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첫 물음, 오늘 우리에게 다시 묻다- 김환영 지식 칼럼니스트, 데일리인베스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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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첫 물음, 오늘 우리에게 다시 묻다- 김환영 지식 칼럼니스트, 데일리인베스트 대기자
2025년 09월 02일(화) 00:00
경전이나 고전의 첫 문장은 종종 핵심 테마를 선보인다.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가 각각 예수를 ‘유대인의 메시아’, ‘인류의 구원자’, ‘하느님의 아들’, 혹은 ‘하느님 자체’로 선포하며 시작하는 것처럼, ‘논어’ 또한 첫 구절에서 공자의 세계관을 응축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이 두 문장은 우리에게 “하늘천 따지” 만큼이나 익숙하다. 흔히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로 번역된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두 문장을 끊임없이 재해석한다면 학습과 교유, 인간적 기쁨에 대한 공자의 복합적인 사유를 드러낼 수 있다.

우선 ‘논어’의 ‘첫 두 문장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이다’라는 가설을 세워보면 보면 어떨까. 그 질문은 무엇일까.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무엇인가?”는 어떤가. 그런 관점은 에피쿠로스학파 정도는 아니지만 쾌락을 중시하는 성현 공자를 드러낸다.

공부와 우정. 공자는 수많은 즐거운 인간 활동 중에서 이 둘을 꼽았다. 다른 즐거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亦)은 돈이건 권력이건 다른 기쁨·즐거움의 존재를 암시한다. 공부와 우정은 인간 감정을 충분히 포괄할까. 대표적일까. 또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 학문은 내면의 충족에서 오는 내적·지적인 기쁨, 우정은 관계 속에서 얻는 외적·일상적 즐거움을 준다. 둘은 상호 보완적이지만 긴장 관계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공자는 ‘단언’하지 않고 ‘기쁘지 않은가, 즐겁지 않은가’라는 물음으로 물음에 답했다. 왜일까. 흔히 강조를 위한 수사로 해석되지만 다른 시각도 가능하다. 질문은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제자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해 그들이 스스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또 ‘완벽주의자’ 공자는 자신의 학문과 교유의 체험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 확신을 유보했는지 모른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하는 공부’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학습과학에서 강조하는 ‘간격 반복(spaced repetition)’의 원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또한 ‘학이시습’은 지식이 습관이 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는 현대 자기계발 연구의 통찰과도 일치한다. 서양의 ‘이론과 실천(theory and practice)’ 논의와도 연결된다. 공자는 2000년을 앞선 인물이었다.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는 단순히 “벗이 멀리서 찾아온다”는 의미일까. 이는 “내게도 벗이 있어, 그 벗이 먼 길을 자발적으로 찾아와 준다면”이라는 상상적 가능성일 수 있다. 공자·석가모니·소크라테스·예수에게 동등한 ‘벗’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제자·사도·추종자만이 있었을 뿐이다. 우정의 부재는 종교 형성의 구조적 조건인 것이다. 인류의 스승들은 친구가 없지만 제자를 벗처럼 대한다. 자공이나 안연은 ‘친구급’ 제자였다.

그렇다면 벗은 왜 ‘멀리서’ 오는가?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는 학문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만큼 학문은 공자에게 중요했다. 공자의 상상 속의 친구는 공자에게 잠시 공부를 멈출 명분을 주었을 것이다. 다른 해석도 있다. 공자의 명성이 널리 퍼져 동지들이 멀리서 찾아오는 상황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공자 타파를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한·중 관계에서 공자를 무시할 수 없다. 공자는 오늘날 동아시아의 문화·정치 구도와도 연결된다. “공자는 한국인”이라는 말은 본래 “공자가 동이족 출신일 수 있다”는 학설에서 와전된 것이지만 중국 사회에서는 한국이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는 ‘상식’이 됐다. 공자가 한국인일 수는 없지만 그를 ‘한국적 존재’로 재해석할 수 있다. 공자에 대한 한국의 연구가 질적·양적으로 압도적이라면 말이다.

한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무시 못할 국력을 길러왔다. 유교, 불교와 그리스도교까지 함께 뿌리내린 문화의 다층성 또한 우리 문화력·창조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공자의 질문은 오늘도 유효하다. “무엇이 즐거운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우며,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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