마음이 깨끗하고 의로운 자는 그리 많지 않다. ‘홍길동’ 같은 의로운 도적이 없는 세상, 진정 그런 세상은 없는 것일까.

/글·사진=박성천 기자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