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상과 공정 -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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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과 공정 -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25년 09월 23일(화) 00:20
미국에서 활동하는 교수 한 분이 자신의 논문에 대한 논평을 부탁했다. 1970년대 모범공무원상과 소비절약포상을 하는 과정을 분석한 논문이었다. 1970년대에는 박봉에도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상을 수여함으로써 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한 포상이 적지 않았다.

특히 허리를 졸라매고 소비를 줄여서 경제성장을 위한 전략적 산업의 발전에 자본을 동원하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들이 있었던 시기였다. 이 중 하나로, 업무 수행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소비절약을 실천하는 공무원들을 선정해서 포상을 시행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용어가 관료제도의 근본 원칙으로 회자되던 시기였다.

모범공무원상을 비롯한 포상은 다른 한편으로 공무원들의 부패를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박봉이기 때문에 뇌물이 횡행한다는 것이었다. 1960년 4·19 혁명 직후 미국이 민주당 정부에게 네 분야에서의 개혁을 요구했는데, 그 중 하나가 공무원과 경찰의 봉급 인상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한국에 대한 무상원조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공무원들의 부패라고 보았다. 그러나 재정이 충분치 않은 당시 한국 정부로서는 월급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상은 월급 인상의 대체재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공무원들에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신문들을 보면 이러한 포상에 대한 공무원들의 반응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때로 수상자의 선정이 인연·혈연·지연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상의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나이나 가정 형편 등이 수상자를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다. 소비절약상의 기준은 근검절약과 성실성, 그리고 사회적 선행이었다. 예컨대 이 상을 수상했던 한 공무원은 매일 사무실에서 전기를 끄고, 수도꼭지를 잠그며, 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

이와 달리 다른 기준들이 수상 사유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분은 대가족의 가장이기 때문에, 어떤 분은 대가족 중 유일하게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기에 상을 받았다. 이러한 이유가 수상의 주된 이유가 아니더라도 수상을 위한 추가적인 기준으로 제시되었다.

때로는 수상 추천자 본인이 아니라 그 딸이 학교에서 선행을 했고, 세 자녀들이 모두 저축통장을 갖고 있다는 점도 수상의 이유가 되었다. 또 다른 사례는 동생의 사업을 옆에서 도왔다는 것 역시 수상 추천의 사유가 되기도 했다.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서의 근무 시간, 근무 성실도, 동료들과의 관계가 추천 사유가 되는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지금의 얘기가 아니라 50년 전의 얘기였지만, 이 논문에 대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논평을 달았다. 70년대와는 다르지만 관행이나 부서 내 서열, 작년에 상여금을 받았으면 올해는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한다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공정’의 기준이 50년 전과 다른 측면에서 유사한 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열심히 일한 사람은 올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 작년에 상을 받았기 때문에 올해는 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례를 과거 사회적 관습에 따른다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미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시대 상황에서는 과연 ‘공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50년 전의 관행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 시대의 상황 속에서 오히려 아름다운 미덕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어떤 기준이 더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상은 변화하고 새로운 세대의 기준은 과거의 미덕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학교에서 10여 년간 행정업무를 하면서 공정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리더십 중 하나는 칭찬을 많이 하는 것이고 상을 많이 주는 것이다. 상을 주지 않고 질책만 할 경우 조직을 이끌기 쉽지 않다. 그러나 상을 공정하게 주지 않는다면, 그 상은 주지 않는 것만 못하다. 상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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