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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소망-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2022년 01월 18일(화) 02:00
정동진일까, 호미곶일까. 아니면 일출봉일까?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해돋이의 명소들이다. 요즈음엔 이곳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것은 새롭게 각오를 다져야할 만큼 현실이 더 절박해졌거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소망이 그만큼 간절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이런 뜻을 이루지 못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새해의 소망을 꼭 이루어 달라고 호소하고 싶은 마음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많은 분들에게 새해 소망을 묻는다면, 우리 사회의 심화되는 양극화나 적대적 정치의 해소에 관한 답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소망 중 하나가 평화에 대한 희구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평화는 오랫동안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용어에 지나지 않았지만, 최근에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의 삶들이 적나라한 생존투쟁의 양상으로 전개될수록 그것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간 문재인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종전선언 문제이다. 정전 70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종전선언을 논의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그만큼 정전과 종전 그리고 평화가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며 그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환기시켜 준다. 최근에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 간에 종전선언 문안에 관한 합의를 이루었다고 보도되기도 했지만, 신냉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갈등이나 별로 변하지 않은 북한의 태도를 볼 때마다 상황이 우려스럽다. 또한 합의의 실질적인 걸림돌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곤 한다.

우리가 겪은 전쟁은 남북 간 전쟁을 의미하는 6·25전쟁과, 미국이나 중국의 참전을 의미하는 한국전쟁 이외에, ‘마을로 간 전쟁’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 의미 있는 종전선언이라면 앞의 두 가지 차원을 아우르는 것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세 번째 차원의 문제도 간과할 수는 없다. 이런 문제 제기는 종전이라는 문제를 국가 중심적으로 풀어 가면서 동시에 국민 개개인의 경험과 안전의 문제로 풀어 가도록 유도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에 관한 답을 이미 16년 전에 진실화해위원회의 설립으로 답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의 피해에 착목(着目)하여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들의 피해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투쟁으로 인하여 주민들이 겪었던 악몽과 트라우마, 거기에서 비롯된 오랜 침묵의 문제를 재인식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충분한 성과를 거두기 전에 서둘러 종료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아쉬워진다.

다행스럽게도 진실화해위원회가 재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전쟁의 피해와 관련된 진실 규명 신청이 9000건을 넘었는데, 이는 제1기 때보다 더 많은 진실 규명 신청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진실 규명 요구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15년 전의 진실 규명 요구는 주로 명예회복을 겨냥하는 것이었는데, 약 10년 전부터 이것이 실질적인 피해 구제 즉 배·보상 문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런 변화된 프레임에 직면하여 새로운 응답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유족들이 가장 많이 제기한 요청은 첫째, 배·보상 소송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제공해 달라는 것이다. 둘째, 군경에 의한 피해뿐만 아니라 적대 세력이나 미군 폭격에 의한 피해도 구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요청들은 이제 우리가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배·보상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임인년 새해가 화해와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면,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피해구제를 정치적으로 결단해야 한다. 동시에 그것의 균형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부디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